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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6 17:20 수정 : 2019.11.27 17:45

문화창작집단 날 제공

2010년 초연됐던 시즌1 이어
이번엔 전태일재단 도움 받아

노동문제 의식 국제적으로 확장
최철 연출 “한겨레 기사로 도움”

다소 무거운 주제 힘 빼고 코믹 더해
영화 ‘파업전야’ 김동범 배우도 출연
“세대 맞춘 다양한 노동극 만들어야

문화창작집단 날 제공
지난 6월 삼성전자의 주요 생산기지인 아시아 지역 노동자들의 불편한 현실을 들춘 <한겨레> 보도의 파장은 컸다. 인도 노이다 삼성공장에선 휴대폰을 13초당 1대씩, 12시간 내내 조립해야 했고, 베트남 타이응우옌에선 22살 여성이 일한 지 4개월 만에 쓰러져 숨졌다. 주당 60~70시간, 발암물질인 휘발성 유기화합물 노출 가능성…. 세계 곳곳을 누비는 전자제품은 노동자의 목숨과 맞바꾼 것일지도 모른다.

기사로 접했던 이 불편한 진실이 무대에서 또 한번 들춰지며 우리의 폐부를 찌르고 있다. 베트남 삼성공장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반도체소녀 시즌2>를 통해서다. 새달 1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기념관에서 무료 공연 중인 이 작품은 2010년 초연했다. 초연 때는 삼성 반도체공장 백혈병 피해자인 고 황유미씨의 사연을 모티브로 비정규직 노동자의 모습을 담았다. 2014년 재공연을 거쳐 올해 선보인 시즌2는 ‘삼성’ ‘반도체’ ‘비정규직 노동자’ 등의 열쇳말은 그대로 품었지만 내용은 바뀌었다. 문화창작집단 날 최철 연출은 “삼성은 다국적 기업이고, 공장의 외주화가 돼 있다는 점에서 베트남 공장을 중심에 뒀다. 노동 문제는 국제적인 화두라고 생각해 문제의식을 넓혔다”고 했다. 그는 “<한겨레> 기사가 작품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연극은 친척이 모여 사는 가족에게 베트남에서 편지 한 통이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그 편지를 전하러 온 우체부를 비롯해 택배노동자, 배달기사, 간호사, 시간강사 등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도 과거보다 더 주요하게 담아낸다. 노동자의 상징인 전태일 기념관에서 공연하고, 삼성을 상징적으로 내세운다는 점에서 무거운 현실 고발 작품처럼 생각될 수 있지만, <반도체소녀 시즌2>는 비교적 쉽고 편하게 볼 수 있게 힘을 뺐다. 초반 베트남 공장 노동자의 이야기는 형상화해서 보여주고, 비정규직 노동자 이야기에는 코미디도 가미했다. 최철 연출은 “주제가 무겁다 보니 관객이 거부감을 느끼고 어렵게 생각할 수도 있어 쉽고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노동 영화 <파업전야>에 이어 노동을 소재 삼은 연극에 출연한 김동범 배우. 문화창작집단 날 제공
힘을 뺀 연출 의도와 달리 ‘노동’이란 주제 자체만으로 연극의 무게감은 어쩔 수 없다. 2010년 초연한 공연이 9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확장된 문제의식을 담고 무대에 올려졌다는 점은 달라진 게 없는 노동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는 1990년 한국 최초의 노동 영화인 <파업전야>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 김동범도 출연한다. <파업전야>는 “노동 환경이 달라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출연했다”는데 30년이 지난 지금도 노동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추는 작품이 계속 만들어진다는 점이 착잡하지는 않을까. 그는 “노동자들의 시간과 노력이 충분히 훌륭한 결과물을 낳아도 자본의 가치에 견줘 그 대가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게 안타깝다. 바뀔 수 있을지 회의적인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 최철 연출은 “지금의 노동 환경은 나아진 게 아니라 더 은폐되고 지능화됐다”고 지적했다.

이번에는 전태일재단의 지원을 받았지만, 노동극의 제작 환경도 현실의 노동자만큼 열악하다. 문제의식에는 공감하면서도 관심은 적다. 영화 <파업전야>도 지난 5월 30년 만에 정식 극장 개봉 소식에 화제를 모았지만, 관람객은 2000명 남짓에 그쳤다. 그런데도 예술이 사회를 바꾼다는 생각으로 노동의 민낯을 비추는 작품이 꾸준히 제작되는 것은 박수 받을 일이다. 김동범 배우는 “최근엔 노동이 대중매체의 소재가 되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요즘 세대의 문화적 취향에 맞는 연구와 개발이 이뤄져 다양한 노동극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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