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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06 09:03 수정 : 2019.11.06 19:42

청계고분 2호 돌덧널에서 나온 수레바퀴 장식 토기의 조각들. 호남권에서는 처음 출토된 유물로, 경남 함안 아라가야 고분 출토품과 모양새가 같다.

호남권 최대 가야무덤인 남원 청계고분
함안 아라가야 특유의 수레바퀴 토기 첫 출현
왜계 나무빗도 호남 가야무덤서 처음 출토
가야 소국, 중국, 왜 등과 사통팔달 교류 입증
호남 동부 ‘글로벌 가야문화’ 자취 드러나

청계고분 2호 돌덧널에서 나온 수레바퀴 장식 토기의 조각들. 호남권에서는 처음 출토된 유물로, 경남 함안 아라가야 고분 출토품과 모양새가 같다.

함안 말이산 4호분에서 나온 수레바퀴 장식 토기. 청계 고분에서 출토된 수레바퀴 조각과 모양새가 같다.

1600~1500년전 전라도 동부 산간 지대에 살던 가야인들은 나름의 세계인들이었다. 당대에 다른 가야소국은 물론 중국, 왜의 교역품까지 수입하면서 글로벌한 생활 문화를 누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지난 5월부터 지난달까지 발굴조사한 전북 남원시 아면 청계리 고분군에대한 발굴조사 결과를 5일 내놓았다. 연구소는 지리산 언저리 운봉 고원에 자리한 이 고분에서 경남 함안의 아라가야 영역권에서만 출토됐던 수레바퀴 모양의 토기 조각과 고대 일본의 생활유물인 나무빗이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전라도 지역의 가야 고분에서 동남쪽으로 수백 km 떨어진 함안 지역의 아라가야계 토기와 바다 건너 왜의 유물이 나온 것은 처음이어서 학계의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조사중인 청계 고분. 표면에 즙석이 깔려있고, 고분 구릉 여기저기에 돌덧널 무덤의 자취가 보인다.

청계고분 2호 돌덧널에서 출토된 철기류. 관못, 꺽쇠 등이 보인다.

연구소 쪽이 낸 자료를 보면, 청계 고분은 현재까지 발굴된 호남권 가야계 고총고분(높은 봉분을 지닌 옛무덤)들 가운데 축조시기가 가장 이른 5세기께이며, 규모(길이 31m, 너비 20m, 잔존높이 5m)가 가장 큰 고총으로 파악됐다. 한 묘역에 3기의 돌넛덜 무덤을 만든 것이 특징으로, 산 능선 정상부를 깎아내어 무덤 자리를 닦은 뒤, 3기의 돌덧널(석곽)을 ‘T(티)’자 모양으로 쌓아 성토한 뒤 그 위에 돌(즙석)들을 덮는 독특한 축조기법을 썼다. 가장 큰 관심을 모은 수레바퀴 모양 토기 조각은 2호 석곽에서 나왔다. 경남 함안의 말이산 4호분과 경남 의령 대의면에서 출토됐다고 전하는 아라가야 특유의 장식토기 수레바퀴와 모양새가 일치한다. 수레바퀴 장식토기는 차륜(車輪)장식토기라고도 하는데, 굽다리 접시 대각 위에 ‘U(유)’자 모양으로 뿔잔 2개가 얹혀있고 좌우에 흙으로 만든 수레바퀴가 부착된 것이 특징이다.

함안, 의령 외의 지역에서는 출토 사례가 없었다는 점에서 이 지역에 토기가 들어온 경위가 주목된다.

전형적인 왜계 유물인 작은 나무 빗들이 1호 석곽에서 나온 것도 특기할 만하다. 수즐(樹櫛)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왜계 나무빗은 묶은 머리를 고정시키기 위한 기구로, 일본 나나마와리카가미즈카 고분에서 나온 무돌기형 나무빗과 형태가 똑같다. 일본 열도에서는 야요이 시대 유적부터 많이 확인되며, 국내에서도 부산, 김해, 고흥 등지의 삼국 시대 고분에서 일부 유물들이 출토된 사례가 보고됐지만, 호남권의 가야계 고분에서는 처음 출토됐다. 이밖에 1, 2호 돌덧널 안에서는 다량의 꺽쇠와 관못 같은 철기류들도 세상에 나왔다.

청계 고분 1호 돌덧널에서 나온 왜계 유물인 나무빗(수즐). 일본 열도의 고대 무덤에서 주로 나오는 전형적인 왜 계통 유물이다. 호남권 내륙의 가야 고분에서 왜계 유물이 나온 것은 청계 고분이 처음이다.

이번 발굴의 성과물들은 지리산 기슭의 산간 고원지대에 살던 가야인들이 글로벌한 성격의 문화를 누리면서 주변 가야 소국들과 교류했음을 입증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아라가야계의 수레바퀴 토기와 왜계 나무빗은 호남권 동부의 가야인들이 다른 가야소국들은 물론 중국, 왜 등과 대외 교역과 문화교류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당대 국제적인 문화 지형을 형성했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2000년대 들어 발굴이 본격화한 전라도 동부 산악지대의 가야유적들은 그동안 인근 경북 고령 일대의 대가야권에 종속된 변방이라는 게 통설이었다. 그러나 지난 수년간 남원, 장수 일대의 두락리 고분, 월산리 고분 등에서 중국계 자기와 청동공예품이 출토됐고, 이번 청계 고분 발굴조사에서도 아라가야계 토기와 왜계 유물이 나오면서 이 지역 가야인들이 활발한 대외 교류로 국제성 뚜렷한 독자 문화를 형성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나오고 있다.성토, 매장시설 등 고분 축조기법 면에서는 토착적 요소가, 아라가야·대가야·왜계· 중국계가 섞인 출토유물 등에서는 외래적 요소가 다분해 운봉고원 고대 정치체의 역동성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리산 기슭의 남원 청계 고분 일대를 멀리서 조망한 광경.

전용호 나주연구소 학예연구관은 “다른 가야소국은 물론 중국, 왜와 열린 교류를 지속하면서 색다른 정체성을 지니게 된 별개의 가야 세력이 전라도 동부 산간에서 융성했을 가능성이 커졌다”고 밝혔다. 연구소는 7일 오후 2시 현장에서 공개설명회를 열 예정이다.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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