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5.08 12:58
수정 : 2017.05.0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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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의 한 장면.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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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적 식상함 넘는 재기발랄 설정은 가점 요소
화려한 미장센은 눈길 끌지만 만듦새는 부족해
설경구 연기 빛나지만 임시완·전혜진 설정 아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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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의 한 장면.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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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성현 감독의 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은 17일 개막하는 제70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됐다. 미드나잇 스크리닝은 호러·액션·스릴러·판타지 등의 장르영화 중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갖춘 영화를 초청해 심야에 상영하는 비경쟁 부문이다. 앞서 <달콤한 인생>(김지운·2005), <추격자>(나홍진·2008>, <표적>(윤홍승·2014), <오피스>(홍원찬·2015), <부산행>(연상호·2016) 등이 초청된 바 있다. 매년 2~5편이 상영되는 이 부문에 4년 연속으로, 심지어 올해는 전례 없이 <악녀>와 함께 두 편이나 초청을 받으면서 “칸이 한국 장르영화에 빠졌다”는 찬사가 나온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일부 장르 편중이 심해지는 한국 영화의 병폐가 엿보인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들려온다. 지난 4일 공개된 <불한당>은 한국 영화계가 이 두 가지 견해 모두에 귀를 기울여야 함을 확인시켜준다. 조목조목 뜯어볼 지점이 많은 영화 <불한당>을 요소별로 나눠 살펴봤다.
■ 식상한 범죄액션의 기시감, 이를 넘는 +α ★★★☆
<불한당>은 ‘범죄 액션’과 ‘언더커버’(수사 등을 하려고 어떤 곳에 위장·잠입하는 것)라는, 이제는 하나의 장르가 된 두 가지 특징을 결합한 영화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모든 것을 다 갖고 싶어 마약조직의 1인자가 되려는 범죄자 재호(설경구)와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경찰 현수(임시완)가 교도소에서 만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해가며 의리를 다지고, 출소 이후 의기투합하지만 서로의 ‘감춰진 진실’을 알아가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는다.
얼개는 그간 수없이 봐왔던 범죄 액션 누아르와 큰 차이가 없다. 아니, 기존 영화들의 그림자가 어리며 기시감마저 든다. 교도소에서 벌어지는 서열과 권력 다툼은 <프리즌>이나 <검사외전>을 떠올리게 하고, 경찰과 범죄자의 우정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신세계>나 <무간도>의 아류라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불한당>은 이들 장르가 가지는 서사적 진부함을 뛰어넘는, 재기 넘치는 ‘무기’를 가지고 있다. 보통 언더커버 영화의 매력은 신분을 들킬 위기가 반복되면서 발생하는 ‘쫄깃한 긴장감’에서 나온다. 하지만 <불한당>은 현수의 정체를 일찌감치 드러냄으로써 이를 과감히 포기한다. 대신 ‘동물의 왕국’ 같은 약육강식의 범죄 소굴,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곳에서 싹트는 두 남자의 의리 혹은 ‘인간적 사랑’과 그 안에서 발생하는 믿음·배신에 집중한다. 오래 연애한 연인의 모습처럼 어떻게 변해갈지 모르는 두 남자의 심리와 감정의 ‘밀당’이 영화를 보는 큰 재미다. 변성현 감독은 “처음부터 (감정선은) 브로맨스가 아닌 멜로에 가까웠다”며 “오로지 감정이 쌓이고 파괴되고 하는 부분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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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의 한 장면.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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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도 홀릴 스타일, 그러나 부족한 만듦새 ★★★
변 감독은 “기존 범죄영화와 가장 큰 차별점은 스타일”이라는 말로 <불한당>이 칸에 입성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설경구 역시 “내 필모 중 가장 스타일리시한 영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의 공언대로 <불한당>은 카메라의 다양한 움직임, 조명에 힘을 준 화려한 색채로 눈을 사로잡는다. 특히 대부분의 액션 누아르가 ‘리얼리티’를 강조한 데 견줘 이 영화는 ‘만화적인 톤’을 입혔다. 만화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액션을 감상하듯 만든 현수의 신고식 장면, 교도소 전경을 훑으면서 인물들 간의 권력관계를 한눈에 담아낸 롱테이크 신 등은 놀랄 만큼 뛰어나다. 일부 장면은 1인칭 시점을 강조하려고 배우의 머리에 아이폰을 부착해 촬영하는 ‘실험’도 감행했다고 한다. 과거와 현재를 계속해서 교차편집한 플래시백 구성도 꽤 참신하다.
하지만 이런 미장센의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만듦새의 부족함은 아쉽다. 심장을 두드리는 쫀쫀한 긴장감이 극에 달해 클라이맥스에서 크게 ‘한 방’이 터질 것 같은 기대감을 증폭시키지만, 잘 이해되지 않는 결말로 다소 맥이 빠진다. 기존 범죄액션 영화와 차별화하려고 마지막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만 하다 그냥 놓아버린 느낌이랄까. ‘관계’에 초점을 맞췄으면 그 파국 역시 좀더 개연성 있게 마무리돼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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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의 한 장면.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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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도적 설경구, 어색한 임시완, 겉도는 전혜진 ★★☆
설경구의 연기는 ‘전설의 귀환’이라 불릴 정도로 압도적이다. 설경구의 비열한 웃음과 포효하는 눈빛은 ‘날것 그대로의 짐승’을 보는 듯 스크린에 비린내를 진동케 한다. “나 돌아갈래” 외마디로 시대의 아픔을 절절히 보여준 <박하사탕>의 영호, 밑바닥 인생에 싹튼 애절한 사랑을 사무치게 그린 <오아시스>의 종두, 진정한 정의가 무엇인지 온몸으로 물었던 <공공의 적>의 꼴통 강철중 등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던 설경구의 아우라가 돌아온 느낌이다.
임시완은 전작들에서 보여줬던 ‘바른 생활 청년’ 이미지를 깨려고 과감한 변신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거친 수컷의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욕심’만큼 영화에서 빛을 발하지는 못한다. 머리를 노랗게 염색하고, 껄렁껄렁 걸어도 ‘무엇을 하든 착한 임시완’이 보일 뿐이다. 여린 체구지만 ‘싸움 짱, 두뇌 짱’이라는 인물 설정 자체가 애초에 무리였을까.
가장 아쉬운 것은 천 팀장 역의 전혜진이다. ‘걸 크러시’ 느낌만 있을 뿐, 체화하지 못해 어색한 연기는 둘째 치자. 유일하게 비중 있는 여성 등장인물임에도 그가 온갖 무리수를 무릅쓰고 범죄조직을 쫓는 이유가 전혀 그려지지 않아 그저 겉돌며 소모되는 캐릭터에 그쳤다. 배우보단 감독의 탓이 크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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