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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2 21:56 수정 : 2019.12.06 03:47

[짬] ‘2020두바이엑스포 한국관’ 자문위원장 고석만 피디

고석만 피디가 지난 11월 중순 출간된 저서 <나는 드라마로 시대를 기록했다>를 펼쳐보고 있다. 사진 김도형 기자
“이연현 선배(전 <문화방송> 드라마 피디)가 그러더라구요. ‘너 어떻게 그런 걸 다 기억하느냐’고. <엠비시 가이드>(문화방송 발행 월간지)와 제 글을 대조해서 보았는데 단 한군데도 틀린 데가 없더라고.”

2018년 1월부터 꼬박 1년간 <한겨레> 토요판에서 연재한 ‘길을 찾아서-고석만의 첨병’을 바탕으로 <나는 드라마로 시대를 기록했다>(창비) 책을 펴낸 고석만(71) 피디는 “‘첨병’을 쓰는 작업은 기억과의 전쟁이었다”고 새삼 감회를 밝혔다.

‘나는 드라마로 시대를 기록했다’ 출간

2018년 연재 ‘길을 찾아서-첨병’ 묶어

“백낙청 선생·후배 피디 권유에 용기”

“자료없어 글쓰는 내내 기억과 전쟁”

‘땅’ 중단·안기부 연행 등 ‘비화’ 공개

“방송정책 입안할 때 한번쯤 읽어주길”

연재를 시작할 때 그에게는 드라마 <땅>(극본 김기팔)의 15회 대본과 방송위원회 출석 진술서 말고는 자료가 거의 없었다. 드라마 제작 현장을 떠난 뒤에도 대본 1500여권을 내내 보관했지만, 수년 전 부인의 폐암 진단에 혹여 종이 먼지라도 해로울까봐 모두 불태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컴맹’에 가까울 정도여서 뒤늦게 인터넷 검색 등으로 자료를 찾기에도 곤란을 겪고 있었다.

“그런데 집중하니까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기억이 되살아나더라구요. 어떻게 그런 게 기억나는지…. 1985년 방영된 <억새풀>만해도 첫회 장면부터 선명하게 떠오르더라구요. 글로서 그 감동을 제대로 드러내지는 못했지만요.”

1970~90년대 <제1공화국>, <제2공화국>, <제3공화국>, <코리아게이트> 정치드라마와 <수사반장>, <거부실록>, <야망의 25시> 등 선굵은 드라마를 1000회 넘게 연출한 고 피디는 한국 드라마사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자 ‘방송수난사’의 상징적인 인물로 꼽힌다. 1981년 <제1공화국> 12회 ‘여간첩 김수임’이 방영된 직후 그는 남산 안기부로 끌려간 게 대표적이다. 그는 연재 때 군사정권 시절 공포의 공간이었던 ‘남산’에서 겪은 4박5일 모진 고초를 처음으로 공개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왜 간첩을 인간적으로 그렸느냐’ ‘왜 하필 최고 인기 탤런트를 기용했는가? ‘왜 김창룡이랑 수사관들은 비(B)급 배우를 쓰느냐’ 등 기관원이 조목조목 질문을 해댔다. 초점은 반공이었다. 나는 하나하나 차분하게 설명했고, 그들은 그때마다 기가 막힐만큼 윽박질렀다. 온종일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녹초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놀라운 기억력을 ‘상처’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때린 사람은 기억이 없을지 모르지만 맞은 사람은 평생 간다고 하잖아요. 그때 맞은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서 기억으로 되살아난 것같아요. ”

‘나는 드라마로 시대를 기록했다’ 표지. 창비 제공
그는 애초 ‘첨병’을 책으로 엮어낼 용기도 계획도 없었다고 했다. 그런데 평소 알고 지내는 <창비>의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직접 전화를 걸어 출판을 권유했다. “출판할 만한 꺼리가 되겠느냐”는 그의 되물음에 백 교수는 “이건 누군가는 해야 한다”고 자신감을 실어줬다. 1970~90년대 피박받은 방송의 역사를 누군가가 기록해야 한다는 주문이었다. 또 한 후배 드라마 피디는 “이 글은 단순한 옛날 이야기가 아니라 피디 지망생들에게 좋은 지침이 될 것”이라며 출간을 종용하기도 했다.

대하드라마 <땅>(1991년)이 권력의 압박으로 15회 만에 중도하차한 것은 김기팔 작가나 연출자인 그에게는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큰 상처와 한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첨병’ 첫회를 장식했던, 드라마 <땅>을 기획했던 야심찬 포부와 뼈저린 좌절의 과정은 책에서도 맨 먼저 소개했다. “이렇게 기록함으로써 개인의 역사를 넘어 시대의 역사, 방송의 역사가 되는가 싶어요.”

그러나 그는 책을 내고도 여전히 쑥스러워했다. <나는 드라마로 시대를 기록했다>라는 제목은 창비쪽에서 40~50개의 후보 중에서 최종 선택했는데 정작 당사자는 “내가 시대까지 기록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래서 통과의례같은 출판기념회도 끝내 사양했다.

그는 오는 29일 평생의 드라마 파트너였던 고 김기팔 작가의 28주기 참배 때 묘비에 책을 올릴 참이다. 김 작가는 <땅>의 중도하차에 화병으로 연일 술로 지새우다가 1991년 12월24일 영면했다. 12월29일은 고인의 삼우제이자 <땅>의 마지막 50회 ‘하나되는 땅’의 방영 예정일이었다.

‘첨병’ 연재에 이은 책 출간까지 마무리하면서 그는 ‘무엇보다 내 안의 상처를 훌훌 털어버릴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래서 방송사 내부 ‘부역자’에 대해서도 책에서는 날선 부분을 많이 덜어냈다고 한다. 다만, 그는 방송정책 입안 책임자들이 책을 한번쯤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지난 6월 고양국제꽃박람회 대표이사 자리를 내놓은 그는 요즘 ‘2020두바이엑스포’ 한국관총괄 자문위원장을 맡아 ‘한류 콘텐츠 홍보의 첨병’으로 여전히 활동중이다.

김도형 선임기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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