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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쿠아리우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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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21] 〈씨네21〉이 강추하는 2016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을 알려드립니다
그래서 올해 10월엔 부산에 갈 수 있겠느냐고, 많은 영화인들이 물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제는 계속된다. 세월호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을 상영한 이후 지난 2년간 부산시와의 갈등으로 크고 작은 부침을 겪었던 부산국제영화제가 오는 10월6일부터 15일까지 영화의전당을 비롯한 해운대 일대에서 열린다. 영화제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이 길어지며 프로그래머들이 영화를 수급하고 발굴할 시간 또한 턱없이 부족했다는 건 영화계 안팎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영화제의 핵심은 프로그래밍이다. 2년 동안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을 비롯해 수많은 영화제 관계자들이 생채기를 입으며 지켜내고자 했던 표현의 자유를 머금은 상영작들이 이번 제21회 영화제에도 가득하다. 오는 9월 27일 시작되는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 예매를 앞두고 추천작 목록을 미리 살펴봤다. 스크리닝 사정상 앞서 관람하지 못했으나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는 신작 리스트들 또한 함께 챙겼다. 성장통을 거친 뒤 처음 만나는 부산국제영화제는 어떤 모습으로 관객을 맞이할까. 이 추천 목록이 올해 영화제의 면모를 짐작하는 데 얼마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 시네아스트의 극장- 아스가르 파르하디, 올리비에 아사야스, 짐 자무시, 켄 로치 <세일즈맨> The Salesman
아스가르 파르하디 / 이란, 프랑스 / 2016년 / 123분 / 아시아영화의 창 아스가르 파르하디의 영화 속 인물들은 언제나 곤경에 처해 있다. 씨민은 가정부가 왜 치매에 걸린 자신의 아버지를 묶어두고 외출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런 이유 때문에 가정부를 해고하는 과정에서 유산하게 한 건 자신의 책임이 맞는지를 고민하고(<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 아마드는 큰딸 루시에게서 아내의 비밀을 들은 뒤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아무도 머물지 않았다>(2013)). 윤리적인 딜레마의 기로에 선 그들은 자신의 난처함과 상대방의 처지를 꼼꼼히 따져본다. 그러면서 진실이 천천히 드러나고, 그 과정에서 서스펜스가 차근차근 구축된다.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윤리적 질문을 던진 뒤, 그 질문과 맞닥뜨린 인물들의 난처함을 보여주는 데 일가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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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일즈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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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에 아사야스 / 프랑스 / 2016년 / 105분 / 월드 시네마 굳이 장르로 구분하자면 <퍼스널 쇼퍼>는 유령(혹은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이 주인공을 움직이게 하고, 서사에 긴장감을 구축하는 유령영화다. 전기물(<카를로스>(2010)), 시대극 <5월 이후>(2012)), 스릴러(<보딩 게이트>(2007)), 미스터리 범죄물(<데몬러버>(2002))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필모그래피를 구축해온 것을 떠올려보면 올리비에 아사야스가 유령영화를 만든 건 아주 놀랄 일은 아니다. 파리에서 살고 있는 미국인 모린(크리스틴 스튜어트)은 유명 모델을 대신해 옷과 액세서리를 구매하는 일을 한다. 멀리 떨어져 지내는 남자친구와 페이스타임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고, 집에서 모델의 옷을 입고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는 게 그녀의 일상이다. 어느 날, 모린에게 한통의 메시지가 온다. 정체불명의 존재가 보낸 그 문자 메시지는 모린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끼친다. 판타지(혹은 초현실)와 현실의 접점을 잠깐 엿보인 감독의 전작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2014)와 달리 <퍼스널 쇼퍼>는 눈에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현실과 판타지 같은 각기 다른 두 세계를 오가며, 이미 (스마트폰 같은 도구를 통해) 가상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을 은유한다. 제69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작이다. - 김성훈 <패터슨> Patterson
짐 자무시 / 미국 / 2016년 / 113분 / 월드 시네마 영화감독, 배우, 에세이스트, 작곡가. 미국 감독 짐 자무시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다. 이처럼 일상이 곧 예술의 한 과정인 그가 예술에 대한 예술영화를 만들었다는 건 전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다만 그가 자세히 들여다보고자 하는 예술의 형식이 ‘시’라는 점이 흥미롭다. <패터슨>은 미국 뉴저지주 패터슨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 버스 운전사 패터슨(애덤 드라이버)의 일주일을 조명한다. 그는 사랑스러운 아내 로라(골시프테 파라하니), 불도그 마빈과 함께 고요하면서도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다. 더불어 그는 일과 도중 틈틈이 시를 쓰는 아마추어 시인이다. 영화는 패터슨이 도시를 유랑하며 마주하게 되는 풍경과 일상에서 맺는 관계들,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단상들이 시로 재구성되는 과정을 좇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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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패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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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로치 / 영국 / 2016년 / 100분 / 월드 시네마 올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영국 감독 켄 로치의 화려한 귀환을 알리는 작품이었다. 2013년 <지미스 홀>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그는 그 결정을 번복한 뒤 다시금 현대 사회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를 내놓았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시스템에 대한 날선 비판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휴머니즘이 녹아 있는 전형적인 켄 로치 스타일의 신작이다. 한때 목수였던 다니엘 블레이크(데이브 존스)는 심장에 이상이 생겨 잠시 일을 쉰다. 실업급여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찾아간 관공서에서는 컴퓨터 사용법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다니엘에게 인터넷을 이용해 신청서를 제출하라고 한다. 모든 업무를 매뉴얼에 따라 진행하며,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은 서로 다른 부서로 떠넘기는 관공서의 비효율적인 일처리 방식은 다니엘의 ‘인간답게 살 권리’를 점점 더 앗아간다. 다니엘이 관공서에서 우연히 만난 싱글맘 케이티(헤일리 스콰이어)의 삶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는 이 두 사람이 정책의 사각지대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점차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면서도 끝까지 인간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켄 로치 영화는 대개 현실을 에둘러 보여주는 법이 없다. 자본주의 영국 사회의 초상은 21세기의 빠른 속도감을 따라잡지 못하고 뒤처진 사람들의 애환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그 끝에서 이 브리티시 시네마의 거장이 보여주려 하는 건 비관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믿음이다. 새로움은 없을지 몰라도 켄 로치 영화는 언제나 가슴 밑바닥을 뜨거워지게 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 영국 감독이 우리 곁을 너무 빨리 떠나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작품. - 장영엽 ■ 새롭게 기억할 이름들
- 후카다 고지, 토비아스 놀레, 라리차 페트로바,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하모니움> Harmonium
후카다 고지 / 일본, 프랑스 / 2016년 / 118분 / 아시아영화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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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하모니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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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비아스 놀레 / 스위스, 프랑스 / 2016년 / 91분 / 플래시 포워드 영화 <타인의 삶> 속 감시하는 자의 고독한 일상과 <수면의 과학> 속 상상의 세계에 기반한 로맨스를 한 군데 모아놓으면 이런 영화가 될까. 알로이스(게오르그 프레드리히)는 불륜 현장을 미행하고 낱낱이 기록하는 사립탐정이다. 어느날 버스에서 잠이 들었다가 깬 그는 누군가가 비디오테이프들을 훔쳐간 사실을 알게 된다. 알로이스의 모든 소지품을 갖고 있다는 낯선 여성 르네는 전화를 통해 게임 하나를 제안한다. 수화기 너머 전하는 자신의 지시를 따르는 일이다. “눈을 감고 벽에 머리를 기대라. 숲을 느껴보아라.” 알로이스의 눈앞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그곳에는 죽은 아버지도 있고 아름다운 르네, 다정한 이웃들도 있다. <알로이스>는 스위스의 신성 토비아스 놀레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알로이스의 의뭉스러운 생활을 중점적으로 묘사하는 초반은 미스터리와 스릴러의 무드가 강하다. 현실의 영역을 넘어서는 영화 중반부터는 세상에서 고립된 두 남녀의 재기발랄한 로맨스가 중심이 된다. 현대인의 고독한 생활과 그 내면에 자리한 공생에 대한 바람을 절제된 화면과 균형잡힌 연출 감각으로 표현한 수작이다.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 라스팔마스국제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했다. - 김수빈 객원기자 <신 없는 세상> Godless
라리차 페트로바 / 불가리아, 덴마크, 프랑스 / 2016년 / 99분 / 플래시 포워드 불가리아의 작은 마을, 가나(이레나 이바노바)는 치매에 걸린 노인들을 간병한다. 그녀가 이 일로 노리는 건 따로 있다. 저항할 힘 없는 노인들 몰래 그들의 신분증을 훔쳐 암시장에 내다 파는 것이다. 그 돈으로 가나는 모르핀을 사고 생활을 이어간다. 가나는 애인보다는 동업자에 가까운 알레코와 함께 일상적으로 범죄를 저지른다. 가난, 중독, 친밀한 관계의 부재 속에서 가나는 새로운 환자 요안을 만난다. 요안은 은퇴한 합창단장으로 일반인을 대상으로 음악을 가르친다. 이상하게도 가나는 그의 음악에 감응을 받고 자신도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인지 자문하게 된다. 가나는 어긋나버린 인생을 바로잡고 싶지만 왠지 뜻대로 되지 않는다.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될 뿐이다. 우울하고 스산한 화면 속 날씨만큼이나 가나의 일상에는 생기나 활력의 기운을 찾을 수 없다. 이마 뒤로 쓸어올려 질끈 묶은 머리, 특색 없는 작업복, 말수 적고 퉁명해 보이는 그녀의 겉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가난하고 힘 없는 노인들 사이에서 가나는 가장 맥 없어 보인다. <신 없는 세상>이라는 제목 그대로 가나는 윤리나 죄의식이 없는, 신의 세계 밖에 방치된 인간처럼 보인다. 카메라는 인물과 사물에 근접해 포커스인과 포커스아웃을 오가며 경계를 넘어선 듯한 가나의 상황을 은유해 보여준다. 1.33:1의 화면비에서는 단조로운 가나의 일상과 메마른 풍광이 이어지며 극을 더없이 쓸쓸하게 만든다. 가나가 느끼는 욕구 불만과 그런 가나의 마음을 이용하는 부패한 경찰 등의 출연은 이 황량함을 배가시킨다. 라리차 페트로바 감독의 데뷔작으로 올해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황금표범상을 수상했다. - 정지혜 <아쿠아리우스> Aquarius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 브라질 / 2016년 / 145분 / 월드 시네마 아쿠아리우스. 얼핏 수족관을 연상케 하는 이 영화의 제목은 브라질 항구도시 헤시피에 위치한 어느 해변가 빌라의 이름이다. 창문을 열면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이곳은 음악평론가 클라라(소니아 브라가)가 일생을 살아온 보금자리다. 아쿠아리우스를 철거해 해변가를 개발하고자 하는 업자들은 빌라의 주민들을 설득해 모두 내보내지만, 클라라는 자신의 사랑과 추억이 담긴 아쿠아리우스를 떠날 마음이 없다. 다급해진 개발업자들은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클라라에게 은근한 위협을 가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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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쿠아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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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훈, 나비드 마흐무디, 마렌 아데, 핀 에드퀴스트 <꿈의 제인> Jane
조현훈 / 한국 / 2016년 / 100분 /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제가 처음 배운 말은 거짓말이었데요… 저는 영원히 사랑받지 못할 거예요.’ 소현(이민지)의 내레이션으로 <꿈의 제인>은 시작된다. 이 말은 마치 앞으로 펼쳐질 소현의 미래를 예견하기라도 하는 듯하다. 가출한 소현은 자신을 돌봐준 정호가 사라지자 홀로 남는다. 소현은 정호의 애인인 트랜스젠더 제인(구교환)을 우연히 만나 제인이 엄마로 있는 가출팸(가출한 아이들이 가족처럼 함께 사는 공동체)에 들어간다. 제인은 소현에게 자신이 아이들과 함께 사는 이유와 함께 살아갈 때 인간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들려주기도 한다. 짧은 순간이지만 소현은 제인에게서 보살핌의 안온함과 어떤 동지애를 느낀다. 하지만 이들의 동거는 오래가지 못한다. 영화는 특별히 장(章)의 구분을 두지 않았음에도 세개의 상황으로 이어진다. 세 이야기는 서로 연결돼 있다. 소현의 꿈인지 현실인지, 혹은 둘 다 소현이 경험한 현실이었는지 꿈이었는지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이야기가 벌어진 시간도 순차적이지 않다. 하지만 서사를 따라가는 데는 무리가 없다. 그 중심에는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지만 금방 혼자가 되고 마는 소현이 있다. 소현과 제인은 비슷한 아픔을 겪는다. 자기 눈에 보이는 것만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의도치 않게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 됐다는 점에서 그렇다. 영화의 끝에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건 행복이 아니다. 그 대신 불행의 앞에서 계속 걸어갈 수 있는 용기에 가까운 온기다. 가출팸의 현실, 세상의 편견과 자연스레 마주하면서. 조현훈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사회상 짙은 버디 무비로 볼 수 있다. 2016 아시아영화펀드(ACF) 후반작업지원펀드로 제작됐다. – 정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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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꿈의 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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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드 마흐무디 / 이란, 아프가니스탄 / 2016년 / 78분 / 뉴커런츠 최근 국제사회의 가장 큰 이슈는 난민과 불법 이주자다. 해마다 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지중해, 쿠바, 멕시코 등 세계 곳곳에서 많은 난민들이 생겨나고 있고, 그로 인한 불법 이주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별>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자친구가 있는 이란으로 밀입국해 여자친구를 데리고 터키로 밀항하려는 불법 이주자 나비의 사연을 생생하게 그린 드라마다. 이란 테헤란. 나비와 페레시테는 연인이다. 페레시테는 5년 전 아프가니스탄의 불안한 정국 때문에 가족과 함께 이란으로 이주했다. 나비가 이란에 밀입국한건 페레시테를 만나 터키로 건너가기 위해서다. 하지만 두 사람은 터키는커녕 이란을 탈출하기조차 쉽지 않다. 터키행 보트까지 실어주는 승용차 안에서 페레시테는 이란 운전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하는가 하면, 자신의 여자친구를 성추행한 운전사에게 항의했다는 이유로 나비와 페레시테는 고속도로 한가운데에 강제로 내려야 한다. 밀입국자라는 신분 때문에 나비는 교통비를 되돌려받지 못하고, 억울한 심정을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도 없다. 연인은 이란을 탈출할 수 있을까? 터키나 다른 유럽 국가로 가더라도 그곳에서 헤어지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여섯살 때 부모와 함께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란으로 이주해온 나비드 마흐무디 감독의 장편 극영화 데뷔작이다. – 김성훈 <토니 에드만> Toni Erdmann
마렌 아데 / 독일 / 2016년 / 162분 / 월드 시네마 영화제에서 가장 보기 드문 장르의 영화는? 그건 바로 코미디다. 웃음의 미덕을 지닌 영화들은 종종 아트하우스 상영작의 진중함과 무게감에 눌려 페스티벌에서 설 자리를 잃곤 했다. 독일의 신예 여성 감독 마렌 아데의 <토니 에드만>은 올해 칸국제영화제 최고의 화제작 중 한편으로, 국제영화제 무대에서 코미디 장르의 권위를 다시금 끌어올린 작품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서먹한 부녀가 이 영화의 주요 등장인물이다. 일에 치여 살아가는 딸(산드라 휠러)에게 웃음을 되찾아주고자 하는 아버지(피터 시모니셰크)가 있다. 그의 이름은 빈프리트. 아버지는 또 다른 자아인 ‘토니’로 변신해 우스꽝스러운 가발을 쓰거나 틀니를 끼고 딸의 주변을 맴돈다. 문제는 이들의 타이밍이 번번이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 장소마다 나타나 동료들에게 잊을 수 없는(!) 인상을 주곤 하는 아버지의 존재는 딸에게 당황스럽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다. 이들 부녀의 엇갈리는 소통 방식은 <토니 에드만>의 웃음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질료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보는 이들을 포복절도하게 만드는 후반 40여분에 있다. 집단 누드 신과 털북숭이 캐릭터의 등장,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가라오케 신(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일단 영화를 보시라)은 눈물을 쏙 빼놓게 웃기다. 종종 웃어야 할지 난감해야 할지 가늠할 수 없는, 신예 감독의 독특한 유머 코드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 마렌 아데는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려는 커플을 조명한 <에브리원 엘스>로 지난 2009년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을 수상한, 유럽영화계의 라이징 스타다. – 장영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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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배드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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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 에드퀴스트 / 호주 / 2015년 / 87분 / 플래시 포워드 반항기 가득한 17살 소녀 에이미(사라 웨스트)는 소년원에서 나와 양부모와 함께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간다. 이사 첫날부터 에이미는 또다시 가출을 단행한다. 인적 드문 마을에서 에이미는 우연히 또래 소녀 클로이(사마라 위빙)를 만난다. 어쩐지 에이미는 그녀에게 시선이, 마음이 간다. 때마침 클로이가 에이미 집의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면서 둘은 더 가까워진다. 에이미는 진짜 부모를 찾고 싶다. 에이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클로이는 자신이 그 일을 돕겠다고 나선다. 클로이가 에이미를 이끌수록 에이미는 더 위협적인 상황에 빠져든다. 한적한 시골마을, 외딴집, 정체를 알 수 없는 낯선 소녀의 등장과 그 파국. <배드 걸>은 스릴러 장르영화에 충실한 외적 조건들을 설계하고 에이미 가족의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린다. 여기에 자신의 태생에 대한 고민으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에이미와 또래의 클로이가 벌이는 성적인 시선과 관음이 이 스릴러의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킨다. 영화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에이미의 탈주와 클로이의 광적인 추격으로 이어지며 심리전과 액션극으로까지도 확장된다. 에이미와 클로이를 연기한 사라 웨스트와 사마라 위빙의 연기가 극의 몰입도를 높인다. <더 로드> <로우리스: 나쁜 영웅들>의 음악감독 워런 엘리스의 사운드도 귀 기울여보자. – 정지혜 ■ 영화제 스타일의 블록버스터
– 리처드 앵거스, 로드리고 소로고옌, 야마시타 노부히로, 마니시 샤르마 <천사와의 약속> A Pact among Angels
리처드 앵거스 / 캐나다 / 2016년 / 95분 / 플래시 포워드 아드리언(마크 메시에)은 과자 공장에서 일하는 중년 남자다. 퇴근길에 공장에서 만든 초콜릿을 챙기고, 숲에서 사격을 하는 게 그의 몇 안 되는 여가 거리다. 어느 날, 그는 퇴근길에 십대 소년 두명이 누군가에게 총을 쏘는 범죄 현장을 목격하다가 그들에게 붙잡힌다. 졸지에 십대 소년의 인질이 된 아드리언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의 도주 여정을 함께하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윌, 세드릭 두 소년과 아드리언은 서로의 처지에 연민을 느끼게 된다. 아드리언은 불우한 가정환경 때문에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한 두 소년에게 믿음의 소중함을 알려주고, 두 소년은 그런 아드리언을 조금씩 따른다. 한편, 경찰은 그들을 살해사건의 용의자로 지목해 턱밑까지 추격해온다. 줄거리만 보면 범죄자 소년들과 그들의 인질인 중년 남자의 이상한 로드무비다. 설정이 다소 독특하긴 해도 주제나 형식이 그닥 새로울 것 없는 성장 드라마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쨌거나 범죄를 저지른 소년들을 훈계하는 대신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하는 시선이 현명하다. 또 마크 메시에와 두 소년 배우들의 연기가 안정돼 극에 몰입하기가 수월하다. <천사와의 약속>은 편집자, 작곡가, 음향 디자이너로 활동해온 리처드 앵거스 감독의 장편 극영화 데뷔작이다.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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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천사와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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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리고 소로고옌 / 스페인 / 2016년 / 127분 / 월드 시네마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피해자는 노년의 여성. 현장에 출동한 경찰 알파로(로베르토 알라모)와 벨라데(안토니오 드 라 토레)는 단순 강도의 범행이 아님을 직감한다. 경찰 수뇌부는 교황의 방문이라는 거사를 망치지 않기 위해 조용한 수사를 지시한다. 하지만 노년의 여성이 잔인하게 강간•살해당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알파로와 벨라데는 사이코패스 살인범을 쫓는데 혈안이 된다. 잘 발달된 근육과 다혈질 성격의 알파로, 말을 더듬고 비사교적이지만 치밀한 조사를 바탕으로 수사를 펼치는 벨라데. 외모부터 성격까지 모든 것이 상반된 두 경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스페인영화는 고참 형사와 신참형사가 짝을 이루는 <리쎌 웨폰> 시리즈나 <트레이닝 데이>(2001) 같은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다만 <신이여 우리를 구원하소서>는 형사들의 콤비 플레이보다 살인사건의 수사 그 자체에 더 초점을 맞춘다. 혼자 사는 노년 여성을 범행의 대상으로 삼는 사이코패스의 실체가 드러나는 후반부에 이르면 심리적 충격은 배가된다. 탄탄하게 쌓아올린 드라마와 노련한 배우들의 호연이 긴박감과 몰입도를 더한다. 좋은 수사물의 조건을 두루 갖춘 수작이다. – 이주현 <오버 더 펜스> Over the Fence
야마시타 노부히로 / 일본 / 2016년 / 112분 / 아시아영화의 창 청춘 성장담은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단골 소재다. 1968년 전공투 세대를 소재로 한 <마이 백 페이지>(2011)를 포함해 <고역열차>(2012), <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2013), <미소노 유니버스>(2015) 등 최근작에서 청춘과 그들의 고민 그리고 성장을 주로 다루어왔던 그다. 그런데 대학 졸업생 다마코(마에다 아쓰코)의 1년 백수 생활을 귀엽게 그렸고(<모라토리움기의 다마코>), 어두운 과거에서 벗어나 밝은 미래를 꿈꾸었던(<미소노 유니버스>) 전작과 달리 야마시타 노부히로의 신작 <오버 더 펜스>는 다소 어두운 청춘을 그린 이야기다. 40대 남자 시라이(오다기리 조)는 이혼한 뒤 고향에 돌아와 직업학교를 다니고 있다. 직업학교를 졸업해 목수가 되어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게 그의 소박한 계획이다. 어느 날 그는 학교 친구와 함께 바를 찾았다가 그곳에서 일하는 30대 여성 사토시(아오이 유우)를 만난다. 낮에는 놀이공원에서, 밤에는 호스티스로 일하는 그녀다. 어두운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채 현실을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는 두 사람은 조금씩 가까워지고, 서로의 상처를 알게 된다. 이 영화는 상처를 가지고 있는 두 남녀가 사랑에 빠지는 멜로드라마가 아니다. 시라이와 사토시 두 사람과 그 주변 인물들을 통해 실업, 재취업, 분열된 가족, 사회 부적응, 집단 괴롭힘 등 일본의 젊은 세대가 겪고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끄집어낸다. 그들은 과거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팍팍한 현실을 씩씩하게 돌파할 수 있을까. 힌트를 준다면 야마시타 노부히로 감독의 영화 속 청춘은 언제나 성장했다. – 김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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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샤룩칸의 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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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시 샤르마 / 인도, 크로아티아 / 2016년 / 143분 / 아시아영화의 창 발리우드를 대표하는 이름, 샤룩 칸이 톱스타와 광적인 팬의 1인2역을 소화하는 독특한 컨셉의 영화다. 작은 마을에서 PC방을 운영하는 청년 고라브(샤룩 칸)는 인도의 유명 배우이자 가수 아리안(샤룩 칸)의 일거수일투족에 주목하는 광팬이다. 스스로를 ‘아리안 칸나 주니어’라고 칭하는 고라브에게 아리안은 “우상이 아니라 세계”다. 아리안과 생김새도 닮은 그는 한 슈퍼스타 선발대회에서 아리안을 따라해 우승 트로피까지 거머쥔다. 고라브는 트로피를 보여주고 생일을 직접 축하해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아리안을 만나러 간다. 하지만 톱스타를 대면하는 일은 요원하기만 하고 설상가상으로 아리안과 연적 관계의 배우를 해코지했다가 감옥에 갇힌다. 고생만 하다 돌아가게 된 고라브의 팬심은 삐뚤어지기 시작한다. 2시간22분에 달하는 러닝타임은 발리우드영화 특유의 화려한 퍼포먼스와 코미디가 돋보이는 전반부와 속도감 있는 액션 신, 밀도 높은 스릴러로 구성된 후반부로 이뤄져 있다. 한 인물의 지극한 애정이 몇 차례의 사건을 통해 집착으로 변질되는 모습이 설득력 있게 전개된다. <그 남자의 사랑법>(2008)에서 한 인물의 이중적인 모습을, <빌루>(2009)에서 톱스타 역할을 소화한 바 있는 샤룩 칸답게 분장 하나로 중년의 톱스타와 20대 순박한 청년을 매끄럽게 오간다. 그의 활력 넘치는 연기는 여러 장르로 변주하는 이 독특한 영화의 가장 큰 동력이기도 하다. <끝까지 간다> <용의자> 등의 영화에서 무술 지도를 맡아온 오세영 무술감독이 이번 영화의 액션을 담당해 런던, 두보르니크 등 지역의 특색을 살린, 긴장감 충만한 액션 신을 만들어냈다. - 김수빈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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