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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9 09:24 수정 : 2019.11.29 09:46

덮개돌을 들어 올리자 드러난 63호분 묘실 내부. 도굴되지 않은 매장 당시의 유물 상태가 그대로 남아 있다. 바닥에 굽다리접시, 목긴항아리 등 다양한 종류의 ‘창녕식 토기’들과 금속제 도구 조각, 흙층이 뒤섞인 상태로 채워져 있다.

28일 덮개돌 개봉한 창녕 교동 63호분 발굴현장
돌 올리자 토기와 흙으로 채워진 무덤방
무덤 돌벽은 진흙 바르고 주칠 흔적 인상적
주칠 흔적은 귀신 쫓는 벽사 의미로 추정

덮개돌을 들어 올리자 드러난 63호분 묘실 내부. 도굴되지 않은 매장 당시의 유물 상태가 그대로 남아 있다. 바닥에 굽다리접시, 목긴항아리 등 다양한 종류의 ‘창녕식 토기’들과 금속제 도구 조각, 흙층이 뒤섞인 상태로 채워져 있다.

28일 오전 11시께 경남 창녕읍 교동고분군 63호분 발굴현장에서 크레인이 3톤 넘는 덮개돌을 들어 올리고 있다.

산 턱밑까지 올라온 대형 기중기가 가야인의 큰 무덤 위로 팔을 늘어뜨렸다. 그 팔은 곧장 무게가 각각 2.8톤과 3.8톤 나가는 길이 2m 넘는 덮개돌(개석) 2개를 훌쩍 들어 올렸다. 돌이 들리면서 무덤방의 석곽 사이에 발라놓은 진흙이 떨어져 나가고, 무덤방 구덩이가 훤히 드러났다. 100점은 족히 넘을 것 같은 가야 토기 항아리와 접시들이 잿빛 흙층과 드글드글하게 뒤얽힌 바닥 공간. 1500년 만에 빛을 본 가야 권력자의 무덤방 풍경이었다. 발굴단원들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4~5세기 경남 창녕 일대에 융성했던 소국 비화가야를 다스린 실력자의 무덤이 처음 열렸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28일 오전 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리 산5번지 교동 고분군에서 도굴되지 않은 채 발견된 대형 무덤인 63호분의 덮개돌 2개를 들어내고 길이 6.3m 묘실 안을 취재진과 학계 전문가들에게 공개했다.

덮개돌 7개 가운데 2개를 들어내면서 드러난 묘실은 5세기께 묻힌 비화가야 권력자의 껴묻거리(부장품)로 가득했다. 어두운 빛을 띠고 뚜껑에 굽 같은 꼭지가 달린 굽다리접시, 손잡이가 달린 깊은 그릇(발), 열 지어 점무늬를 찍은 목긴항아리(장경호) 등 특유의 창녕식 토기들이 바닥 공간을 겹겹이 채우고 있었다. 토기들 사이로 고대 동아시아에서 신분 높은 무덤 주인과 함께 묻곤 했던 농기구인 살포의 날 부분 조각이 녹슨 모습으로 나타났다. 철화살촉, 말갖춤 등으로 추정되는 금속제 유물 조각도 눈에 들어왔다. 덮개돌 안쪽으로는 토기가 없는 거무스름한 여백 공간도 보였다. “주인을 따라 죽은 순장자 2명 정도가 묻힌 구역으로 추정된다”고 정인태 학예연구사는 설명했다. 또 다른 관심거리인 무덤 주인 인골이 남았을지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이 쏟아졌다. “겹겹이 쌓인 토기와 흙층을 한동안 수습하고 물체질해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63호분 무덤 석곽을 덮고 있던 개석(덮개돌) 하나가 크레인에 매달려 들리는 순간. 아래 작은 돌들을 다듬어 쌓은 무덤방 양 벽과 토기로 가득 찬 바닥 부분이 보인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학예사가 덮개돌을 들어낸 뒤 드러난 무덤방 바닥을 보면서 설명하고 있다.

수화기 모양의 색다른 몸체 디자인으로 눈길을 사로잡은 비화가야 지역 특유의 등잔형 토기. 창녕 교동고분군에서만 유일하게 출토된 유물이다.

이날 또 다른 관심거리는 작고 각진 돌들을 쌓아 단단하게 축조한 묘실 사방벽이었다. 진흙을 전면에 펴 바른 뒤 빨간 주칠을 한 흔적이 남쪽 무덤 벽 전면에서 뚜렷하게 확인되고, 다른 벽에도 남아 있어 눈길을 끌었다. 개석을 들어내기 전 내시경을 넣어 사전 조사하는 작업에서도 확인된 주칠 흔적은 63호분의 발굴에서 가장 도드라진 특징으로 꼽힌다. 연구소 쪽은 고대인들이 삿된 귀신을 내쫓는 벽사의 의미로 무덤 벽 사방에 빨간 칠을 했던 것으로 추정했다. 정 연구사는 무덤방 벽에 숱하게 주칠한 흔적이 발견되는 고대 일본의 고분 얼개와도 연관성이 있을 것으로 해석했다.

발굴현장 아래 마련된 천막 설명회장의 임시 진열대에는 굽다리접시, 장경호, 상형토기 따위의 출토 토기 수십점이 놓였다. 63호분 인근의 62호분에서 출토된 등잔형 상형토기가 단연 압권이었다. 수화기 혹은 천칭 모양의 몸체에 2개의 등잔을 균형감 있게 얹은 듯한 이 토기는 여태껏 나타난 적 없는 비화가야 장인의 독창적인 디자인 감각을 뽐냈다. 묘실 바닥에 두껍게 겹을 이루어 쌓인 토기들과 흙층을 걷어내면 인골과 금관, 귀고리, 말갖춤 같은 중요 유물이 다수 출현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연구소 쪽은 전망했다.

양숙자 학예실장은 “창녕지역 대형 가야 고분이 도굴되지 않고 매장 당시의 상황을 유지한 채 발견된 것은 전례가 없어 고대 비화가야인의 장묘의례와 생활사를 복원하는 데 소중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두어 달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63호분 무덤방 수습작업에 힘을 쏟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창녕/글 ·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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