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2.12 20:24
수정 : 2017.02.16 10:43
|
앙꼬 <나쁜 친구>. 창비 제공
|
여성 만화가들이 키운 ‘리얼리즘’ 만화
여혐·성희롱 등 개인적 이야기부터
의료민영화·삼성백혈병·1인가구
사회적 문제까지 일상언어로 그려
이슈때마다 SNS는 만화 확산 통로
“순정만화에 갇혀있던 여성작가들
자의식 성장하며 대안만화 그러내”
|
앙꼬 <나쁜 친구>. 창비 제공
|
“난 관종(관심종자)일까? 왜 묻지도 않은 내 이야기를 이렇게 써서 올리지?” ‘전지의 작가시점’이라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전지 작가는 한 팟캐스트 방송에 나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아무도 안 물어보는” 여자들의 자기 서사는 요즘 만화가 된다. 전지 작가는 블로그에 자신의 이야기를 꾸준히 <끙> <오팔하우스> 등의 만화로 만들어 올려왔고 작가의 어머니 이야기도 <있을재 구슬옥>이라는 만화로 그렸다.
전지 작가는 앙꼬 작가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앙꼬 외에도 김성희, 심흥아, 김은성 등 폭력과 가난, 외로움이 가득한 자신의 삶까지 공개하며 사회의 밑바닥을 탐구하는 여성 만화가들이 있다. 남성 작가들이 만드는 리얼리즘 만화와는 또 다른 현실주의 세계를 창조하며 지금 한국 리얼리즘 만화의 본줄기를 이루고 있다.
■ 폭력부터 일상까지 ‘여성들의 리얼리즘’ 김성희 작가는 앙꼬와 함께 용산 참사를 정면으로 다룬 <내가 살던 용산>을 그린 바 있다. 그는 아르바이트를 구하다 학교에서 특수학급을 돌보는 통합 보조교사가 됐고, 이 경험을 <똑같이 다르다>로 펴냈다. 특수교사 일은 “아르바이트와 계약직을 전전하며 건진 생활공부 중 가장 강도 높았다”. 이전이었다면 장애인, 교육, 임시교사 등의 실태에 대한 사실적 스케치가 됐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는 구조 못지않게 자기 성찰에 주안점을 뒀다. 작가는 책 말미에서 개인적인 고민에 대한 지금까지와는 다른 결의 해답을 내놓는다. “세상이 나를 원했으면 하고 바랐다. 하지만 세상을 원한 건 언제나 나였다. 바로 나였다.”
아버지에게 배드민턴채로 두드려 맞고, 담임선생에겐 의자로 맞고… 맞고 또 맞으며 세상을 깨쳐야 했던 앙꼬 작가의 <나쁜 친구>로 시작한 여성 작가들의 리얼리즘은, 개인적인 서정의 세계와 삼성 반도체 공장 백혈병 문제, 용산 참사 등 사회적인 문제를 모두 포괄해온 김성희 작가를 거쳐, 음식 이야기를 통해서 20대 여성의 생활과 자의식을 드러내는 들개이빨 작가의 <먹는 존재>, 가난한 예술가의 삶과 사랑의 조건을 담은 전지 작가의 <끙>, 혼자 사는 삶이 더욱 당연한 세대를 그린 김정연 작가의 <혼자를 기르는 법> 등으로 다양해져가고 있다. 공감은 원하지만 판타지는 수용하지 않는 것이 이 다양한 리얼리즘 만화들의 태도다. 만화 번역 그룹인 해바라기 프로젝트 이하규 팀장은 “개인적인 내밀한 이야기를 통해 보편성을 끌어낸 앙꼬식 어법이 외국 독자들에게 통했다는 사실은 재밌는 변화의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인기를 얻고 있는 씨냉 작가의 만화들. ‘어쩌라는 걸까' 편. 누리집 갈무리
|
■ 에스엔에스(SNS)와 여성주의가 키우는 새 여성 작가들 최근엔 여성 작가들의 사실주의 만화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웹툰 비평지 <유어마나> 선우훈 편집장은 “여성 작가들은 소수자로서 공감을 끌어내기 쉽고 자전적으로 풀 수 있는 소재가 훨씬 많다”며 “최근엔 에스엔에스를 통해 여성주의가 목소리를 키우면서 리얼리즘은 수많은 가지를 얻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 여혐, 성희롱 사건 등이 이슈로 떠오를 때마다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엔 처음 보는 닉네임의 작가들이 그린 1~6컷짜리 짧은 만화들이 퍼져나간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활동하는 씨냉 작가는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바탕으로 여성혐오, 코르셋 깨우기, 생리, 노브라 등 다양한 주제의 만화를 그린다. 씨냉 작가의 그림은 에스엔에스에 대자보처럼 퍼지는 것은 물론 실제 여성주의 시위에 등장하기도 한다.
페이스북에 1컷짜리로 연재한 실키두들 작가의 만화는 <나~안괜찮아>라는 책이 됐다. 이 만화는 강도 높은 여성주의 메시지부터 여성의 삶에 대한 잔잔한 공감과 위로까지를 두루 전한다.
정재윤 작가는 페이스북 페이지 ‘재윤의삶’에 9컷 만화를 올린다. 목욕탕에서 때 미는 이야기부터 콘돔에다 먹고 요리하는 이야기까지 여느 여자의 삶을 솔직하게 풀어낸다.
지금 여성은 그리는 주체에서건 그려지는 소재에서건 사실적인 한국 만화의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
전지 작가 <끙>. 유어마인드 블로그 갈무리
|
|
전지 작가 <끙>. 유어마인드 블로그 갈무리
|
|
전지 작가 <끙>. 유어마인드 블로그 갈무리
|
|
전지 작가 <끙>. 유어마인드 블로그 갈무리
|
|
김성희 작가 <똑같이 다르다>. 누리집 갈무리
|
|
앙꼬 <나쁜 친구>. 창비 제공
|
|
앙꼬 <나쁜 친구>. 창비 제공
|
|
에스엔에스(SNS)를 통해 인기를 얻고 있는 씨냉 작가의 만화들. ‘오빠가 여성해방 갈켜줄게' 편. 누리집 갈무리
|
[%%IMAGE11%%]
[%%IMAGE12%%]
[%%IMAGE13%%]
[%%IMAGE14%%]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