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12.24 18:35 수정 : 2019.12.25 02:36

지난 21일 개막한 <위대한 개츠비>는 관객이 ‘개츠비 파티에 초대된 손님’이라는 설정으로 극에 참여하는 관객참여형 공연으로 눈길을 끈다.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관객체험형 공연 ‘위대한 개츠비’

파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1층 대기실 입장부터 공연 시작
1920년대 재현 술집에 모인 관객들
스윙댄스 따라 추고 배우와 대화도

소심한 나도 마음만은 인싸!
손님 역할 맡은 관객들 반응 따라
극 완성도나 분위기도 천차만별
옆 사람 적극성에 용기 내서 한 발짝

관객도 배우도, 이런 건 처음이지?
주목받기 꺼리는 다수의 사람들
배우들은 ‘즉흥 대화 기술’ 익혀
무대 경계 허무는 색다른 경험

지난 21일 개막한 <위대한 개츠비>는 관객이 ‘개츠비 파티에 초대된 손님’이라는 설정으로 극에 참여하는 관객참여형 공연으로 눈길을 끈다.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난 누구고, 여긴 어딘가.’

정체성에 대한 혼란은 표를 끊고 1층 대기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관객체험형(이머시브) 공연 <위대한 개츠비>(내년 2월28일까지) 개막 첫날인 지난 21일. 공연이 열리는 서울 을지로 그레뱅뮤지엄 2층에 가려면 1층 대기실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2층으로 직행은 안 된다. 1층 대기실부터가 공연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대기실은 1920년대를 재현한 술집. 표를 사면 무료로 주는 샴페인 한잔을 마시며 삼삼오오 잡담을 나눈다. 그러다 1920년대 옷차림의 종업원이 말을 걸어오면 어찌할 바를 몰라 눈만 껌뻑이게 된다. “개츠비 파티에 어떻게 초대되신 건가요?” 여기는 2019년인가 1920년인가.

“자, 개츠비 맨션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나를 따라오세요!” 중절모를 쓴 신사의 외침에 술잔을 든 관객들이 일제히 2층 계단을 오른다. “관객이라니요, 여러분은 개츠비 파티에 초대된 손님들입니다!”라고 신사가 말하는 것같다. 맞다. 그레뱅뮤지엄 2층을 꾸민 개츠비 맨션에 들어서면 2019년은 완전히 사라진다. 인터미션(쉬는 시간)에도 관객에게 말을 거는 배우에게 <한겨레>에서 취재를 왔다고 밝히니 그가 이렇게 받아친다. “와우, <뉴욕 타임스>에서 개츠비 파티를 취재하러 오셨다고요?” 한시도 마음을 놓을 틈을 주지 않는다.

관객과 함께 춤을 추는 모습.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외국에선 10년 전부터 <슬립 노모어> 등 관객체험형 공연이 인기를 얻었다. 우리나라에선 최근 1~2년 새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몇몇 연출가들이 대학로 거리에 좀비가 출몰하게 하고 관객이 이를 피해 도망가는 식의 ‘실험적 시도’를 한 적은 있었지만 활발해진 것은 최근 들어서다. 지난해 연극 <아파트>는 무용, 전시 등을 접목하고 관객이 돌아다니면서 볼 수 있게 해 관심을 끌었다. 2015년 영국 요크의 폐업한 술집 건물에서 시작한 <위대한 개츠비>는 관객이 아예 ‘손님’ 역할을 하며 함께 극을 꾸려가는 진정한 의미의 참여형 공연이라는 점에서 한국에서 성공 여부가 주목된다. 외국과 달리 주목받는 걸 꺼리는 경향이 짙은 한국 관객이 틀을 깨고 몸을 던질 수 있을까.

“한국 관객은 기회가 없었을 뿐”이라는 <위대한 개츠비> 관계자의 말처럼 공연이 시작되니 ‘세상에 소심한 존재는 나 혼자뿐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들 적극적이다. 화자인 닉과 개츠비, 개츠비의 경쟁자들과 그들과 얽혀있는 여자들까지. 뮤지컬은 원작 소설을 하룻밤에 일어난 상황으로 바꿨는데, 극이 흘러가는 중간중간 배우들은 관객 참여를 여러 차례 유도한다. 스윙댄스를 가르쳐주기도 하는데, 관객들은 대부분 적극적으로 따라 한다. “오 센터~ 왼 센터~ 킥킥 다다다다!” 백미는 중간중간 배우들이 관객 몇몇을 데리고 다른 방에 가는 것이다. “나를 도와주세요” “내 얘기 좀 들어주세요”라며 관객을 각각의 방에 데리고 가서 또다른 이야기를 펼친다. 집무실로 꾸민 어떤 방에서는 개츠비가 관객에게 투자를 권하기도 하고, 다른 방에서는 맥주병을 돌리며 관객과 진실 게임을 하기도 한다. 물론 이 이야기는 극중 배우들의 사연과 연결된다. 진실 게임 방에서 춤을 췄던 관객 장지은(29)씨는 “신선하고 재미있다. 이런 공연이 처음이어서 체험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극 중간중간 배우들이 관객들을 다른 방에 데리고 간다. 방마다 여러 이야기가 따로 또같이 펼쳐진다. 진실 혹은 도전 게임도 한다.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들에게도 색다른 경험이다. 박정복은 “우리나라에서는 잘 하지 않는, 관객과의 거리를 무너뜨리는 독특한 형식의 공연에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쉽지 않다. 관객 참여가 극을 완성하는 만큼 반응에 따라 분위기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메인 공간과 방에서 이야기가 동시에 펼쳐지면 각각의 합이 맞아야 한다. 그럴수록 준비를 갑절 이상 했다. 관객 반응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이머시브 테크닉을 배우는 워크숍까지 진행했다고 한다. 협력 연출자인 에이미 번즈 워커는 “이머시브를 하기 위해서는 캐릭터를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 말고도 어떤 시나리오나 어떤 상황에서도 관객의 질문에 캐릭터에 걸맞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연에 참여하다 보면 저 상황에서 저 대사는 애드리브일까 대본일까 궁금해지는 순간이 많다. 제작사 쪽은 “즉흥적인 상황에 대한 기본 틀은 다 정해져 있다”고 말했다.

배우를 따라 방을 돌고, 다른 관객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걸 보다 보니 벽 기둥 뒤에 숨어 있던 몸이 어느새 앞으로 한발 나와 있다. 여전히 배우와 눈이 마주치면 ‘내게 오면 어쩌나’ 시선을 피하기 급급하지만 모두들 즐겁게 따라하는 분위기가 용기를 준다. 결혼기념일을 맞아 남편 김태농(47)씨와 공연을 보러 온 이은혜(46)씨도 “내성적인 성격이라 어울릴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나도 모르게 어울리게 되더라”고 말했다. 부부는 스윙댄스를 수줍어하면서도 열심히 췄다. 에이미는 “관객들이 마음을 열고 캐릭터의 초대를 받아들여 ‘네’ 하고 대답을 많이 하면 할수록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연이 끝나니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든다. 담번엔 외투와 가방을 보관소에 맡기고 나를 깨봐야겠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