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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2.05 13:33 수정 : 2016.12.05 21:41

[권여선의 인간발견]
<미씽…>의 두 닮은꼴 시어머니

<미씽:사라진 여자>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제공

<미씽 : 사라진 여인>에서 두 명의 시어머니를 만났다. 주인공은 며느리들인데 나는 시어머니들에 더 눈이 갔다. 강남의 중산층 유한부인과 충청도 시골의 촌부라는, 교양과 재산의 극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정신은 쌍둥이처럼 닮았다. 맞다. 새로울 게 없다. ‘시어머니’하면 떠오르는 막장의 이미지에서 그들은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세상은 여전히 막장이고 그들의 존재감은 더욱 육중하다.

영화는 양육권을 두고 소송 중인 워킹맘 지선의 어린 딸이 보모와 함께 사라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야기는 딸을 찾기 위해 조선족 보모 한매를 추적하는 지선의 눈물겨운 고투를 따라간다. 딸을 찾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하겠다는 지선에게 서서히 한매의 삶이 드러난다. 한매는 이미 딸을 잃지 않기 위해 지선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모든 것을 다 해온 선배였다.

그리고 여기, 그들보다 더 인생 선배인 시어머니들이 있다. 손녀의 양육권과 생사여탈권을 놓고 며느리와 다투는 시어머니들은 한결같이 집안에 여자가 잘 들어와야 한다고 소리 높여 외치는데, 원래 그 집안은 개판이었고 아들들은 ‘개새끼’들이었다는 걸 그들만 모른다. 자식을 위해 ‘무슨 짓이든 하는 것’과 ‘무엇이든 다 하는 것’은 천지 차이이다. 전자는 타인을 제물로 삼고 후자는 자신을 제물로 삼는다.

두 개의 의자 장면이 있다. 경찰서 의자에 앉아 있는 지선을 시어머니가 뛰어 들어와 밀쳐서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장면, 그것은 마치 내 아들과 이혼한 너 따위는 더 이상 이 의자에 앉아 있을 자격이 없다고 일갈하는 듯하다. 얻어맞아 피투성이가 된 얼굴로 의자에 앉은 한매의 긴 머리칼을 시어머니가 싹둑싹둑 자르는 장면, 그것은 또한 네가 이 집안의 며느리 자리에 있는 한 내 가혹한 훈육을 피해갈 수 없다고 저주를 내리는 듯하다. 경찰서에서 “우리 석호 좀 찾아줘, 우리 석호 좀 찾아줘”라고 신들린 주문을 외우는 한매의 시어머니를 보는 것이나, 어떤 사체 앞에서 “우리 다은이 아니에요, 우리 아이가 아니야” 하고 외치는 지선의 시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참담하다.

‘모성’ 신화는 모성이란 이름으로 여성에게 자식의 양육에 따르는 모든 희생을 짐 지운다는 점에서도 위험하지만, 그 잔혹한 훈련이 같은 여성에 의해 수행된다는 점에서, 모성을 이용해 며느리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는 자가 바로 시어머니라는 점에서 곱절 위험하고 비정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에 시아버지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모성’ 뒤에는 언제나 권력화된 ‘시모성’의 폭력적인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권여선 소설가
극도로 이기적인 가족주의는 극도로 폭력적인 국가주의와 동심원을 이룬다. 그러니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엄마’라는 호칭 뒤에 ‘부대’라는 쇳내 나는 전투적 이름이 붙은 집단이 생겨난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더 나아가 그 집단의 대표라는 자가 구의역 스크린도어 참사 유가족에게 “이모가 무슨 가족이냐? 고모라면 몰라도”라고 말한 것은 그 집단의 ‘시모성’ 이데올로기를 정확히 대변하고 있다. 이들 시어머니 부대들이 지난 대선에서 누구를 찍었을지 나는 분명히 알 것 같다. 독재자 아비의 남근을 덮어쓴 딸의 이름 옆에 도장을 꾹 눌러 찍었을 그들 부대원의 주름진 손의 힘줄을 직접 본 듯 생생하고 이물스럽다.

권여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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