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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09 13:27 수정 : 2016.10.09 15:08

‘레드카펫 퍼포먼스’ 정지영 감독, 배우 김의성
제3회 사람사는세상 영화제 혁신 작업도 나서

지난 6일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서 ‘인디펜던트 필름 페스티벌 포 부산’이라고 직접 쓴 피켓을 들고 선 배우 김의성. 연합뉴스 제공
부산국제영화제 포토존에 선 정지영 감독. 부산국제영화제와 이용관 전 위원장을 지지한다는 내용의 스티커를 옷에 붙이고 개막식장으로 들어왔다. <씨네21>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에서 튀는 두 남자가 있었다. 영화제 독립을 주장하는 손팻말을 들고 입장했던 배우 김의성과 부산국제영화제 스티커를 붙이고 개막식장으로 들어온 정지영 감독이다.(<한겨레> 10월7일치 23면, ‘감독·배우 ‘레드카펫 시위’ 부산국제영화제 홀로서기 ‘춘몽’을 꾸다’) 공교롭게도 이 두 사람은 20일부터 열리는 ‘사람사는세상 영화제’를 함께 준비하고 있기도 하다. 작품에서도 영화계에서도 ‘튀는 행보’를 걸어온 두 사람을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는 해운대에서 만났다.

“돌발행동이었지요. 영화제에 참가를 결정했지만 이렇게 그냥 가도 될까, 어떤 식으로든 의사표현을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전날 집에서 혼자 준비했어요. 몇가지 과격한 구호를 썼다가 가장 점잖은 걸로 선별했습니다.”

김의성씨는 ‘인디펜던트 필름 페스티벌 포 부산’이란 메시지를 직접 써서 레드카펫에 가져왔다. 옆에서 이 말을 듣던 정지영 감독은 “나는 오히려 영화인들이 ‘서포트 비프, 서포트 미스터 리’(부산국제영화제와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을 지지합니다)라는 스티커를 만들었을 때 너무 약하다 싶었지만 독립성이 보장되는 영화제를 지지하는 것은 내년 영화제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아무런 망설임 없이 붙였다”고 했다. 자칫 김동호 이사장 체제로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 반대하는 것처럼 비칠까봐 스티커를 붙이지 않고 들어왔던 젊은 감독들은 정지영 감독을 보고서야 하나둘 스티커를 붙였다는 소문이다.

‘찍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먼저 행동에 나서서 다른 영화인들의 팔을 잡아끄는 것은 정지영 감독에게 너무나 익숙한 일이다. 1990년대 중반부터 스크린쿼터 지키기에 나섰고 이후 ‘스크린쿼터 사수 영화인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던 그는 2011년 한진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의 크레인 농성이 영화제 분위기를 가라앉힌다며 비난받을 때 영화인들의 희망버스를 만들어 부산으로 달려오기도 했다. 영화감독으로서도 <남부군>(1990)과 <하얀 전쟁>(1992)부터 가깝게는 <부러진 화살>(2011), <남영동 1985>(2012) 등 한국 사회가 갖고 있던 공포와 금기를 건드린 영화들로 비평과 흥행 양쪽으로 좋은 성과를 거뒀다. 2013년엔 기록 다큐멘터리 <천안함 프로젝트> 제작을 맡기도 했다. 얼마 전 지방자치단체가 민간에 영화제를 맡긴 첫 사례가 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정지영 감독에게 첫 민간 조직위원장을 맡긴 것은 상징적인 일이었다.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 일원으로 처음 연기를 시작한 배우 김의성은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1996)의 주연을 맡기도 했지만 돌연 연기를 중단했다가 10년 만에 다시 홍상수 감독의 <북촌방향>으로 활동을 재개했다. 실패한 사업가(<북촌방향>), 대학교수(<건축학개론>) 역으로 지식인 배역에 잘 어울리던 그는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에서 고문 수사관을 맡은 것을 계기로 스크린 속 악의 대명사로 다시 태어난다. 얼마 전 개봉한 <부산행>에서 이기적인 상무, 드라마 <더블유>에서 절대 악인으로 “세상이 다 아는 나쁜 놈”이 됐다. 그 이전까지는 단 한번도 악역을 한 적이 없었는데 <남영동 1985>부터 곧 개봉할 <더 킹>까지 30편의 영화에서 모두 악역이었다는 것이다. 정지영 감독은 “내가 악역 데뷔시켰구만” 하며 미안하게 웃었지만 정 감독이 얼마 전 사람사는세상 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맡게 됐을 때 심사위원으로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도 김의성이었다. 평소 배우 김의성이 올리는 촌철살인 트위트를 보아왔던 정 감독은 “김의성이 하는 심사평 자체가 기대된다”고 했다.

부산에서 만나 담소를 나누고 있는 배우 김의성(왼쪽)과 정지영 감독. 남은주 기자
김의성씨는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 심사위원을 맡은 데 이어 사람사는세상 영화제의 한국단편경선 심사위원으로도 합류했다. “영화제는 많을수록 좋다. 작지만 예술성 있는 영화들은 영화제가 아니라면 관객과 만날 기회조차 갖기 어렵다. 특히 창작자에게 상금을 주는 영화제는 귀중하다.” 2개 영화제 위원장을 맡게 된 정지영 감독도 “프랑스에선 200개 영화제가 있어 극장에서 만날 수 없는 영화들이 관객과 만날 소중한 창구가 되고 있다”고 했다. 올해로 3번째를 맞는 사람사는세상 영화제는 2014년 노무현재단에서 시작한 진보적 가치 지향 영화제로 올해부터 영화제 사무국을 독립시켜 개막작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와 폐막작 <공동정범>을 비롯해 경쟁부문 진출 국내작 20편과 해외초청작 6편을 서울 서대문구 아트하우스모모에서 상영한다.

몸이 가벼운 작은 영화제가 영화제 본래의 가치를 지키는 일은 큰 영화제보다는 쉬운 것이 아닐까? “좋은 영화제를 만드는 것은 돈과 사람이라고들 하는데 돈은 받되 돈으로부터 독립한 영화제를 만들어야 한다”며 두 사람은 입 모아 말했다. 이들이 생각하는 이번 부산국제영화제는 어떨까? “논란 속에서 개막식이 소박하게 치러지면서 부산국제영화제의 처음 풍경으로 돌아간 것 같다. 레드카펫에서 사진 찍기보다는 영화 창작자들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던 뜨거웠던 모습으로.”(김의성) “처음엔 영화계가 갈등하는 것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시간이 흐르고 보니 서로 역할을 분담해 적절하게 대응했던 것이다. 영화계는 분업과 자기조절 능력이 살아 있다.”(정지영) 두 사람은 희망적으로 진단했다.

부산/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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