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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1.17 16:20 수정 : 2005.01.17 16:20

에스비에스 주말극 〈봄날〉의 세 주인공은 모두 저마다의 깊은 심리적 외상에 시달린다. 은섭(조인성)은 형 은호(지진희)에 대한 열등감과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 어머니에 대한 집착 등이 얽혀 심각한 병적 징후를 드러낸다. 평소 타인과의 접촉에 거부감을 가진 그는 피만 보면 극심한 두려움에 떠는, 의사로선 치명적인 결격 사유 또한 안고 있다.

정은(고현정)은 어머니한테 버려진 데 대한 분노로 스스로를 유폐시킨다. 유일한 탈출구였던 피아니스트의 꿈이 좌절된 직후 어머니의 위로를 찾아 나섰으나 상처만 입고 돌아선 뒤, 잇자국이 선명히 새겨질 때까지 손을 물려도 “아프다”는 말조차 하지 않는다.

은호의 내면 또한 상처투성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떨어져 새어머니의 질시와 견제 속에서 성장기를 보낸 그다. 30살 레지던트가 될 때까지 그의 소망은 어머니를 다시 만나 함께 사는 일이었을 만큼 결핍의 자리는 크다. 1회 그는 그의 관심을 외면하며 바닷가로 달아난 정은을 쫓아가 붙잡은 뒤 소리친다. “나 울엄마 열 살 때 보구, 지금까지 한 번두 못봤다. 불쌍하지? 근데두 난 너처럼 울어보지두 못했어. 진짜 불쌍하지? 소리내서 울어. 니 소리에 묻혀서 나두 좀 울게.”

이들의 정서적 결핍과 심리적 상처는 한결같이 존재의 기원인 가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은섭의 병적 태도는 어머니의 자살 시도를 지켜봐야 했던 어린 시절의 공포스런 기억에서 비롯된 것으로 설명된다. 정은과 은호 역시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상처받은 가여운 어린아이의 내면을 갖고 있다.

이전에도 젊음의 정서적 결핍과 심리적 상처를 다룬 드라마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트렌디 미니시리즈에서 가족이 고통과 상처의 절대적 뿌리로 그려진 드라마를 만나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청춘의 덫〉 같은 김수현의 연애심리극이나, 이종원이 나왔던 〈젊은이의 양지〉 등이 일그러진 가족관계가 젊은 영혼에 남긴 상처의 흔적들을 보여줬지만, 배경을 넘어 주제에까지 이르지는 못했다. 〈네멋대로 해라〉에 이르러 한국 드라마는 기성세대의 욕망에 치여 고통받는 젊은이의 이야기에 본격적으로 귀기울이게 됐고, 지난해 〈아일랜드〉나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선 비로소 가족의 파괴적 힘에 주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봄날〉은 나아가 가족사로부터 상처입은 심리적 장애인들이 치유를 목적으로 직접 무대에 선 일종의 ‘사이코 드라마’같은 느낌을 준다. 아직 한 여인과 이복형제 사이 삼각 연애담까지 진도가 나가지는 않은 까닭도 없지 않을 터이다. 〈봄날〉이 가족사의 상처와 치유에 지속적인 눈길을 줄 것인가, 아니면 삼각관계의 단순한 배경으로 소진할 것인가에 따라, 이후 〈봄날〉의 색깔은 달라지게 될 것 같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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