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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05 02:31 수정 : 2016.10.05 11:27

문제적 감독 인터뷰③ <죽여주는 여자> 이재용 감독
성매매·노인 자살로 사랑과 죽음 스케치
품위있는 죽음·따뜻한 소수자 공동체 그려
있을 법한 얘기와 있었던 현실 섞은 기록물

유혈 낭자한 거리, 분단 상황에 대한 돌직구, 노인의 성과 죽음…. 스크린은 강렬했다. 자신의 영화 세계가 확고한 감독들이 이 가을 유난히 강렬한 직설의 언어로 돌아왔다. 표현과 주제의식 모두 문제작이라 부를 만한 작품을 내놓은 김성수(<아수라>), 김기덕(<그물>), 이재용(<죽여주는 여자>) 감독을 인터뷰했다. 3~5일에 걸쳐 매일 한명씩 차례로 내보낸다.

<정사>부터 <뒷담화>까지 파격과 대중성을 함께 추구해온 이재용 감독이 이번에는 노인 성매매와 안락사를 다룬 <죽여주는 여자>를 들고 돌아왔다. 사진 조소영 PD azuri@hani.co.kr

“그때그때 꽂히는 이야기를 해왔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땐 미술이 돋보이는 사극을 하고 싶었고. 여배우들과 친해지면서 혼자보기 아깝다고 해서 <여배우>를 했고, 단편영화 제안을 받고선 <뒷담화:감독이 미쳤어요>를 원격영화로 찍었고, <두근두근 내인생>은 내가 하고 싶은 영화를 하려면 대중적 작품을 해놓아야 할 필요도 있지만 늙음의 문제, 아이를 가진 부부들의 청춘이 없어지는 문제 등을 담고 싶었고.” 이재용 감독이 이번엔 ‘박카스 할머니’에 꽂혔다. 6일 개봉하는 <죽여주는 여자>는 박카스 할머니(윤여정)의 이야기를 통해 노인들의 성매매와 고독, 자발적인 죽음의 문제를 다룬다.

성매매 할머니, 치매거나 중풍에 걸린 노인, 트랜스 젠더 쇼걸, 다리 한쪽이 없는 청년…. 이들은 모두 억센 도시에서 부대끼다 쉽게 떨어져 나갈 수 있는 각질같은 존재들이지만 영화 <죽여주는 여자>는 주변부의 삶에 표정과 감수성을 입혀 물기가 흐르게 한다. 배우 윤여정의 말에 따르면 “너무 쿨해서 여자들이 울고불고 하는 거 딱 질색한다”는 이재용 감독에게 쿨하고 따뜻하게 도시의 어떤 그림자 같은 삶을 포착해낸 이야기를 들었다.

-윤여정은 “이재용이 정말 내게 베드신을 시킬 줄은 몰랐다”고 하던데, 영화 찍고 나서 둘이 사이가 나빠진 것은 아닌가.

“저는 괜찮은데 그분이…. 이번에 개봉하면서도 계속 ‘내가 이 나이에 이런 연기를 했다’고 투정을 부리기에 ‘거참, 비련의 여배우 코스프레 그만하세요’ 하고 따끔하게 말해줬다. 8년째 막역한 사이로 지내다보니 이젠 서로에 대한 신비감도 없고 애증만 남아서….”(웃음)

-이 영화는 감독이 처음부터 윤여정을 떠올리면서 만들었다고 들었다.

“원래 윤여정을 주인공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따로 있었다. 사람들에게 자신이 나이들어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중계하며 살 수밖에 없는 여배우 이야기다. 반자전적 이야기라서 시나리오엔 소설가 최인훈, 배우 김자옥, 화가 김점선 등 실제 윤여정씨와 친했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언제 자신에게도 순서가 올까 생각한다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노인 성매매를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먼저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재를 찾음과 동시에 캐스팅도 했다. 여배우들의 롤모델, 패셔니스타, 도회적인 여배우 이미지에 역행하는 배역을 보고 싶었다. 안정적인 캐스팅보다는 사극(<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에 배용준이 나온다면 어떨까? 강동원이 애아빠(<두근두근 내인생>)를 하면 어떨까? 하는 모험을 즐기는 것 같다.

<죽여주는 여자>에선 배우 인생 50주년을 맞은 윤여정이 ‘박카스 할머니’ 역을 맡았다. 씨지브이아트하우스 제공
-가난해서 성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여자가 어느날 문득 다른 사람이 죽는 것을 도와준다는 설정이다. 생계에 지친 여자가 이타적인 인물로 바뀌는 과정이 얼마나 설득력있게 보이느냐가 이야기의 성패를 좌우할 것 같다.

“영화를 만들고 나서 차분히 생각해보니 항상 내가 끌리는 이야기는 성, 곧 사랑의 이야기와 그리고 죽음이었다. 박카스 할머니에 꽂힌 이유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보여줄 수 있어서였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됐다. 처음엔 사회적인 문제작이라는 것을 의식했다기보다는 살아있음을 느껴주게 했던 사람이 죽음까지 인도하게 되는 그 아이러니에만 집중했다.

영화의 소영이라는 할머니는 본능적으로 갈 곳 없는 아이를 품었고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청년과 피자를 나눈다. 악다구니 써가면서 살아야 하지만 이기적이기만 한 사람은 아니다. 소주로 입을 한번 헹구고, 촛불을 켠 뒤 자신만의 독특한 마사지법을 하는 직업 원칙도 있으며 자신은 다른 ‘박카스 할머니’와 달리 미국 물 좀 먹었으니 욕도 영어로 할 수 있고 청자켓도 입는다는 자긍심이 있다. 이런 점들이 ‘죽여주는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남자들은 혼자서 할 줄 아는 게 무언가.

“영화에서 자기 희화나 ‘셀프 디스’를 많이 하는 편인데, 영화에서 박카스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영화를 찍으려 하는 철없는 다큐 감독도 내 모습이고, 죽는 일조차 여자들에게 의지하는 한국 남자들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다. 영화에서 간호사가 ‘한국남자들 다 그렇죠’ 하며 의사를 흉보는데, 맞는 말이다. 죽는 것조차도 여자 손에 맡기는 나약하고 비겁한 남자들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꽃도 선물하고 같이 식사도 하고 옆에 있어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여자를 모성애에 가둬놓을 생각은 없다. 그저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적극적으로 베푸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보살이라고. 촬영할 땐 의식 못했는데 나중에 보니 조계사에서 관음보살이 할머니를 굽어보고 있더라.”

-그럼에도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비겁한 남자와 용기있는 여자 모두를 한결같이 애정있게 그린다는 점이다. 사회적 기준으로 보면 비루하고 비참한 삶일지 모르지만 모두가 끝까지 자신의 인간적 품위를 지키려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나쁜 사람을 그리지 못하는 것은 내 장점이자 단점이다. 감정을 선동·조작하거나 분노를 키우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의 비참한 현실 안에 따뜻한 온기가 조금은 남아 있길 바랬다.”

-영화는 <서부전선>이 개봉하는 피카디리 극장에서 시작해서 한상균 위원장이 농성하던 시기의 조계사를 거쳐 백남기씨가 물대포를 맞아 위독하다는 뉴스도 나온다. 윤여정이 움직이는 공간도 탑골 공원, 광장시장, 이태원 이슬람 사원 등 장소가 상당히 익숙하고 구체적이다. 현실에 가장 근접한 시공간을 설계한 인상이다.

“영화는 지난해 10월 촬영을 시작했는데 할머니가 조계사를 찾는 장면을 촬영하기로 되어 있던 날 한상균 위원장이 조계사로 들어갔다. 어떻게 찍을지 선택해야 했다. 우리 영화가 2015년 가을을 살던 어떤 노인, 트랜스젠더, 장애인들을 그린 이야기니 이때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정공법이라고 생각했다.

공간에는 원래 늘 관심이 있었다. <순애보>엔 북촌 골목을 배회하는 동사무소 직원이 나오고, <정사> 때도 주인공 남자가 사는 곳이 비원옆 골목길에 있다. 대전 출신인데 서울에 올라와서 정겹게 느끼는 곳이 구시가인 것 같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도 공간이 중요한 영화다. 할머니가 사는 이태원 우사단길 동네는 재개발이 얼마 안남아서 사라지는 동네가 될 것이다. 기록하는 의미로 꼭 넣고 싶었다. 서울 남산 장충단공원엔 실제론 ‘박카스 할머니’가 없지만 남들이 쉬는 곳에 가방을 매고 호객행위를 하는 모습이 쓸쓸해보일 것 같아서 굳이 넣었다. 장충단 공원을 좋아해서 자주 산책 가는데 거기에서 도시를 내려다 보면 신기루 같다.

영화는 마치 소외된 지역 선물세트처럼 구성했는데 내겐 익숙하다. 장애인, 기지촌 여성, 전쟁에서 버려진 라이따이한 등의 이야기들을 늘 모아놓고 있었다. 노인 문제도 그중 하나였다. 이태원 같은 주변부 동네의 생태나 주목받지 못하는 삶을 나열해보고 싶었다.”

단편영화에서부터 기록을 즐겼던 감독은 도시의 곳곳을 기록하며 정말 있을 법한 인물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소영이 조계사를 찾는 장면에서도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그곳에 피신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현수막이 펄럭인다. 씨지브이아트하우스 제공
-주변부 삶을 생생하게 연기한 배우들은 이 영화의 큰 자산이다. 트랜스젠더 역(제작진은 배우 이름을 알리지 않았다)을 맡은 배우는 현실과 완전히 일치되는 인물이었고 아이돌 출신인 배우 윤계상에게 다리가 하나 없는 청년 역을 맡기고 굳이 잘린 다리를 보여준 것도 놀라웠다.

“트랜스젠더는 연기라기보다는 그 사람 자체였다. 처음엔 전문 배우를 쓰려고 했는데 다들 호들갑스럽게 여장 남자의 이미지만을 연기할 뿐 마땅한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나중엔 피디와 조감독이 트랜스젠더 클럽에 가서 찾아다녔다. 나이 오십대쯤 되고 클럽에서 활동하다 은퇴한 사람이었으면 했는데 출연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 실제 쇼도 했고 마담도 했으며 인생 바닥까지 내려가 본 경험도 있어서 ‘그저 당신답게 해달라’고 주문했다. 그는 자신들이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보여주기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연기했던 것 같다. 우리 나라에서 트랜스젠더가 할 수 있는 일은 술집 아니면 매춘밖에 없다. 성소수자에겐 기회가 봉쇄된 나라다.

윤계상은 필모그래피가 예사롭지 않아서 이 사람이면 이런 영화, 역할의 뜻도 이해해줄 것 같아 만났더니 정말 응해주었다. 외모를 보니 가수가 되지 않았다면 잘생긴 동네 청년이었을 것 같은 느낌을 갖고 있었다. 나는 그런 배우를 특히 좋아한다. 청년부터 사이코패스까지 할 수 있는, 무엇으로든 칠하면 색칠이 되는 얼굴이다. ”

-영화 속엔 평소 감독이 즐겨쓰는 표현이 많다고.

“저 사람도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하는 말을 자주 하는 편이다. 사람들은 그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 모르고 판단하는 말을 내뱉으니까. ‘계산 도와드릴까요’ ‘커피 나오셨습니다’ 하는 말을 못참는 것도 사실이다. ‘계산 도와드릴까요’ 하면 돈을 내줄 것도 아닌데 뭘 도와주냐고 하는데 사실 짓궂은 농담이다.

-개봉을 앞둔 심정이 궁금하다. 이 영화가 사회적 논란을 불러일으킬까봐 두렵지는 않은가.

“중압감이 너무 커서 촬영 일주일 전에 접으려 했다. 장애있는 아이도 치매 걸린 노인도 감춰 놓고 성과 죽음도 불경스럽게 여기는 사회에 이런 이야기를 꺼내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이 영화는 한국영화아카데미 지원작인데 예산도,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때 도망갔으면 아마 다시 영화감독하긴 힘들었겠지만 그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할 만큼 힘들었다. 지금은 이 불경스러운 이야기를 마친 것이 행복하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관련기사>

문제감독 인터뷰①/ <아수라> 김성수 감독

문제감독 인터뷰②/ <그물> 김기덕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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