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03 09:39
수정 : 2019.12.04 0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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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유적에서 나온 사람얼굴모양 토기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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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산 소월리 유적에서 출토
삼면에 돌아가며 얼굴 새긴 토기는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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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산 유적에서 나온 사람얼굴모양 토기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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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얼굴모양 토기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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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얼굴모양 토기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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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여년 전 한반도 남부에 살던 우리 조상들의 얼굴이 삼면에 새겨진 토기가 세상에 다시 나왔다.
화랑문화재연구원은 최근 발굴조사해온 경북 경산 소월리 유적에서 표면에 구멍을 뚫어 사람 얼굴 모양을 표현한 토기(투각인면문옹형토기) 1점을 발견했다고 3일 발표했다. 사람 얼굴 모양이 들어간 토기는 지금까지 경남 진주 중천리 유적, 전남 함평 금산리 방대형 고분 등에서 출토된 전례가 있다. 하지만 소월리 유적 출토품처럼 삼면에 돌아가며 얼굴 모양이 표현된 사례는 처음 나타난 것이다.
발견된 토기는 높이 28㎝정도로, 토기 윗부분 가운데 원통형으로 낮게 튀어나온 구멍을 뚫었다. 토기 옆면에는 같은 간격으로 원형 구멍을 뚫어 귀를 표현했다.
각 구멍 사이에 만들어진 세 개의 면에는 조금씩 다르게 표현한 얼굴 무늬를 각각 새겼는데, 각각 무표정하거나 심각한 듯하거나, 말하는 것 같은 인상을 자아낸다.
토기 표면에 사람 얼굴을 표현하면서 두 눈과 입은 기다란 타원형으로 밖에서 오려낸 흔적이 보인다. 콧구멍에 해당하는 2개의 작은 구멍은 안에서 밖으로 찔러 만들었다. 콧등을 중심으로 양쪽을 살짝 눌러서 콧등을 도드라지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사람 얼굴이 들어간 옹형토기와 함께 바닥을 의도적으로 떼어낸 시루도 출토됐는데, 시루의 몸통 중간 부분에 소뿔모양 손잡이 2개가 붙어있어, 두 토기를 서로 결합되어 썼을 것으로 보인다. 발굴한 토기의 제작 기법과 특징 등으로 미뤄 5세기 전반 또는 그 이전 시기에 만든 것이며, 당시 유적에서 베풀어진 일종의 의례 행위와 관련되었을 것으로 연구원 쪽은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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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구덩이에서 사람얼굴모양 토기가 시루와 함께 출토될 당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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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얼굴이 뚫음무늬로 들어간 옹형토기와 시루를 결합한 모습. 사람얼굴 토기는 시루의 위쪽을 덮는 뚜껑 구실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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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조사된 경산 소월리 유적 남반부를 위에서 내려다본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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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리 유적은 금호강 지류인 청통천 주변의 넓은 평야를 내려다볼 수 있는 나지막한 언덕에 자리한다. 지금까지 발굴조사를 통해 삼국∼통일신라 시대의 고상건물터(땅 위에 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 위에 바닥면을 만든 건물)와 구덩이(수혈), 토기가마, 고려·조선시대의 무덤 등이 다수 드러난 바 있다. 이번에 조사된 유적의 핵심은 고상건물터로, 구릉의 완만한 경사면에 밀집되어 있었다. 주변으로 물을 빼기 위한 도랑, 구덩이들과 울타리 등을 배치한 자취가 드러나 거주보다는 제례 등을 위한 특수 용도의 건물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사람 얼굴 모양 토기와 시루는 건물터 밀집구역 사이 한쪽의 빈 공간에 있는 지름 1.6m가량의 원형 구덩이를 내부조사하다 나온 것이다.
연구원 쪽은 “토기가 의례와 연관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유적의 중심을 이루는 주변 고상건물터도 당시의 의례와 관련된 시설의 일부였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면서 “현재 조사가 진행 중인 구덩이 내부에서는 토기 외에도 유기물, 목재 등이 추가로 확인돼 앞으로 분석을 통해 유적의 성격을 좀더 분명하게 밝힐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화랑문화재연구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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