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07 17:33
수정 : 2019.10.08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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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이게 마지막이야>. 극단 전화벨이 울린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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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이게 마지막이야’
세계 최장 기록으로 남은
파인텍 고공농성 소재로 삼아
13일까지 연우소극장서 초연
“근로기준법 만이라도 지켜라”
노동자들 최소한의 요구 되새겨
“보통 사람들이 겪는 극한 상황
고공에 올라가는 것과 대비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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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이게 마지막이야>. 극단 전화벨이 울린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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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악한 노동 환경에 처한 노동자들은 땅에서 더는 할 게 없을 때 하늘 위 낭떠러지에 오른다. 송전탑, 망루, 전광판, 광고탑, 굴뚝, 첨탑, 크레인, 교각 위에서 펼치는 ‘고공농성’이다. 목숨을 걸 만큼 절박한 노동자의 마음은 줄 하나로 연결된 땅 아래로 고스란히 전달된다.
연극 <이게 마지막이야>는 세계 최장 고공농성 기록을 두번 갈아치운 ‘파인텍 고공농성’을 소재로 삼았다. 사쪽의 정리해고와 공장 가동 중단으로 촉발된 파인텍 투쟁은 2015년 5월에 시작돼 408일 만에 끝났으나 공장 정상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2017년 11월에 두번째 고공농성이 시작됐고, 426일 만인 올해 1월 사쪽과 합의해 농성이 끝났다.
연극은 땅 아래서 현장을 지켜봤던 연극인들이 기막힌 이 투쟁을 기록하고자 만들었다. 이양구 연출, 이연주 작가, 정소은 피디 세 사람은 파인텍만의 이야기가 아닌 고공농성을 모티브로 지난 3월부터 연극을 준비했다. 이들은 연극에 앞서 지인들과 ‘마음은 굴뚝같지만’이라는 팀을 꾸려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굴뚝에 손편지 보내기’ ‘토크콘서트’ 등을 하기도 했다.
이연주 작가는 <한겨레>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파인텍 투쟁이 장기간 이어질 동안 언론이나 사람들은 고공농성 기네스 기록을 새로 썼다고 할 때나 관심을 보였다”며 “고공농성을 올려다보는 거리만큼 노동 문제를 보는 거리가 있다고 느껴져 특정 노동 현장에 대한 연민이나 연대의식에만 머물지 않고 개개인의 일상과 연결 지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했다.
주인공은 고공농성자의 아내이자 편의점 점원인 정화다. 굴뚝에서 내려온 남편이 방문을 잠그고 나오지 않으면서 정화는 혼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다. 점주는 그에게 원치도 않았던 매니저 직급을 부여하며 더 많은 일을 시키고, 전임자였던 아르바이트생 보람은 임금체불 내역이 담긴 문서를 점주에게 전해달라고 하지만 정화는 쉽게 건네지 못한다. 남편 동료였던 공장 노동자 명호는 갑자기 남편이 빌려간 돈을 갚아달라며 찾아오고, 아이들 학습지 선생인 선영도 정화에게 밀린 대금을 재촉한다. 이들은 서로에게 “우리(남편과 정화)를 다시 찾아오지 않겠다는 약속” “임금체불 문서를 전달해주기로 한 약속” “밀린 대금을 주기로 한 약속” 등 ‘약속을 지키라’고 강조한다. 어긋난 약속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인데 회사가 근로기준법을 지켰다면 정화의 남편은 굴뚝에 안 올라갔을 거고, 정화가 학습지 대금을 제때 주겠다는 약속을 지켰다면 선영이 수금을 못 해 일자리를 잃을 위험에 처하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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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이게 마지막이야>. 극단 전화벨이 울린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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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사건을 통해 정화를 비롯한 인물들은 자신들의 처지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삶의 조건은 각기 달라도 노동하는 각자의 자리는 언제든 고공처럼 위태로워질 수 있다. 이양구 연출은 “일상생활에서 노동권 보장을 못 받는 보통사람들의 극한의 상황을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것과 대비해봤다”며 “고공은 목숨 걸고 올라가는 거라 나와는 다른 세계의 일 같겠지만 적은 돈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도 있을 만큼 각자의 노동 현장엔 고공 올라가는 사람만큼의 절박함이 있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연극은 픽션임에도 논픽션처럼 아리다. “사람들은 말라가는데 회사는 만나줄 생각도 없고, 그냥 빨리 (합의해) 끝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는 명호의 대사나 “노동자, 일자리 다 지킬 것 같더니 사람 하나 못 지켰잖아”라고 노동조합을 원망하는 정화의 대사는 노동 현장을 아는 이들에겐 비수처럼 박혀온다. “우리의 싸움이 각자의 싸움이자 모두의 싸움”이라고 말하는 연극은 더는 노동자들이 연극 제목처럼 “이게 마지막이야”라고 말하며 굴뚝 위로 올라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관객들에게 전한다.
내년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라고 외쳤던 전태일 열사의 50주기다. 연극은 극 중에서 노동의 현장인 편의점에 이를 다시 새긴다. “근로기준법‘은’ 지켜라.” 이것은 극장 밖에서 노동자들이 외치는 최소한의 요구다. 삼성 해고 노동자 김용희씨 등이 오늘도 고공에서 투쟁 중이다.
연극은 오는 13일까지 대학로 연우소극장에서 하며 티켓 값은 2만원이다. 아르바이트 노동자와 장기 투쟁 노동자는 무료로 볼 수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예술인에게는 50% 할인이 적용된다.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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