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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13 05:00 수정 : 2020.01.13 09:25

안치환·우리나라·노찾사·손병휘…
육중환밴드·노브레인·박시환 등과
다음달 1일 ‘더 청춘’ 합동 콘서트

집회·시위 현장서 불리다 쇠락의 길
중장년층 향수·촛불시위 등 영향
SNS 타고 청년층 유입 ‘다시 관심’
연영석·문진오·손현숙 등 새 앨범

‘공짜 노래’ 인식에 저작권 소홀 한계
디지털 음원·장르 다변화 시도하고
환경·여성 등 ‘현시대 의제’ 눈 넓혀야

“아이돌만 입성이 가능하다는 올림픽 체조경기장에 민중가수와 대중가수가 모인다니! 그 시절을 추억하는 친구들과의 동창회 같은 느낌이에요.”

1980년대 후반 대학을 다니며 민중가요를 즐겨 듣고 불렀던 김아무개씨 부부는 올해 결혼 25주년을 맞았다. 두 사람은 은혼식의 의미로 여행을 계획했다가 취소했다. 그 대신 새달 1일 ‘민중가요 소환 콘서트 더 청춘’ 공연에 가기로 했다. 김씨 부부는 동창회도 계획했다. 함께 청춘을 보냈지만 지금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사는 선배, 후배, 친구를 콘서트에 초대하기 위해 티켓 10장을 한꺼번에 예매했다. 김씨 부부는 “이번 공연은 우리 부부의 은혼식이자 친구들과 함께하는 동창회”라며 “떼창을 할 수 있도록 미리 노래도 연습해 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 그때 그 시절 ‘민중가요’가 돌아왔다

1980~90년대 집회·시위 현장에서 널리 불리다 2000년대 이후 점차 쇠락의 길을 걷었던 민중가요가 다시 돌아왔다.

새달 1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민중가요 소환 콘서트 더 청춘’ 공연은 그 귀환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안치환과 자유’, ‘우리나라’,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 ‘조국과 청춘’의 손병휘 등 민중가요 가수는 물론 육중완밴드, 노브레인, 박시환 등 대중가수들이 80~90년대 민중가요를 자신의 스타일로 편곡해 다시 부른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에는 노래집단 ‘노찾사’의 멤버 김은희와 ‘새벽’의 윤선애가 30여년 만에 처음 합동공연인 ‘2019 김은희&윤선애’를 열었다. 앞서 11월에는 연영석이 14년 만에 4집 정규앨범 <서럽다 꿈같아 우습다>를 발표했다. 같은 달 ‘노찾사’ 출신 문진오도 음악인생 30년을 기념하는 6집 <듣지 않는 노래>를 발표하고 콘서트도 열었다. ‘꽃다지’도 같은 달 ‘데모가 희망이다’라는 콘서트를 했다.

이밖에 10월 전설적인 민중가요 중 하나인 ‘청계천 8가’를 부른 그룹 ‘천지인’ 보컬 손현숙이 10년의 공백을 깨고 돌아왔고, 1월에는 민중가수 27명이 모여 <파업가 30주년 김호철 헌정 음반>을 내놨다. 김호철의 ‘파업가’가 세상에 나온 지 30돌 되는 해(2018년)를 기념한 이 음반 제작 소식이 알려지자 삽시간에 1000명의 후원자가 모였고, 이들이 제작비를 십시일반으로 보탰다.

최근에는 드라마에서도 민중가요가 흘러나왔다. 지난해 방영된 드라마 <녹두꽃>(SBS)에는 ‘죽창가’가, 앞서 2018년엔 드라마 <닥터 탐정>(SBS)에 ‘청계천 8가’가 삽입곡으로 리메이크돼 젊은층 사이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꽃다지 공연 장면. 이민정 작가 제공

■ 향수 젖은 중장년층에 유튜브 타고 청년층 유입

점차 그 생명력을 잃어가던 민중가요가 다시 돌아온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이제 기성세대가 된 80~90년대 민중가요 향유층의 향수를 가장 큰 이유로 꼽는다. ‘청춘 콘서트’의 제작 총괄 윤미영 감독은 “학생, 노동자 등으로 집단화됐던 당시엔 민중가요를 많이 불렀지만, 현장을 떠나 각자 서민의 삶으로 돌아가 생활하다 보니 민중가요를 등한시하게 됐다”며 “민중가요에 얽힌 그 시대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을 느끼는 기성세대 관객이 많다”고 말했다.

부모가 듣던 민중가요를 자식이 함께 듣기도 한다. ‘청춘 콘서트’의 사업 총괄 김영복 감독은 “아버지와 함께 콘서트를 가고 싶다며 티켓 오픈 첫날 전화를 걸어 온 50대 관객이 있었고, 대학생이 된 아이를 데리고 오겠다는 부모 세대도 있었다”고 말했다. 여기엔 지난 10년 보수정권을 거치며 줄기차게 이어져온 촛불집회의 영향도 크다. 10대부터 60대 이상 장년층까지 광장으로 모이게 했던 촛불집회 현장에서 민중가요가 많이 울려 퍼졌다. 촛불집회가 중장년층에겐 향수를, 청년층에겐 관심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계기가 된 셈이다. 대학생 이지아씨는 “박근혜 퇴진 집회, 검찰개혁 집회 등에 종종 참여했는데 그때 민중가요를 처음 접했다. ‘바위처럼’, ‘솔아 푸르른 솔아’ 같은 노래들이 좋아 요즘도 찾아 듣고, 기회가 생기면 가끔 공연장도 찾는다”고 말했다.

유튜브·페이스북 등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민중가요를 공유할 수 있는 새 채널이 생겼다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새벽’ 출신 윤선애씨는 “최근엔 공연장에서 동영상을 찍는 관객이 늘었다. 영상을 찍고, 블로그나 유튜브에 올리면서 다시 보고 듣고 타인과 소통함으로써 민중가요나 가수를 좋아하는 관객도 늘어난 듯하다”고 말했다. 김영복 감독 역시 “뉴미디어를 통해 20~30대 관객도 일부 유입됐다”며 “이번 공연을 유튜브·페이스북으로 홍보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다음달 1일 열리는 ‘민중 가요 소환 콘서트 더 청춘’ 포스터

■ 여전한 선입견…민중가요는 저작권 없는 공짜?

그러나 민중가요가 많이 불렸던 80~90년대에도, 점차 잊혔다 되살아나고 있는 지금도 ‘민중가요는 공짜’라는 인식은 민중가수들을 힘들게 한다. ‘공짜 음악’이라는 선입견 탓에 정당한 공연료나 저작권료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새벽’의 김선애씨는 “민중가요를 부를 수 있는 무대도 적지만, 환경도 열악하다. 공연료도 지나치게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꽃다지’ 민정연씨는 저작권협회에 등록하면 저작권료를 받을 수 있지만 등록하지 않았다고 했다. 민씨는 “꽃다지 노래가 필요한데 비용 부담 때문에 쓰지 못하는 사회운동가들을 위해서였다”며 “하지만 등록을 하든 안 하든 당연히 저작권이 발생함에도 방송이나 정치인들이 무단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유를 물으니 민중가요는 공짜인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 토로했다. 민중가요의 저작권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개선돼야 하는 이유다.

서정민갑 대중음악 평론가는 “민중가수들이 협회에 등록하지 않는 이유는 민중가요를 공공의 자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민중가요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해당 가수들에게 정당한 몫을 돌려줘야 한다”며 “단순히 저작권료 지급보다는 음반을 구매하고, 공연을 보러 가는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호철 파업가 30주년 기념 앨범

■ 민중가요 귀환이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으려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 민중가요가 앞으로도 계속 재조명되고 지속적으로 불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수들은 먼저 유통 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꽃다지’ 민정연씨는 “과거에는 대학 인문사회과학서점에서 앨범을 유통했지만 이젠 그런 서점이 다 사라져버렸다. 2000년대 이후 온라인을 통해 유통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왔지만 많이 부족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런 어려움 탓에 최근에는 시디와 디지털 음원을 함께 발매하는 민중가수도 생겨났다. 지난해 11월 각각 새 앨범을 낸 연영석과 문진오의 노래는 각종 음원사이트에서도 들을 수 있다. 지난해 1월 나온 <파업가 30주년 김호철 헌정 음반>도 마찬가지다. 연영석씨는 “과거에는 음원 유통사만 배불린다고 생각해 시디나 디지털 음원을 선호하지 않았지만,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팬들을 위해 새로운 유통 방식도 고려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대중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음악적 새로움을 추구하는 민중가수들의 노력도 필요하다. 연영석은 새 앨범에서 이전과 같이 노동자·장애인을 노래하면서도 한편으론 개인적인 삶의 단상도 담았다. 가창 스타일 역시 소리 높은 외침보다는 나지막이 읊조리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는 “이전 앨범보다 듣기 편한 노래라는 평가를 받았다”며 “장르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순 없겠지만, 대중과 소통의 폭을 넓히기 위한 노력이었다”고 설명했다. 손현숙 역시 새 앨범을 내면서 힙합과 포크를 접목한 ‘암태아들 영기’라는 곡을 만들었다. 손현숙씨는 “이제 집회도 문화제 형식으로 바뀐 만큼 민중가요도 다양해지고 있고 앞으로도 더 다양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윤미영 감독은 “‘광야에서’, ‘솔아 푸르른 솔아’는 운동권이 아니라도 누구나 안다. 이처럼 민중가요는 운동권의 전유물이 아니라 문화의 한 부분”이라며 “‘청계천 8가’나 ‘죽창가’가 드라마에 삽입된 것처럼 얼마든지 대중문화로 흡수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새달 공연에서 대중가수가 민중가요를 부르는 것도 비슷한 취지”라고 설명했다.

민중가요의 의제 확장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서정민갑 평론가는 “민중가요는 통일·계급·노동·민주주의 등을 의제로 삼았는데 이제는 환경·여성·성소수자 등 새로운 의제로 반경을 넓혀야 한다. 또 이런 의제를 지금, 현시대의 음악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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