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7.01.30 19:15
수정 : 2017.01.30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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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를 본 관객이 디시인사이드에 올린 영화표 사진. 인터넷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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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N차 관람’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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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를 본 관객이 디시인사이드에 올린 영화표 사진. 인터넷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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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 36번 ‘스타워즈’ 31번 등 무한반복 관람 영화 마니아 늘어
배우앓이가 원인일 때도 많지만 영화자체에 심취하는 게 더 잦아 “같은 장면이 달리 보이는 게 매력”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해 평균 4편의 영화를 본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록이지만 평균을 높이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지난 1월4일 영화배급사 뉴가 <판도라> 개봉부터 25일 동안 극장에서 이 영화를 가장 많이 본 관객을 찾는 이벤트를 했더니 36번 관람한 이가 1등이었고, 16번 봤다는 이도 5명이나 나왔다. 월트디즈니픽처스코리아도 <스타워즈 로그원> 최다 관람객 찾기를 해서 12월28일부터 1월15일까지 31번 봤다는 관객에게 1등을, 21번 본 2명에겐 2등을 시상했다.
좋아하는 영화를 무제한 재관람하는 특정 영화 마니아들이 늘면서 ‘엔(N)차 관람’이 흥행 열쇠로 떠오르고 있다. 엔차 관람객 찾기에 나선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은 얼마 전 18차 관람객을 찾았다. 재관람률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영화 <라라랜드>를 본 관람객들은 에스엔에스에 자진해서 ‘엔차 관람’을 인증하는 극장표를 찍어 올린다. 트위터와 블로그에는 이 영화를 십수회 본 사진들이 올라왔다. 뉴 홍보팀 쪽은 “같은 영화를 2번 이상 재관람하는 엔차 관람 열풍은 이제 소수 마니아가 아니라 영화 관람 트렌드를 좌우하는 핵심 영화팬들의 영화 보기 패턴으로 파악되면서 영화사들이 엔차 관람 이벤트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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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반복관람을 인증하는 에스엔에스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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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에선 좋아하는 배우를 가까운 거리에서 보기 위해서이거나 배우에 따라 같은 역할이 다르게 표현되는 것을 보기 위해서 등 주로 배우가 반복관람의 원인이 된다. 영화 <판도라>를 36번 본 관객도 배우 김남길씨 팬으로 알려지는 등 배우가 재관람을 부르는 경우도 많지만, 영화 자체가 탐구와 분석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더 잦다. 지난해 수능을 마치고 <판도라>를 극장에서 16번 봤다는 박주현(19)씨는 “처음엔 배우 김남길씨의 팬이라서 그가 무대 인사 하는 것을 보려고 표를 2번 끊었다. 그런데 같은 영화를 2번 보면서 영화가 새롭게 다가오는 경험을 하게 됐다”고 반복관람에 빠진 이유를 설명했다. 과학도인 그는 원전 문제를 다룬 영화를 수없이 반복관람하면서 냉각수 온도 문제, 수소 기체에 의한 2차 폭발 가능성, 방수작업 과정 등에 대한 궁금증을 배급사에 직접 문의하는 열성을 보이기도 했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중에선 단연 <아가씨>가 엔차 관람의 전설이다. 인터넷 동호회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의 영화 <아가씨> 갤러리엔 아이디가 미니시(MINISI)인 이용자가 이 영화를 103번 본 영화티켓을 사진으로 찍어 올리고 “영화 개봉일을 의미하는 106번을 보겠다”고 했다가 “결국엔 111번을 봤다”는 게시글을 올리기도 했다. <아가씨> <내부자들> <곡성> 등 지난해 재관람률이 높았던 것으로 알려진 영화들을 보면 대체로 숨은 장면이 많으며 감독의 의도가 궁금해지는 작품이 주류를 이룬다. 엔차 관람은 같은 장면을 다르게 보는 해석의 놀이인 셈이다.
영화 <아수라> 팬 ‘아수리언’들은 극장을 빌려 상영회를 열고 극장 상영이 끝난 뒤에도 이 영화를 틀어놓고 모임을 가지며 반복관람을 이어가고 있다. “아수리언들은 극장 상영을 늘리기 위해서, 한국영화사에 드문 장면으로 기억될 자동차 결투 장면을 음미하기 위해서 등의 이유로 이 영화를 반복관람한다”고 전하는 아수리언 조길란(26)씨는 “나는 극장에선 6번밖에 보지 못했는데 이 영화가 좀더 많이, 오래 상영됐더라면 더 많은 관람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극장 회전문을 수없이 도는 영화팬들 덕분에 영화는 새로운 가치와 수명을 얻기도 한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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