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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07 13:53 수정 : 2019.10.07 21:55

화협옹주의 무덤 출토 화장품 단지 내용물에서 나온 황개미의 머리 부분. 현미경으로 확대해 본 모습이다. 황개미를 화장품이나 미용재료로 썼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도세자 친누나 화협옹주 무덤서 나온 화장품단지

내용물 분석했더니 수천마리 황개미 유체 조각들
식초에 담가 피부치료 미용에 쓴 것으로 추정

다른 용기에선 현재의 크림·파운데이션 성분도
16일 ‘조선왕실 화장품…’ 심포지엄 분석내용 발표

화협옹주의 무덤 출토 화장품 단지 내용물에서 나온 황개미의 머리 부분. 현미경으로 확대해 본 모습이다. 황개미를 화장품이나 미용재료로 썼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미경 분석결과 화장품 단지 안의 액체 속에서 확인된 개미 유체들. 흩어진 다리 부분들이다.
“화장품 단지 속에 든 건 모두 황개미들입니다. 수천여 마리나 됩니다.”

2017년 3월 국립고궁박물관 유물과학과 연구진은 이원훈 경상대 식물의학과 교수한테서 한 유물의 분석 결과를 통보받고 깜짝 놀랐다. 손바닥만한 18세기 조선 왕녀의 화장품 단지에서 나온 미지의 액체와 그 안에 담긴 거뭇한 덩어리들 정체를 몰라 분석을 의뢰했는데, 이 교수가 현미경으로 확대관찰한 결과 수천마리 황개미 유체의 조각들이 확인된 것이다.

식초로 추정되는 액체 내용물(오른쪽 병)에 황개미 유체가 가득 들어있는 것으로 확인된 옹주묘 출토 화장품 단지(왼쪽). 단지는 광주 왕실 분원에서 만든 청화백자 칠보무늬 팔각항아리다. 지금 국립고궁박물관 지하 1층 ‘화협공주의 얼굴 단장’ 전시실에서 실물을 볼 수 있다.
문제의 화장품 단지는 경기도 광주 왕실분원 가마에서 만든 푸른빛 은은한 청화백자 팔각항아리다. 조선 21대 임금 영조(재위 1724~1776)의 일곱번째 딸이자 사도세자(1735~1762)의 친누나였던 화협옹주(1733~1752)가 생전 썼던 유물이다. 2016년 경기도 남양주 삼패동 화협옹주의 초장지(처음 썼다가 나중에 이장하면서 남은 무덤)를 발굴할 당시 출토된 10점의 청화백자합 화장품 단지들 가운데 일부였다.

박물관 연구진은 단지 속 액체에서 매우 강한 산도의 아세트산 성분이 검출됐다는 점을 주목했다. 식초액에다 머리와 가슴, 몸통, 더듬이 등 잘게 분리된 개미 유체를 담궈 피부질환을 치료하거나 미용을 위한 약제 용도로 썼을 것이란 추정 결론을 냈다. 김효윤 유물과학과 연구사는 “2017년 1월 단지 안 내용물을 처음 관찰했을 때는 곡물씨앗으로 짐작했다. 그러나 농촌진흥청 연구진에게 내용물을 보이고 자문한 결과 ‘씨앗은 전혀 아니고 곤충의 유체인 것 같다’는 의견을 받았다”면서 “곤충 전문가인 이원훈 교수에게 다시 분석을 요청한 결과 개미라는 사실을 확정하게 됐다”고 말했다.

왜 황개미를 화장품 미용 재료로 썼을까. 그건 미스터리다. 개미가 몸에서 내뿜는 강산성 물질인 개미산은 오늘날 친환경 방충약제 등으로 쓰이지만, 미용재료는 아니다. 단지 속 내용물이 개미로 확정된 뒤 2년 넘게 후속연구를 진행한 정용재 한국전통문화대 문화재수리기술학과 교수는 “왕실 여인들이 황개미를 미용 재료로 활용한 이유를 명확하게 밝힐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개미를 약이나 식용으로 썼다는 과거의 기록이나 사례는 적지않게 찾았지만 식초에 담가 화장품으로 썼다는 기록은 전례를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황개미를 직접 잡아 유물 단지 속의 액상 내용물과 비슷한 물질을 분비하는지도 살폈으나 뚜렷한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고도 했다.

박물관 쪽은 개미 단지 외에도 옹주묘에서 나온 다른 화장품 단지 내용물들도 주사현미경, 엑스선·적외선 등으로 분석해 의미심장한 연구성과를 내놓았다. 고운 입자의 흙을 개어 얼굴에 지금처럼 팩을 하는 효과를 내는 미용 재료들, 밀랍과 유기물을 섞은 일종의 크림, 오늘날의 립스틱에 해당하는 진사가루, 탄산납과 활석이 혼합된 파운데이션 재료, 기름과 섞는 마사지 재료 등이 확인됐다. 얼굴을 창백하게 하는 미백효과를 지녔으나 오늘날은 독성이 심해 사용하지 않는 납덩어리를 비롯해, 상당수 화장품 재료들이 인체에 유해한 탄산납과 수은 성분을 함유했다는 분석 결과도 나와 주목된다. 화장품을 담은 도자기 용기의 경우 황개미 유체들을 담은 단지 한점을 빼놓고는 모두 중국 경덕진 가마와 일본 아리타 가마에서 만든 화려하고 깔끔한 문양의 수입산 청화자기로 드러났다. 조선후기 궁중여인들이 외국산 화장품 용기를 선호했다고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화협옹주는 영조와 후궁 영빈 이씨(1696~1764) 사이에서 태어났다. 11살 때인 1744년 옹주 칭호를 받고, 그해 영의정 신만의 아들 신광수와 혼인했으나 자손을 낳지 못하고 19살에 홍역으로 요절한 비운의 왕녀다. 옹주는 뒤주에 갇혀죽은 사도세자의 바로 위 친누나였다.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을 보면, 용모가 뛰어나고 효심도 지극했으나 기대했던 아들 대신 계속 딸이 태어나는데 질린 영조한테서 사도세자와 더불어 냉대를 받았다. 그래서인지 동병상련의 처지인 세자와 사이가 더욱 각별했다고 전해진다.

일부 화장품단지 안에서 확인된 크림 종류 추정 화장 물질. 국립고궁박물관의 김효윤 연구사는 "밀랍과 기름에 유기물을 섞어 크림처럼 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화장품 용기가 나온 옹주의 남양주 초장지는 후대 무덤이 이장된 뒤로 잊혀졌다. 2015년 8월 말 모양의 나무 조각물 파편과 석함 1개가 우연히 출토되면서 다시 세상에 알려졌다. 그뒤 발굴에서 무덤을 둘러싼 단단한 석회 회곽 벽에 ‘유명조선화협옹주인좌’(有名朝鮮和協翁主寅坐)라는 묘지석 글자들이 확인되면서 옹주의 초장지임이 드러났다. 주민들 신고로 무덤 근처에서 지석도 확인됐는데, 영조가 글귀를 지어 새기고 먹으로 칠한 ‘어제화협옹주묘지’(御製和協翁主墓誌)란 명문이 있었다. 앞면, 뒷면, 옆면에 394개의 글자를 새긴 명문 말미에는 ‘한 줄 기록하는데 눈물 열줄기가 흘러내리는구나’란 구절이 적혀 가버린 딸에 대한 아비의 슬픔을 절절하게 후대인들에게 전해주었다.

2016년 12월 공개 당시 화협옹주의 초장지 무덤을 가까이서 내려다본 모습. 단단한 회곽으로 묘실을 감싼 얼개다. 회곽 옆에는 무덤주인이 화협옹주임을 알려주는 ‘유명조선화협옹주인좌’(有名朝鮮和協翁主寅坐)란 묘지석 글자들이 보인다.

영조가 지어 화협옹주의 무덤에 묻은 묘지문. 말미에 새긴 ‘한 줄 기록하는데 눈물 열줄기가 흘러내리는구나’란 구절 등에서 딸을 먼저 저승에 보내는 아비의 심경을 읽을 수 있다. 지금 국립고궁박물관 지하 1층 ‘화협공주의 얼굴 단장’ 전에서 실물을 볼 수 있다.
옹주묘 출토 화장품 단지와 내용물 실물, 영조가 새긴 무덤 지석 등은 지난 1일부터 국립고궁박물관 지하 1층 전시실에 나와있다. 간이 기획전 얼개로 마련된 ‘화협옹주의 얼굴 단장’전(31일까지)에서 설명, 영상과 함께 볼 수 있다. 또, 김효윤 연구사와 정용재 교수는 옹주묘 출토 화장품들의 세부적인 분석 성과를 모아 16일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열리는 ‘18세기 조선왕실 화장품과 화장문화’학술대회에 발표할 예정이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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