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11 22:50
수정 : 2005.01.11 22:50
영화 `그때 그사람들'의 백윤식 인터뷰
지난 한 해 한국 영화를 빛낸 배우들 중 백윤식(58)만큼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호감을 줬던 스타가 또 있었을까?
뮤직비디오와 한 포털사이트의 광고에서는 천연덕스럽게 기타를 메고 립싱크를 하며 보는 이의 입에서 `깬다'라는 탄성이 나오게 했으며 "조인성하고 나하고 누가 더 잘 생겼나?"하고 묻는 CF는 생각할수록 웃음이 나오게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난 2004년을 백윤식의 전성기로 만든 것은 영화 `범죄의 재구성'이었다. 그가 연기한 김선생은 무표정하게 실없는 얘기를 하는 기존의 스타일도 아니었고 의외성이 주무기인 반짝 조연도 아니었다. 대신 그가 보여준 카리스마는 영화 전체를 압도하는 힘이 있었고 동시에 밉지 않은 악인이라는 우리 영화에서 보기 드문 경험을 안겨줬다.
그런 그가 다음달 초 신작 `그때 그사람들'을 통해 관객들을 만난다. 임상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제대로 홍보를 시작하기 전부터 정치권을 비롯해 영화계 외부로부터도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영화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된 10월26일 하루의 상황을 그리고 있고 백윤식은 마초적 성격의 중앙정보부장 김부장역을 맡았다. 대통령을 암살했던 김재규씨를 연상케 하는 인물이다.
10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만난 백윤식은 "역사가 아니라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촬영에 임했다"며 "촬영을 끝낸 지금은 그날 역사의 뒤안길로 떠나간 사람들에게 명복을 비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티스트 개념으로 일했다
"밖에서는 얼마나 떠들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특별하게 찍지 않았어요. 다른 영화와 마찬가지의 과정에서 평범하게 진행이 됐지."
배우 백윤식에게 `그때 그사람들'은 작품으로써 `지구를 지켜라'와 `범죄의 재구성' 등의 전작과 다를 것이 없는 의미를 가진다. 그저 `아티스트'라는 생각으로 작품에 임했을 뿐이라는 것. "그런(정치적인) 것을 워낙 싫어해서…"라며 어렵게 입술을 떼는 그는 영화와 자신이 맡은 배역에 대해 외부에서 갖는 관심이 부담스러운 눈치다.
"특별하게 생각하면 영화에 참여 못했죠. 배우니까 작품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출연을 결심하게 된 것도 책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출연을 결심한 후 캐릭터를 잡아나가는 과정도 다른 영화와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영화가 다큐멘터리 개념이 아니니까 실제 인물에서 힌트를 얻을 필요도 없었다"는 얘기. "시나리오를 보면 캐릭터들이 다 설정이 돼 있어서 여기에만 충실하면 됐다"며 "담백하고 진솔하게 자신만의 스타일로 인물을 꾸려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특별한 소재'를 가진 영화이니만큼 그에게도 출연에 대한 고민은 있었다. "책(시나리오)에만 충실하자"는 것은 생각 끝에 출연을 결심하게 된 그가 작품을 대하기로 한 자세다.
그는 촬영을 마치고 개봉을 기다리는 지금은 "그날 역사의 뒤안길로 떠나간 사람들과 그 일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옷깃을 여미며 기도드리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석규 군은 훌륭하고 성숙한 젠틀맨
"아주 훌륭하고 성숙한 젠틀맨이 돼 있더라고."
백윤식과 함께 영화 속에서 두 축 중 한쪽을 담당하고 있는 배우는 한석규. 시니컬한 성격으로, 백윤식이 연기하는 김부장의 오른팔격인 주과장이 한석규가 맡은 인물이다.
영화에서는 처음 호흡을 맞춰보지만 두 사람은 10년 전 같은 TV 드라마를 통해 `뜬' 경험이 있다. 당시 장안의 화제였던 드라마 `서울의 달'에서 백윤식은 점잖으면서도 엉뚱한 이후의 주된 캐릭터를 발견했고 한석규는 이때 얻은 인기를 바탕으로 스크린에서 전성기를 열었다.
"그때 얘기는 (한)석규군과 촬영할 때 많이 나눴어요. 10년만에 같이 (연기)해보는데 훌륭한 배우가 돼 있더군요. 반듯하고 성숙한 느낌의 젠틀맨 같은 느낌. 후배이지만 어른스럽죠."
▲중요한 것은 실제 나이가 아니라 작품에 표현되는 나이
47년생으로 70년 연기생활을 시작한 중견배우이지만 백윤식은 동년배의 배우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포지셔닝을 하고 있다. 사기꾼(범죄의 재구성)에서 외계인(지구를 지켜라), 록커(`담백하라'의 뮤직비디오) 등 그는 `우리 시대의 아버지상' 같은 중견배우의 전형적인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나이에 맞는 배역이라는 게 한국적인 개념이지, 할리우드 같은 데서는 의식할만한 게 아니에요. 배우 입장에서는 캐릭터가 중요합니다. 인간사를 얘기하는데 나이가 뭐 중요하나요"
최근의 한국 영화계도 그런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설자리도 생겼다는 말. 그는 "나로부터 시작해서 이런 현상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며 말을 이어나갔다.
"최근의 사회 분위기가 `화면에서의 효과'가 중요해지는 시대로 가고 있어요. 우수한 인재들도 들어오고 다양한 장르와 각도로 영화가 만들어지니 캐릭터도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우리 후배나 동료들이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게 되도록 사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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