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7.05.05 20:56 수정 : 2017.05.05 21:03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미국 드라마 <시녀 이야기>

불길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도로에서 추격전이 벌어진다. 도주자는 어린 딸을 동반한 젊은 부부다. 자동차가 나무를 들이받고 멈추자 이들은 산으로 달아난다. 총을 든 군인들이 뒤를 쫓는다. 결국 남편은 사살되고 딸과 여자는 잡힌다. 곧 화면은 전혀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다. 조용한 저택이다. 시간마저 과거로 돌아간 것처럼 잡혀온 여자는 전통적 하녀 복장을 한 채다. 내레이션을 통해 자신의 이름이 오브프레드라고 소개한 그는 기이한 말을 덧붙인다. 과거엔 다른 이름이 있었지만 지금은 금지되었노라고.

넷플릭스, 아마존 프라임과 경쟁 중인 동영상 서비스 업체 훌루가 새 오리지널 시리즈 <시녀 이야기>(원제 ‘The Handmaid's Tale’)를 선보였다. 캐나다 출신의 세계적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가 1985년에 발표한 동명 원작을 드라마로 옮겼다. 조지 오웰의 <1984> 못지않게 공포스러운 가상의 전체주의 국가를 배경으로, 특히 여성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폭력을 소름 끼치게 묘사한 원작은 페미니스트 디스토피아 걸작으로 칭송받는다. 이미 1990년에 <양철북>의 폴커 슐뢴도르프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바 있다.

드라마는 에스에프(SF) 스릴러에 가까웠던 영화에 비해 원작의 섬세한 여성주의적 시선을 좀 더 충실히 구현한다. 억압적 사회 안에서 복화술로 말해야 하는 여성들의 현실을 담담한 내레이션으로 표현한 원작처럼, 드라마 역시 멀리서 바라보면 평온하고 아름다운 풍경 안에 여성들을 정물처럼 담아내며 여성 통제의 공포를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이 세계 속의 여성들은 가부장적 전제국가의 노예로 살아간다. 국가의 필요에 따라 계급이 철저히 분류되어 있고, 그중 오브프레드(엘리자베스 모스) 같은 ‘시녀’ 계급은 오직 번식용이다. 전쟁, 환경오염 등으로 급격히 감소한 출생률 때문에 국가가 임신 가능 여성들을 강제 출산 도구로 만든 것이다. 배속받은 사령관의 이름을 딴 오브프레드(Of Fred)라는 이름은 가부장적 권력의 소유격으로만 존재하는 여성들의 처지를 말해준다.

드라마에 대한 호평에는 트럼프 시대 미국을 투영한 시의성도 한몫을 한다. 1980년대에 발표된 원작이 레이건 시대 강한 미국의 전제주의적 성격을 경고했다면, 드라마의 비판정신은 원작의 근미래를 현실로 구현한 듯한 트럼프 시대에 한층 힘을 얻는다. 실제로 노골적인 여성, 소수자 혐오로 극우층의 열혈 지지를 받은 트럼프는 취임하자마자 레이건의 멕시코시티 정책을 부활시킨 낙태 반대 정책에 제일 먼저 서명했다. 당시 그 정책에 저항했던 시위의 문구가 드라마 속에 등장하기도 한다.

김선영
드라마 위에 현실이 자꾸만 겹쳐지는 것은 대선 열기가 한창인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다. 성폭행 모의 경험이 있는 대선 후보가 지지율 2위를 다투고, 그와 ‘진정한 보수의 얼굴’을 경쟁 중인 또 다른 후보가 여성부 대신 인구부를 설치하자는 주장으로 여성은 생산 도구라는 전근대적 인식을 드러내는 게 이곳의 현주소다. 여성들에게는 이 작품이 에스에프가 아니라 리얼리즘 드라마로 보이는 이유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