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11.20 10:00
수정 : 2018.11.20 10:22
|
최재훈씨가 딸 연서 양과 안덕면 사계리에 위치한 작은 포구, 사계항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제주&] 이주자가 만난 이주자-최재훈씨
서울서 옷가게, 파티플래너, 클럽 운영하다
제주서 어머니와 작은 식당 ‘토끼트멍’ 운영
“아이가 스마트폰 대신 자연과 친해져서 안심”
|
최재훈씨가 딸 연서 양과 안덕면 사계리에 위치한 작은 포구, 사계항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의 작은 식당 ‘토끼트멍’을 어머니와 함께 운영하는 최재훈(30)씨의 관심은 오직 6살 난 딸 연서 양에게 맞춰져 있다. 아침부터 부산을 떨며 밥을 차려 먹이고, 딸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준 뒤 가게로 출근한다. 점심 장사를 앞두고는 이것저것 할 일이 많다. 오전 내내 주방에서 일하다 오후에는 연서를 데리고 다시 가게로 돌아온다. 이제 제법 의젓해진 딸은 온종일 가게 한쪽에서 놀기도 하고, 혼자서 공부도 한다. 가게 문을 닫는 시간은 밤 10시. 딸을 데리고 집에 돌아오면 하루의 피로에 온몸이 나른해진다.
쉬는 날은 토요일 하루. 하지만 온종일 딸과 시간을 보낸다. 지척인 산방산에 함께 등산도 가고, 아이를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송악산에서 사계항에 이르는 그림 같은 해안도로를 달리기도 한다. 누가 봐도 착실하고 책임감 강한 ‘딸바보’ 아빠의 일상이다.
하지만 연서를 낳기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하던 일이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재훈씨는 10대 때부터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안 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동대문에서 옷가게를 했고, 그 뒤엔 파티플래너로도 일했다. 강남역에선 클럽 운영도 해봤다. 일과 놀이의 경계가 모호한 일상이었다. 밤에 활동하고 낮에 잠들었다. 그러다 결혼을 했고, 딸 연서를 낳았다. 그가 24살 때의 일이다. 성인이지만, 아직 자신의 삶을 책임지기에도 벅찰 때다.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결국 부부는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갓 돌을 지난 연서는 아빠 곁에 남았다. “돌밖에 안 된 아기를 혼자 키우려니까 정말 막막했어요.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혼자 있었으니까요. 제 시간을 가질 수 없다는 것도 힘들었고요.” 어쨌든 돈은 벌어야 했다. 해가 지면 밖으로 나가야 했다. 연서는 밤마다 친척 집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딸을 제대로 키우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과 자괴감이 그를 짓눌렀다. 충청도 출신이지만 제주에 정착해 식당을 운영하는 어머니와 함께 살기로 결심했다. 재훈씨는 딸과 제주의 작은 어촌마을 사계리에 정착한 뒤 소소한 일상의 행복이 주는 삶의 여유가 무엇인지 비로소 깨달았다고 했다.
|
최재훈씨와 딸 연서 양.
|
“아이가 스마트폰 대신 제주의 자연과 친해지는 게 보여서 정말 안심이 된다”는 그는 가게 일을 보다 짬이 나면 딸과 산책을 즐긴다. 작지만 아름다운 포구, 사계항까지는 걸어서 불과 5분 거리다.
“수입을 따지자면 서울에 있을 때와 비교가 안 되죠. 그래도 연서와 늘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게 정말 좋아요. 서울에선 잘 웃지도 않던 아이가 이제는 항상 웃고 있어요. 아빠와 할머니 곁에서 안정감을 찾고 있는 게 눈에 보인다고 할까요.”
어린 시절 화려한 ‘밤의 세계’에 빠져 있던 재훈씨는 이곳 제주에서 새로운 꿈이 생겼다. 바로 식당 ‘토끼트멍’의 분점을 내는 것이다. 사계리의 주민 맛집 토끼트멍은 집밥 느낌이 물씬 나는 고등어구이, 제육볶음, 닭볶음탕 등의 안주에 막걸리 한잔 기울이기 좋은 곳으로 제법 입소문을 타고 있다. 특히 큼직한 전복과 자연산 소라, 한치 등의 해산물이 푸짐한 모둠물회는 관광객들에게도 인기가 좋다. 제주식 물회는 보통 된장 국물을 쓰는데, 이곳의 물회는 감귤이나 한라봉 등 과일 육수로 새콤달콤한 맛을 낸다. 재료비로 따지면 해산물보다 과일값이 더 든다고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꿈은 역시 딸에게 좋은 아빠가 되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딸이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육지로 보내달라고 하기 전에는 계속 제주에 살고 싶어요. 나중에 연서가 결혼해도 제가 데리고 살 거예요. 사위요? 아들로 삼아버리죠, 뭐. 하하하!”
송호균/제주도민이 된 육아 아빠·자유기고가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