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2.13 19:44
수정 : 2017.02.13 23:30
시상식까지 앞으로 2주일…
새로 개봉 앞둔 후보작들
제89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2주 앞으로 다가오면서 아카데미 효과를 노리는 외화들로 극장가가 풍성하다.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 9편 중 이달초 <컨택트>와 <라이언>이 국내 개봉한 데 이어 작품상에 오른 멜 깁슨 감독 <핵소 고지>와 작품·감독상 수상 여부가 주목받는 <문라이트>는 22일, 남우주연상의 유력한 후보인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15일 개봉한다. <라라랜드>와 <로스트 인 더스트>는 이미 지난해 개봉했으며, <라라랜드>는 300만 관객을 넘겨 순항하고 있다. 국내 개봉을 앞둔 3편의 후보작을 미리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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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체스터 바이 더 씨>. 더픽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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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도적 트라우마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케네스 로너건 감독은 이미 <유 캔 카운트 온 미>(2000)와 <마가렛>(2011) 등에서 평범하고 무심한 일상의 틈 사이로 보이는 사람들의 상처와 상실에 대한 관찰력을 보여준 일이 있었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에서 그 틈은 너무나 커서 무엇으로도 덮을 수 없지만 감독의 여전한 안정적이고 무심한 태도가 위안이 된다.
미국 보스턴에서 잡역부로 일하고 있는 리(케이시 애플렉)는 형 조(카일 챈들러)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인 매사추세츠주 바닷가 마을, 맨체스터로 돌아온다. 그러나 형은 얼굴도 보기 전에 죽고 혼자 남은 형의 아들을 돌봐야 한다. 돌아온 고향에서 사람들이 그의 시선을 피하며 수군거리는 현재의 모습과 십수년 전 그가 형과 조카와 함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을 때 아름다운 기억이 교차 편집되면서 관객들은 대체 리는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늘 불안하고 화난 얼굴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척하는 주인공의 마음은 플래시백의 회상 장면을 통해서만 조금씩 드러난다.
케이시 애플렉은 이 영화로 제74회 골든글로브 드라마 부문 남우주연상 등을 수상했다. 배우 맷 데이먼이 직접 연출에 주연까지 하려 했으나 다른 일정 때문에 제작만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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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라이트>. 오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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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의 성장담 ‘문라이트’
마약중독자인 어머니는 그를 돌보지 않았고, 친구들은 그를 놀리고 괴롭혔다. 그를 유일하게 돌봐준 마약상 후안(마허샬라 알리)은 아버지 없는 그에게 육친 같은 존재였다. <문라이트>는 3가지 빛깔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 새로운 색깔을 만든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속 제제처럼 어린 샤이론(앨릭스 히버트)이 후안을 통해 처음으로 사랑을 받는다는 첫번째 에피소드, 후안이 죽고 난 뒤 더욱 외로운 청소년으로 자란 그(애슈턴 샌더스)가 동성 친구와의 사랑에 눈뜨는 두번째 이야기를 거쳐 후안처럼 마약상이 되는 현재의 모습(트레반테 로데스)에 이른다.
가난을 대물림하는 흑인 공동체에서 동성애자임을 자각하는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배리 젱킨스 감독은 인종과 성적 정체성, 경제적 배경이라는 지층에서 검게 빛나는 광석을 캔다. “달빛 아래선 흑인 소년들도 모두 파랗게 보이지.” 극 중 이 말은 이 영화가 사랑에 대한 이야기임을 암시한다. 우정이든 애정이든 관능이든 그들을 달빛 아래서 빛나게 하는 것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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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소 고지>. 판씨네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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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실과 이상의 전쟁터 ‘핵소 고지’
전쟁영화라고 하면 거대한 스펙터클 아니면 반전 영화처럼 정해진 유형을 상상하지만 멜 깁슨이 연출한 <핵소 고지>는 제3의 유형이거나 이 둘을 섞어놓은 것이다. 이 영화가 바탕으로 삼은 실존 인물 자체가 전쟁에 대해 다른 종류의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총을 들지 않고 참전한 데즈먼드 도스의 이야기다. “일본의 진주만 습격에 분개하지만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리기 위해 입대했다”며 집총 훈련을 거부한 이 비폭력주의자는 군사 재판에 넘겨졌다가 의무병으로 오키나와로 보내진다. 이곳에서 맨몸으로 75명의 생명을 구해냈다는 도스의 이야기는 영웅담과 다른 종류의 전쟁은 없는지에 대한 질문을 두루 갖추고 있다.
영화는 전쟁 장면을 구경하기 좋은 스펙터클로 포장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인다. <아포칼립토>에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인간의 육체를 묘사했던 멜 깁슨은 이 영화에서 총알이 머리를 꿰뚫는 장면, 다리가 쪼개지며 살과 뼈가 드러나는 모습 등을 적나라하게 그렸다. 전쟁이 주는 상처를 관객들에게 전달하려는 시도일 것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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