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 프로젝트 맡은 29살 화교3세
“내 국적 정체성 고민 정서가 떠다니는 부초인간들과 맞아” “〈말죽거리 잔혹사〉 연출부로 일할 때 차승재 대표가 한번 읽어보라며 원작소설을 주시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무기의 그늘〉을 읽었죠. 한참 지나서 차 대표가 다시 전화를 하셔서 읽어봤느냐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재미는 있는데 혹시 연출이라면 나는 아닌 것 같다고 말하니까 한참 침묵하다가 껄껄 웃으시면서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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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필씨는 동국대 연극영화과 재학 당시 〈무사〉 연출부에 들어가며 충무로와 인연을 맺었다. 고등학교까지 중국인 학교를 다니며 배운 중국어 실력 덕에 중국 올 로케이션인 〈무사〉 촬영 때 남들 1년 배울 일을 서너 달 동안 배웠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말죽거리 잔혹사〉의 연출부를 거치고 옴니버스 영화를 기획하던 나비 픽처스에서 단편 영화를 하나 찍었다.
“동시대성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연출 기회가 주어진 게 아닌가 싶어요. 원작에서는 주인공 안영규가 무기 암거래를 밝히는 수사대에서의 활동을 그린 탐정소설식 라인과, 베트남 장교와 베트콩으로 서로 총부리를 겨눌 수밖에 없는 형제가 보여주는 역사적 비극의 줄거리가 두 축인데, 저는 전자를 주된 축으로 만들었어요.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제3의 사나이〉식 미스터리 누아르 구조에 멜로 라인을 첨가하면서 시나리오를 두번째 다듬고 있어요.” 고등학교 시절 영화에 빠져들며 열광했던 코폴라와 스코시즈 초기작, 폴란스키의 거칠고 어두운 세계의 냄새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그의 연배가 원작과 시대의 무게에서 그를 자유롭게 한다면 국적과 현실 사이에서 ‘떠 있는’ 그의 정체성은 그 시대의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들’과 필 감독을 강한 끈으로 잇는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대만에 처음 갔어요. 드디어 내 나라에 와 보는구나 뿌듯했는데 입국대에 들어서니 외국인 심사대로 가라더군요. 어린 마음에 꽤 충격이었죠. 이후로도 이름만 소개하면 별종 보듯 하는 눈초리 탓에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안 생길 수가 없었죠. 이런 점에서 현실에 발 딛지 않고 부초처럼 떠다니는 사람들과 그들이 맺는 관계에 나와 맞닿는 정서가 있다고 봅니다.” 아무도 원치 않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진 사람들을 그리면서도 흔히 전쟁영화 하면 떠올리는 거대한 전투 스펙터클보다는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며 독약 같은 사랑에 빠지는 캐릭터에 집중하는 영화로 완성하겠다는 야심이다. 전장에서 안영규가 차출되는 영화 초반을 제외하고는 시내에서 대부분의 사건이 전개된다는 것도 색다르다. “데뷔 영화인데 규모가 커서 부담스럽겠다는 이야기도 듣지만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연출상의 제약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에서 그렇지요.” 〈무기의 그늘〉은 올가을부터 촬영에 들어가며 100% 베트남 현지 촬영으로 완성된다. 세 주인공 중 한 명인 베트남 장교는 홍콩의 세계적 스타배우와 섭외 중이며,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영화답게 한국배우는 이십대 중반의 한류 스타를 캐스팅한다고 귀띔한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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