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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5회째 맞은 ‘디아스포라 영화제’의 프로그래머 이혁상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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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작도 2배 늘어 33개 나라 50편
26~30일 인천아트플랫폼 일대서 “첫 작품 ‘종로의 기적’은 착한 다큐
남성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내 얘기
과감하고 도발적으로 만들고 싶어” 영화제는 오는 26~30일 인천 아트플랫폼 일대에서 열린다.(diaff.org) 지난해(19편)보다 상영작이 두배 이상 늘어 33개 나라 50편 영화가 상영된다. 인천시 지원 예산이 늘어난 덕분이다. 4회까진 1억원 미만이었으나 올해는 3억원을 편성했다. 강 국장은 “영화제에 대한 평가가 좋았던 게 (증액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했다. 5회는 난민과 이주여성에 초점을 맞췄다. 슬로건은 ‘환대의 시작’이다. 개막작인 김정은 감독의 <야간근무>는 인천 공단에서 함께 일하는 캄보디아 출신 린과 한국인 연희의 만남과 우정을, 폐막작인 김정근 감독의 <노웨어 맨>은 한국에 거주하는 파키스탄 난민 가족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혁상 감독은 슬로건 ‘환대의 시작’을 두고 이렇게 얘기했다. “난민과 이주여성에 초점을 맞출 때 가장 적절한 슬로건이 뭘지 고민했어요. 그들은 낯선 존재입니다. 그래서 두렵고 때로는 공포스럽죠. 이런 생각이 변질되면 혐오와 차별로 이어집니다. 환대하는 마음이 중요한 이유죠.” 그는 환대는 “외부의 타자뿐 아니라 우리 안에서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성소수자다. 2011년 자신 등 동성애자 5명의 커밍아웃을 다룬 영화 <종로의 기적> 연출로 주목받았다. 지난해 김일란 감독과 함께 만든 <공동정범>은 비무장지대 국제다큐영화제에서 최우수상과 관객상을 받았다. 용산참사 가해자로 기소되어 ‘공동정범’으로 4년 형을 살고 나온 철거민 다섯 명의 고통을 다뤘다. 지난해 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개봉 시기가 늦춰져 올여름이나 가을쯤 대중 앞에 선을 보일 예정이다. “저 스스로 존중받지 못한 존재였어요. 그게 어떤 감정인지 잘 압니다. 상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출발점은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그는 상영작 가운데 불가리아 출신 감독이 만든 <굿포스트맨>을 슬로건의 취지가 잘 녹아든 작품으로 추천했다. “불가리아의 터키 국경 도시에서 한 우체부가 시장에 도전하는 얘기입니다. 그는 시리아 난민에게 빈집과 생필품을 제공하고 함께 살도록 해서 도시를 부흥시키겠다고 공약합니다. 난민 혹은 외지인과의 공존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어요.” 늘어나는 난민과 국경 폐쇄는 동전의 앞뒷면이 되고 있다. 시리아 어린이 난민의 죽음은 디아스포라의 비극성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동시대의 급박한 이슈는 장편 극영화로 소화하기 힘들죠. 단편이나 다큐가 많이 다룹니다. 처음엔 좋은 작품을 찾을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좋은 영화가 많았어요.” 그는 2004년 결성된 ‘여성주의 미디어 공동체’ 연분홍치마의 ‘바지 사장’이기도 하다. 2004년 ‘여성주의 문화운동’을 앞세워 결성된 이 단체는 2015년 ‘여성주의 인권운동 단체’로 정체성 변화를 꾀했다. 왜 여성주의인가? “저에게 여성주의는 삶의 태도입니다. 끊임없이 소수자로서의 위치를 자각하고 그것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삶의 태도로서 여성주의죠.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주변적 존재이고 폭력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성소수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스스로 동성애자 정체성을 깨달을 무렵 여성주의를 만났어요. 제가 연대할 수 있는 이론, 삶의 철학이라고 생각했어요.” 19대 대선 후보 토론회에서 나온 유력 후보의 반동성애 발언은 그를 포함해 많은 성소수자를 격분시켰다. “저 스스로도 커밍아웃한 게이 감독으로서 당당하게 활동하려 하지만, 지금 인터뷰를 하면서도 이 때문에 어떤 피해나 차별을 받지 않을까, 그런 고민을 합니다. 한국 사회가 성소수자 인권과 관련해 풀어야 할 숙제가 여전히 많다는 얘기죠. 물론 지난 10년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왕성하게 펼쳐지면서 많은 성과를 얻은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가 더 많이 목소리를 낼수록 보수 세력의 반응은 더 거세졌어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 성소수자 인권 상황은 카오스(혼돈)적입니다.” 새 정권에서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고도 했다. “새 정부가 성소수자 이슈를 우선순위에서 미루고 ‘조용히 있어라’라고 할 수 있어요. 보수정부 때는 대립선이라도 분명했잖아요.” 그는 18대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후보 문화예술인 지지 선언에 이름을 올렸다. 이게 빌미가 되어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공동정범> 제작 지원 신청을 영화진흥위원회에 두번 했는데 다 떨어졌어요. 김일란 감독은 리스트에 오르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저 때문에 떨어진 것 아닌가, 의심하고 있어요.” ‘정말 만들고 싶은 영화’를 물었다. “남성 성소수자로 살아가는 내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첫 작품(<종로의 기적>)에서 그걸 했는데, 날카로움이 없었어요. 그땐 제 안에 두려움이 있었어요. ‘우리 건실하게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이성애자에게 보여주려 했죠. 동성애자는 분명 이성애자의 삶과 다르죠. 그래서 그 안에 특별한 가치가 살아 있어요. 성소수자들 내부의 다양한 차이와 그들이 직면해야 하는 과제를 과감하고 도발적으로 영화로 만들고 싶어요.” 글·사진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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