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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8.31 19:29 수정 : 2018.09.01 10:33

[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미국드라마 <템플 그랜딘>

1951년 미국 보스턴, 유스태시아(줄리아 오몬드)는 4살이 되도록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사람들과의 접촉도 싫어하는 딸을 병원으로 데려간다. 자폐증 진단을 내린 의사는 아이를 특수시설로 보내라고 권유한다. 하지만 유스태시아는 딸을 형제자매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하게 키우기 위해 자립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친다. 10년 뒤 청소년으로 자란 템플 그랜딘(클레어 데인스)은 엄마 유스태시아와 떨어져 뉴햄프셔 기숙학교에 들어간다. 낯선 환경에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던 템플 그랜딘은 일생의 스승인 칼록 박사(데이비드 스트러세언)를 만나 안정을 찾는다. 칼록은 천부적인 시각적 사고력을 지닌 그녀의 특별한 재능을 알아보고 격려해준다.

2010년 미국 <에이치비오>(HBO)에서 방영한 <템플 그랜딘>은 장애를 지닌 채 천재적인 동물학자로 성장한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다. 평생 말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사의 진단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재능을 살려 동물학 박사 학위까지 받은 템플 그랜딘은 콜로라도 주립대 교수가 됐다. 그녀가 개발한 인도적이고 효율적인 축사 시스템은 현재 미국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또한 자폐증 경험에 대한 통찰력을 강연과 저술 활동 등으로 널리 공유하는 열정적인 활동가이기도 하다. 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템플 그랜딘>은 그해 에미상과 골든글로브상 등 유수의 시상식을 휩쓸면서 장애에 관한 대중적 이해에 큰 영향을 미쳤다.

드라마가 호평을 받은 데에는 실화에서 오는 감동 외에도 장애를 소재로 한 기존의 미디어와는 차별화된 묘사가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대부분의 미디어가 장애를 ‘극복’하는 휴먼드라마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 작품은 템플 그랜딘이 그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는 인물이라는 점을 알리는 데 집중한다. ‘그림을 통해 생각하는’ 템플 그랜딘의 시선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시각 자료와 편집 기술을 동원해 비자폐인들이 세상을 보는 전형적 관점에 신선한 충격을 안긴다.

인물의 천재성을 강조하기보다 사회적 성장에 초점을 맞춘 전개도 인상적이다. 특히 템플 그랜딘이 연구하는 축산 분야는 마초적인 카우보이들이 지배하는 세계였기 때문에 템플은 장애인이자 여성이라는 이중의 차별과 맞서야 했다. 드라마는 템플의 가족사를 어머니 유스태시아, 이모 앤(캐서린 오하라)과의 관계로 축소해, 그녀에게 위안과 강인함을 동시에 안겨준 여성 연대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는 보수주의와 다양한 민권운동이 충돌하던 1960년대의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리며 한층 풍부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 철폐와 공존을 향한 요구의 목소리가 높다. 장애계에서는 오랜 숙원이던 장애인등급제 폐지를 둘러싸고 기대와 우려가 엇갈리고 있고, 여성계에서는 성폭력 반대 운동을 비롯해 다양한 안건의 대형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목소리를 아직도 ‘불편한 잡음’으로 취급하는 인식이 너무도 뿌리 깊다. 그 어느 때보다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능력이 절실한 시기다.

티브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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