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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17 10:47 수정 : 2016.10.17 10:58

[권여선의 인간발견] 영화 <다가오는 것들>의 나탈리

무례와 비난으로 답하는 세상에
다시 말 건네는 지식인의 고투

영화 <다가오는 것들>. 찬란 제공

<다가오는 것들>(감독 미아 한센-러브)에서 중년의 철학교사 나탈리를 만났다. 그는 지식인 여성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위태롭고 지난한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나는 그의 제자가 되고 싶다. 그가 낭독하는 루소를 듣고 그와 진리에 대해 토론하고 그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비교적 평범하고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던 나탈리는 중년의 시기에 크고 작은 위기를 맞는다. 학교에서 연금법을 반대하는 고등학생 시위대에게 비난을 받거나 출판사에서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철학총서 필진에서 제외되는 경우는 작은 위기이다. 25년 동안 함께 살던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겨 별거하게 된 것과 요양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엄마가 세상을 떠난 것은 큰 위기이다.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고 버스 안에서 눈물을 흘리던 나탈리는 차창 밖으로 남편과 애인이 다정하게 지나가는 모습을 본다. 순간 그는 웃음을 터뜨리는데, 그 웃음에는 자조나 어이없음도 있지만 해방감도 있다. 보수적인 철학교수인 남편은 나탈리가 젊은 시절 급진주의자였다는 걸 은근히 조롱해왔고, 불안장애를 앓는 엄마는 시도 때도 없이 이런저런 어리광과 협박으로 그를 괴롭혀왔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 상실은 자유이기도 한 것이다.

‘온전한 자유인’이 된 나탈리는 애제자인 파비앙이 살고 있는 산골짜기 대안공동체를 찾아간다. 그러나 그곳에서 위안을 얻는 대신 소외를 경험한다. 논쟁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급진성을 논하기엔 자신이 너무 늙었다고 변명해야 하는가 하면, 파비앙으로부터는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고 ‘양심과 생활’을 다 지키려는 이중적인 지식인이라는 치명적인 비판을 받는다. 그는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도록 돕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며 반박하지만, 방에 돌아와서는 자기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한 느낌에 흐느껴 운다. 만약 그가 남편처럼 다른 사상이나 이념에 귀를 닫고 제자들을 권위로 찍어 누르며 살았다면 굳이 받지 않아도 될 상처였다. 배려와 존중은 때로 무례와 비난으로 돌아온다.

그 후에도 나탈리는 여전히 학생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며 혼자 살아가지만, 철학서의 문장들을 낭독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이전과 다른 고뇌와 회한이 어른거린다. 1년 뒤 나탈리는 다시 파비앙의 농장에 찾아가는데, 한밤중에 파비앙과 단둘이 있게 된 그는 그에게 “너 자신에 대한 얘기”를 해달라고 말한다. 그 후 파비앙이 어떤 얘기를 했는지 영화는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제자로부터 모욕에 가까운 비판을 받은 스승이 다시 그에게 진지하게 말을 건네고 경청의 자세를 취하는 장면만으로 충분하다. 이것이 바로 ‘이중적 지식인’이라는 파비앙의 비판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는 자’로서 나탈리가 내놓은 대답이자 ‘스스로 생각하도록 돕는 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영화의 모든 빛나는 장면은 오로지 나탈리 역을 맡은 이자벨 위페르로부터 온다. 새처럼 빠르게 총총대며 걷거나 요리를 하거나 꽃다발을 쥐고 캐리어를 끌며 달리는 경쾌한 동작들부터, 전철에서 책을 읽거나 거실에서 꽃향기를 맡거나 잔디밭에 비스듬히 누워 책을 읽는 고요한 침잠의 자세에 이르기까지, 매순간 그의 눈빛과 표정과 목소리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속에 깃든 여성적 지성은 이토록 예민하고 숭고하니, 어떤 조롱과 비판도 세상과 철학적으로 소통하려는 그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으리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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