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19 07:00
수정 : 2019.12.19 19:43
|
‘다 하지 못한 말 요한, 씨돌, 용현’의 한 장면. 에스비에스 제공
|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 남 돕던 의인
6월 방송 후 쏟아진 선행 제보
파라과이에서도 고마움 전해와
22·29일 후속 다큐 2부작 방영
|
‘다 하지 못한 말 요한, 씨돌, 용현’의 한 장면. 에스비에스 제공
|
민주화항쟁 때 ‘호헌 철폐, 독재 타도’를 외치고, 군 의문사 진상을 밝혀내고, 삼풍백화점 붕괴 때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구조를 도운 사람. 대가를 바라지 않고 사건이 해결되면 늘 홀연히 사라졌던 사람. 지난 6월 <에스비에스(SBS) 스페셜>을 통해 알려진 ‘요한, 씨돌, 용현’의 이야기는 이기심이 팽배한 시대에 많은 이들을 부끄럽게 했다.
하지만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을 했다”던 그의 헌신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방송이 나간 이후 “나도 저분한테 도움을 받았다”는 제보가 끊이지 않았다. 경북 구미, 제주, 부산, 경기 과천 등 전국 방방곡곡을 넘어 남미 파라과이에서까지 30여건이 쏟아졌다. 제작진은 한분 한분 만나 고마워하는 그 마음을 카메라에 담았고, 이를 22일과 29일 2부작 다큐멘터리로 선보인다. <에스비에스 스페셜-다 하지 못한 말 요한, 씨돌, 용현>(에스비에스·일요일 밤 11시5분)이다.
|
‘다 하지 못한 말 요한, 씨돌, 용현’의 한 장면. 에스비에스 제공
|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던 용현은 어떤 곳에서는 요한으로, 또 다른 곳에서는 씨돌로 불렸다. <다 하지 못한 말 요한, 씨돌, 용현>에서는 ‘후안’이라는 이름 하나가 추가된다. 그는 1986년 33살에 남미 파라과이에서 교민회 총무로 일했다. 한글학교를 만드는 데 도움을 주고, 물이 없는 주민들을 위해 우물을 파주기도 했다. 현지 사람들은 고마운 그를 ‘세뇨르 킴 후안’이라 불렀다. 이큰별 피디는 “파라과이에서 1년 정도 머물렀는데 이후 한국에 나타났다”고 말했다. 제주에서 장애인을 위한 모금운동을 하고, 구미에서는 골프장을 만들려는 업자에게 땅을 빼앗긴 농민들을 돕는 데 헌신했다. 과천에서는 사건이 조작되어 구속될 위기에 놓인 이의 진실을 밝혀주기도 했다. 이큰별 피디는 “고마워하는 분들이 너무 많아 그 사연을 다 담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홍길동처럼 나타나 도와주고 떠난 그를 사람들은 평생 잊지 못하고 마음에 품어뒀다. 6월 방송 당시 수많은 이들은 같은 질문을 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이들을 위해 왜 이렇게까지 할까.” 이번에 제보를 한 이들 역시 평생 그렇게 되뇌었다고 한다. 6월 방송에서 용현 선생은 삐뚤빼뚤한 글씨로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그 답의 의미를 이번 방송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이 피디는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는 등 어린 시절 이야기도 담았다. 그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어떤 삶을 살았기에 모든 것을 희생하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가장 이루고 싶었지만 이루지 못했던 어떤 사건에 얽힌 사연도 등장한다.
|
‘다 하지 못한 말 요한, 씨돌, 용현’의 한 장면. 에스비에스 제공
|
의인으로서 그의 삶이 더 먹먹한 이유는 희생에 대한 대가가 너무 가혹했기 때문이다. 그는 민주화운동을 하던 시절 당한 고문 후유증 등으로 뇌출혈을 앓았다. 이후 순간의 어지러움으로 나무에서 떨어져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 이런 모습이 6월 방송되며 또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도와주며 잘 살고 있을 줄 알았던 바람과 다른 현실에 많은 이들이 반성하며 눈물을 쏟았다.
방송 이후 응원의 목소리가 쏟아졌고 십시일반 후원금이 모여 용현 선생은 현재 충청도 한 대학 한방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이 피디는 “표정도 좋아졌고, 물론 저만 알아들을 수 있지만 6월 방송 때보다 말하는 것도 나아지셨다”고 말했다. 후원금은 이 피디와 선생의 오랜 지인과 수녀가 관리한다. 방송 직후 그의 인생을 담은 영화도 제작되고 있다.
이 피디는 “방송 이후 선생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며 아직 세상이 살 만하다는 걸 느꼈다. 응원해주시는 분들에게 소식을 알려드릴 수 없어 죄송했는데, 이제 안정을 찾아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됐다. 감사한 이야기로 따뜻한 연말을 보내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