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변형 통해 가슴아픈 사랑 두고두고 재구성 “이건 영화다. 모두 허구다. 그럼에도 가슴이 아프다.” 덴마크 신예 감독 크리스토퍼 부의 〈리컨스트럭션〉은 똑같은 내레이션으로 영화의 문을 열고 닫는다. ‘허구다’라고 못을 박는 건 저마다 ‘이게 진짜 사랑’이라고 외쳐대는 사랑영화들과 결별하겠다는 젊은 감독의 야심이다. ‘그럼에도 가슴이 아프다’라고 덧붙이는 건 사랑의 가치나 진실이 어딘가는 반드시 존재한다는 믿음을 드러낸다. 이처럼 〈리컨스트럭션〉은 허무맹랑한 사랑의 절대화와 사랑에 대한 냉소를 모두 피해가고자 한다. 이 까다로운 ‘미션’은 까다로운 이야기 전개와 감각적인 화면을 통해 수행된다. 한 남자가 습한 공기로 감싸여 있는 코펜하겐의 거리를 걷다가 어느 카페로 들어간다. 그곳에 앉아 있는 여자에게 남자는 대뜸 함께 로마에 가겠느냐고 묻는다. 난데없는 이 장면은 중간쯤에서 앞 뒤의 장면과 연결되어 반복된다. 사진작가이며 오랜 연인이 있는 남자는 지하철 역에서 우연히 한 여자를 보고 애인을 버려둔 채 그를 따라간다. 여자는 남자의 존재를 알아차리지만 자신의 갈 길을 가고 둘은 카페에서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화면은 다시 여자의 앞시간으로 돌아간다. 유명 작가인 남편과 출장 여행길에 올랐던 여자는 계속되는 남편의 부재에 지쳐 충동적으로 호텔방을 나와 걷다가 지하철 역에서 남자를 만난다. 알고 보면 단순하지만 화면상으로는 꽤 복잡한 미로를 거쳐 만난 알렉스와 아메는 격정적인 하룻밤을 보낸다. 다음날 돌아간 알렉스를 기다리는 건 사라진 집과 자신을 몰라보는 이웃과 친구, 가족, 그리고 애인이다. 그러나 이 상황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이제 막 사랑에 빠진, 혼란스럽고 어수선한 심리상태에 대한 은유다. 알렉스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걸 버릴 만큼 완벽한 사랑을 찾았다고 생각하지만 혼란 속에서 헤매다가 짧은 시간에 결국 아메도 잃고 만다. 한때 소중했으나 이제 헌신짝처럼 차버린 옛 애인 시몬과 새로 찾은 사랑 아메는 결국 같은 얼굴이다. (마리아 보네비가 1인2역으로 연기한다.) 〈리컨스트럭션〉은 지나온 사랑과 현재의 사랑, 그리고 미래를 예감케 하는 사랑의 맹아를 하나의 화면에 ‘재구축’한다. 시작된 사랑의 환희는 결별의 슬픔과 같은 공기 안에서 숨을 쉰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혼란스럽게 흩어놓은 플롯으로 사랑과 상실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표현하고자 한다. 그러나 74년생의 이 패기만만한 감독에게는 아직 성찰보다 재기가 도드라진다. 창백하고 우울한 도시를 잡아내는 카메라 움직임의 매혹만큼 영화가 말하는 ‘가슴 아픔’은 가깝게 다가오지 않는다. 2003년 칸영화제에서 최고의 신인감독에게 주는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다. 21일 개봉.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백두대간 제공
영화·애니 |
사랑 잃은 이들에게…‘리컨스트럭션’ |
반복·변형 통해 가슴아픈 사랑 두고두고 재구성 “이건 영화다. 모두 허구다. 그럼에도 가슴이 아프다.” 덴마크 신예 감독 크리스토퍼 부의 〈리컨스트럭션〉은 똑같은 내레이션으로 영화의 문을 열고 닫는다. ‘허구다’라고 못을 박는 건 저마다 ‘이게 진짜 사랑’이라고 외쳐대는 사랑영화들과 결별하겠다는 젊은 감독의 야심이다. ‘그럼에도 가슴이 아프다’라고 덧붙이는 건 사랑의 가치나 진실이 어딘가는 반드시 존재한다는 믿음을 드러낸다. 이처럼 〈리컨스트럭션〉은 허무맹랑한 사랑의 절대화와 사랑에 대한 냉소를 모두 피해가고자 한다. 이 까다로운 ‘미션’은 까다로운 이야기 전개와 감각적인 화면을 통해 수행된다. 한 남자가 습한 공기로 감싸여 있는 코펜하겐의 거리를 걷다가 어느 카페로 들어간다. 그곳에 앉아 있는 여자에게 남자는 대뜸 함께 로마에 가겠느냐고 묻는다. 난데없는 이 장면은 중간쯤에서 앞 뒤의 장면과 연결되어 반복된다. 사진작가이며 오랜 연인이 있는 남자는 지하철 역에서 우연히 한 여자를 보고 애인을 버려둔 채 그를 따라간다. 여자는 남자의 존재를 알아차리지만 자신의 갈 길을 가고 둘은 카페에서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화면은 다시 여자의 앞시간으로 돌아간다. 유명 작가인 남편과 출장 여행길에 올랐던 여자는 계속되는 남편의 부재에 지쳐 충동적으로 호텔방을 나와 걷다가 지하철 역에서 남자를 만난다. 알고 보면 단순하지만 화면상으로는 꽤 복잡한 미로를 거쳐 만난 알렉스와 아메는 격정적인 하룻밤을 보낸다. 다음날 돌아간 알렉스를 기다리는 건 사라진 집과 자신을 몰라보는 이웃과 친구, 가족, 그리고 애인이다. 그러나 이 상황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이제 막 사랑에 빠진, 혼란스럽고 어수선한 심리상태에 대한 은유다. 알렉스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걸 버릴 만큼 완벽한 사랑을 찾았다고 생각하지만 혼란 속에서 헤매다가 짧은 시간에 결국 아메도 잃고 만다. 한때 소중했으나 이제 헌신짝처럼 차버린 옛 애인 시몬과 새로 찾은 사랑 아메는 결국 같은 얼굴이다. (마리아 보네비가 1인2역으로 연기한다.) 〈리컨스트럭션〉은 지나온 사랑과 현재의 사랑, 그리고 미래를 예감케 하는 사랑의 맹아를 하나의 화면에 ‘재구축’한다. 시작된 사랑의 환희는 결별의 슬픔과 같은 공기 안에서 숨을 쉰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혼란스럽게 흩어놓은 플롯으로 사랑과 상실의 혼란스러운 감정을 표현하고자 한다. 그러나 74년생의 이 패기만만한 감독에게는 아직 성찰보다 재기가 도드라진다. 창백하고 우울한 도시를 잡아내는 카메라 움직임의 매혹만큼 영화가 말하는 ‘가슴 아픔’은 가깝게 다가오지 않는다. 2003년 칸영화제에서 최고의 신인감독에게 주는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했다. 21일 개봉.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백두대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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