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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종영한 티브이엔(tvN)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는 일과 사랑을 주도하는 여성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성역할의 반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티브이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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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이승한의 술탄오브더티브이
세상을 움직이는 멋진 여성들
그 옆에 서 있는 순정파 남자들
여성들 간의 끈끈한 우정
오랫동안 당위로 착각해온
남성 편중 서사 뒤엎어
올해 가장 중요한 드라마라 할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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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종영한 티브이엔(tvN)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는 일과 사랑을 주도하는 여성 주인공들을 중심으로 성역할의 반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티브이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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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포털사이트 점유율 1위 자리 역전에 성공했는데, 어째 배타미(임수정)의 표정이 썩 밝아 보이지 않는다. 이 사실을 유일하게 눈치챈 사람은 그와 티격태격하면서도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해온 차현(이다희)뿐이다. 현은 타미의 손목을 낚아채 회식이 한창인 노래방에서 끌고 나와 대체 무슨 일이길래 얼굴이 죽상인지 묻는다. 타미는 애인과 헤어졌다 말하고, 현은 그런 타미를 든든한 품에 안고 다독여준다. 흥미롭다. 프로젝트를 주도해 회사를 성공으로 견인하는 주인공 역할도, 애인과 헤어지고 돌아와 그 쓰린 속을 친구에게 털어놓으며 위로받는 역할도, 보통은 그 자리에 남자 주인공이 가 있는 게 익숙한 그림이다. 그러나 지난 목요일 종영한 티브이엔(tvN)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이하 <검블유>)에서 이 모든 역할은 여성의 몫이었다. 기쁘면서도 슬픈 복잡한 심경을 경험하는 것도, 오랫동안 노력해 무언가를 성취해도 이내 수성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일의 무상함에 대해 토로하고 공감하는 것도, <검블유>에서는 모두 여성의 몫이다. 여성 주인공들이 세상을 굴리고 그 멋진 주인공들 옆에 순정파 남자들이 트로피처럼 전시되는 그림도, 기존에 익숙했던 서사 예술의 성역할을 반전시킨 구도다.
‘걸캅스’에 내걸린 거세 공약
오랜 세월, 서사 예술 안에서 진취적인 주인공은 주로 남자의 몫이었다. 남자가 서사의 중심에 서는 전통적인 그림이 창작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익숙하기도 했거니와, 실제 여성의 사회 진출이 허용된 역사가 남성의 그것보다 짧은 탓에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가 좀처럼 중추적인 자리에 가지 못했다는 점도 그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서사 예술 안에서 간혹 여성이 진취적이고 용감한 캐릭터로 그려지더라도 그 범위는 제한적이었다. 그리스 신화 속 아마조네스처럼 바르바로이(야만인, 이방인) 취급을 받거나, 혹은 바리데기 설화나 심청 설화처럼 그 진취와 용감이 결과적으로는 충효사상이라는 전통적인 가부장제 질서에 복무하거나.
문제는 현상과 당위를 헷갈리면서 일어났다. 리얼리티의 측면(사회에 진출한 여성의 성비와 그 지위)에서나 장르 역사의 측면(남성이 서사의 중심에 서는 것이 익숙하다), 장르 관습의 측면(여성의 진취성은 가부장제 질서를 위해서만 제한적으로 허용되어야 하며, 그러지 않은 것은 문명의 교화를 거치지 못한 야만이다.)에서, 그동안 여성 중심 서사가 적었다는 것은 ‘현상’이다. 그러나 그것이 여성 중심 서사나 성역할 반전 서사가 나와서는 안 된다는 ‘당위’가 될 수는 없다.
오랫동안 굳어진 현상은 종종 당위로 착각된다. 여성 캐릭터의 치마가 바람에 날려 은근슬쩍 팬티가 보이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요소 ‘판치라’는 단지 그 현상이 오랫동안 지속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일부 팬들에 의해 존중되어야 하는 장르 특유의 전통인 양 옹호를 받았다. 지금에 와서는 사라진 관습이 되었지만, 조금만 공포스러운 상황과 마주치면 마취총을 맞은 것처럼 기절해 픽픽 쓰러지는 여성 캐릭터를 성적으로 착취하던 할리우드의 클리셰 또한 ‘팬 서비스’라는 명목하에 그 생명력을 오래 지속했다. 단지 어떤 현상이 오래 지속되었으며 그 현상이 핵심 소비자 계층에게 지지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전통’ ‘팬 서비스’ ‘장르적 약속’ 따위의 긍정적인 어감을 지닌 당위로 둔갑한 셈이다. 물론 핵심 소비자 계층이 지지하고 용인하는 매력들을 꾸준히 지켜나가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그 ‘매력’이 해악성을 지니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다. 핵심 소비자 계층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당위를 얻을 수 있다는 명제를 긍정해버리면, 향정신성의약품 또한 전면 허용해야 한다는 파국적인 결론에 이른다.
현상과 당위를 헷갈리면 이런 일들이 생긴다. 올해 상반기 개봉 영화 가운데 라미란과 이성경이 여성 대상 불법촬영 범죄자들을 추적해 소탕한다는 내용을 담은 경찰 버디 코미디 <걸캅스>는, 개봉하기도 전부터 평점 테러와 함께 “이 영화는 망할 것”이라는 저주를 당했다. 물론 <걸캅스>는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코미디의 질이 균등하지 못했고, 어떤 농담들은 심각한 인종주의적 요소까지 담고 있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에서 만들어진 경찰 소재 버디 코미디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걸캅스>의 만듦새가 유달리 떨어진다고 보긴 어려웠으며, 특히나 영화를 보기도 전에 영화의 완성도를 속단할 수 있을 만큼 뻔한 작품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걸캅스>를 보지도 않고 저주를 퍼부었던 것은, 현상과 당위를 헷갈렸기 때문이다. 그동안 영화 속에서 여성 경찰들이 활약하는 모습이 많이 조명된 바 없고, 실제 경찰 조직 내 여성의 성비나 그들이 받는 처우가 그렇게 주도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현상’이다. 그러나 그게 ‘여성 주인공이 남성들보다 더 냉철하게 사건을 수사해 강력범죄를 소탕한다’는 설정을 영화로 만들어서는 안 되는 ‘당위’가 될 수는 없다. 이 두가지를 헷갈린 나머지, 한 남성 네티즌은 호기롭게 <걸캅스>가 손익분기점을 넘기면 자신의 고환을 적출하겠다는 거세 공약을 내걸었다. 이게 대체 뭔가. 그가 현상은 현상대로, 당위는 당위대로 생각했더라면 지금쯤 그도 민망할 일이 없었을 것이고 우리 또한 그가 과연 제 약속을 지켰는지 궁금해했을 일도 없지 않았겠는가?
손에 쥔 기회 알뜰하게 활용
여성 중심 서사를 향한 공격에서 <검블유>가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검블유>가 이런 함정을 영리하게 피해 가는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검블유>의 무대가 되는 아이티(IT) 업계는 여타 산업에 비해 여성의 성비가 높으며, 여성 중역의 비율도 상대적으로 월등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사실이 비교적 널리 알려진 편이다. 물론 아이티 업계라고 해서 여성에 대한 처우가 모두 <검블유> 속 포털 사업자 ‘유니콘’이나 ‘바로’만큼 좋지도 않을 것이고, 모든 상사가 브라이언(권해효)처럼 수평적이고 대등한 관계를 맺는 이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아이티 업계가 한국 사회 평균보다 상대적으로 수평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다는 대외적인 이미지 덕분에, 현상과 당위를 헷갈리는 이들 또한 <검블유>에서 여성이 주도권을 지니고 활약한다는 설정 자체를 공격하진 못했다. 그들이 당위의 근거로 삼는 현상 자체가 판이하게 다른 동네이니, 주장이 먹힐 리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반대 세력의 입을 닫게 한 <검블유>는, 손에 쥔 기회를 통쾌하리만치 알뜰하게 써먹는다. 차현은 자신의 남자친구인 신인 배우 설지환(이재욱)이 곧 군대에 간다는 사실에 울면서 성질을 내지만, 이 장면은 더없이 코믹하게 그려진다. 같이 밥을 먹다가 찬으로 나온 미역국을 보고는 지환이 극중극 <장모님이 왜 그럴까>에서 ‘미역 싸대기’를 맞는 장면을 떠올리며 오열한다는 설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사람은 없으니까. 반면 그가 신문기자들에게 원치 않는 사진을 찍힐 위험에 놓인 자신의 선배 송가경(전혜진)을 구해 자신의 집으로 데려오는 장면은 더없이 근사하고 애틋하게 묘사된다. 메인 주인공인 배타미의 멜로라인은 그것보단 훨씬 더 성실한 멜로 장면으로 연출됐지만, 그가 모건(장기용)과 헤어지고 돌아오는 장면만큼이나, 그가 술에 취해 한때의 적이었고 지금의 동지인 차현에게 위로받으며 “난 (미래에도) 너와 함께하면 좋겠는데?”라 고백하는 장면 또한 더할 나위 없는 멜로 장면으로 완성됐다. 남성 집단 안에서 흔히 통용되는 신화인 ‘사랑보다 우정이 먼저’ 같은 말들이, 남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사실 여성 집단 안에서 더 끈끈하게 재현되고 있다는 선언 같은 장면이다.
완성도나 주제의식 면에서 <검블유>를 올해 가장 잘 만든 드라마라고 말하는 건 무리일지 모른다. 하지만 오랫동안 당위로 착각되어온 서사 속 남성 편중 현상을 이처럼 본격적으로 뒤엎고도 별다른 반발 없이 무사 완주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검블유>는 올해 나온 드라마 중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 불릴 자격이 있다. 아직 못 보신 분들이라면, 주말을 다시보기로 불태워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분명 앞으로도 여러차례 언급이 될 하나의 분기점과 같은 작품이니 말이다.
이승한 티브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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