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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07 06:00 수정 : 2019.10.08 11:20

임하룡은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하나하나 실현해 나가고 있다. 지난해 오랜 꿈이었던 그림을 시작했고 지난 9월 첫 개인 전시회도 열었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는 그는 “그림이 에너지가 된다”고 말했다. 사진 남지은 기자

[월간 쉼표 토크⑤-임하룡과 그림]

누구한테 배운 적 한번 없는데
밤낮 없이 그림그리기 1년,
‘눈’을 형상화 개인전시회까지

처음엔 이걸 해도 되나 싶고
노안, 안구건조증에 팔도 저리고…
그리는 동안 행복해, 평생 친구로

코미디 정상에서 배우로 가수로 도전 계속
다음 ‘버킷’에 채울 건 뮤지컬 배우
정성화처럼 노래 안돼…연극은 될까
하~~ 1주일만 젊었어도…

임하룡은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하나하나 실현해 나가고 있다. 지난해 오랜 꿈이었던 그림을 시작했고 지난 9월 첫 개인 전시회도 열었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는 그는 “그림이 에너지가 된다”고 말했다. 사진 남지은 기자

당신의 오늘은 어떤가요? 몸과 마음의 지침을 당연하다 여기지는 않나요? ‘월간 쉼표토크’는 매달 첫주 월요일, 저마다의 방식으로 휴식과 위로를 찾는 문화예술인들을 소개합니다. 화려한 모습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는 평범한 행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귀 기울여 보기를 권합니다.

‘임하룡.’

포털 사이트에서 이름 세 글자를 치면 놀라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20년 전 사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는 외모다. 1952년생, 60살을 훌쩍 넘긴 그의 머리카락은 20대 뺨치게 풍성하고 검다. 배가 살짝 나온 게 변화일까. “얼굴 못생긴 것도 유전이지만 숱 많은 것도 유전이에요.(웃음) 중고등학교 때는 ‘노안’으로 유명했는데 나이 들어 살이 찌니 주름이 펴져서인가 다들 더 젊어졌다고들 하네요.” 노년이 없는 것 같은 임하룡의 인생은 그가 지난해 데뷔 40돌을 맞아 발표한 곡 ‘나는야 젊은 오빠’ 속 노랫말 ‘아직 이팔청춘이야’처럼 아직도 이팔청춘이다.

젊음의 비결이 오직 유전이라면, 그를 추켜세울 일은 아니다. 지지 않는 이팔청춘의 삶을 사는 것은 나이에, 세월에 무력해지지 않으려는 그의 도전정신이 팔딱였기 때문이다. 조각 등 여러 도전을 끊임없이 해왔는데 그림도 그중 하나다. 그는 지난 9월 자신의 이름을 건 첫 개인 전시회를 열었다.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시선’을 주제로 그림 40점을 전시했다. 2018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11개월 만이다. “딱 9개월 준비했다”는데 해바라기에 눈이 달려 있는 등 ‘눈’을 주제로 그린 그림들은 독특한 느낌을 자아낸다. 많은 이가 전시장을 찾았고 반응이 꽤 좋았다. 그는 “시선 받기를 원하지만 또 부담스럽기도 한, 사람만이 갖고 있는 그런 마음을 형상화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눈은 임하룡의 그림을 관통하는 주제가 될 거예요.”

놀라운 것은 한번도 그림을 배운 적이 없다는 점이다. “어렸을 때 화가를 꿈꾸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준비하거나 했던 건 아니에요. 손재주가 있었는지 배우지도 않았는데 곧잘 그려지더라고요.”(웃음)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수십년간 시도하지 않았던 그 꿈을 곧 70살인 이제야 굳이 실현하는 걸까. 이 질문에 돌아온 대답이 바로 임하룡을 ‘쉼표, 토크’에 초대한 이유다.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어요.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면서 못다 한 버킷리스트를 실현해보고 싶어요. 더 늦기 전에.” 9월 전시회장과 지난 2일 서울 강남의 한 찻집에서 만난 임하룡의 눈은 청춘의 그것처럼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남지은 기자
처음에는 도전 그 자체가 겁이 났다고 한다. “시작 자체를 하는 게 자신감도 없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도 많았어요. 내가 이걸 해도 될까 싶고. 하정우도 그림을 10년은 그렸다잖아요. 그런데 짧은 시간에 전시회까지 하게 되니 겁이 났죠. 그냥 모험을 해보자고 했어요. 해버릇해야 자신감이 생기지 않나 싶어서.” “뭘 이 나이에” “굳이”라며 그보다 젊은 세대도 새로운 도전을 꺼리는 무기력한 시대, 담담한 그의 한마디가 왠지 모를 울림을 선사한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몸은 이팔청춘이 아니다. 60대 어른이 매일 작업실을 오가며 꼼짝 않고 손에서 붓을 놓지 않는 생활이 편했을 리 만무하다. 전시회 관계자조차 “매일 새벽까지 그림을 그리시는 등 너무 열정적으로 작품에 임하셔서 건강을 해칠까 걱정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임하룡은 “팔이 가끔 저려오기도 하고, 지금은 안구건조증에 노안에 눈도 안 좋다”며 웃었다. 인터뷰 중간 간혹 눈물을 닦았다. “이젠 슬픈 역할만 해야 할까 봐요. 자꾸 눈물이 나.”(웃음) 붓을 오래 잡고 있어서 손이 저려오면 동네를 걸었다.

그럼에도 그림을 평생 하고 싶은 건, 그림을 그리는 순간이 행복하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림을 시작하기 전에 전국 투어를 하려고 준비하던 공연이 무산됐어요. 어머니가 많이 아프시기도 했고. 여러가지가 겹치면서 굉장히 힘들었는데 하루에 몇시간씩 그림만 그리고 있으니까 그 시간이 훌쩍 지나갔어요.” 치유의 효과도 있었나 보다. 그래서 그런지 선보인 작품의 대다수가 ‘황혼’ ‘마지막 잎새’ 등 인생을 성찰하는 내용이다. “그림은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게 좋아요. 길 가다가 만나는 나무, 하늘 모든 것을 보고 자유롭게 상상하며 내 나름의 색채로 표현할 수 있으니.”

늙지 않는 임하룡 - 도전하는 삶이 그를 젊게 만드는 걸까. 2000년, 2002년, 2006년(왼쪽부터) 세월이 흐를수록 어째 더 젊어진다. <한겨레> 자료 사진
임하룡은 코미디에 대해 얘기할 때 죽지 않은 개그감을 뽐내던 것과 달리 그림에 대해서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시작하는 단계여서 조심스러운 게 많은 듯했다. 하지만 담담하게 건네는 몇마디로 되레 많은 말을 했다. 내려놓기, 치유 등등. 임하룡의 도전은 쉴 틈 없이 일하다 중심부에서 벗어난 어른의 마음이 느껴지게도 한다. 그는 오래 품었던 버킷리스트를 시작한 이유를 얘기하면서 이런 말도 슬쩍 내뱉었다. “시간이 많으니까 이제는.”

무대 구분 없는 연기자를 꿈꾸던 그는 연극으로 출발해 1978년 라디오, 1981년 티브이에 데뷔한 이후 쉴 틈 없이 내달렸다. 친근하면서도 극의 중심을 잡는 믿음직한 캐릭터로 데뷔하자마자 시대를 풍미했다. 심형래, 이홍렬, 김정식 등과 호흡을 맞춰 ‘도시의 천사들’ ‘변방의 북소리’ 등에 출연하며 콤비 개그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1986년 백상예술대상 ‘남자예능상’부터 1989년, 1991년 한국방송 코미디대상 ‘대상’ 등을 받으며 코미디언 거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하지만 오랜 꿈인 버킷리스트를 시도할 엄두조차 못 냈을 정도로 바쁘게 살던 그도 나이 들며 자연스레 ‘변방’으로 넘어갔다. 2000년 <개그콘서트> ‘봉숭아 학당’을 마지막으로 코미디 프로그램과의 인연이 없었다. “젊은 친구들에게는 아무래도 선배들이 부담스럽겠죠.(웃음) 이제 나도 나이를 먹는구나, 만감은 교차했지만 후배들을 위해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다른 코미디언들과 달리 임하룡이 이후 내리막길을 걷지 않고 지금까지도 존경받는 배우로 올라온 데는 다시 돌아가 역시 그의 도전 정신이 있었다. 그는 좌절하지 않고 신인 같은 마음으로 다시 일어섰다. 코미디가 아닌 영화에서 연기를 이어갔다. 2004년 <아라한 장풍 대작전> <범죄의 재구성> 등에서 작은 역할부터 시작해 영화·드라마 50여편에 출연하면서 자신의 길을 스스로 닦았다. 결국 2005년 <웰컴 투 동막골>에 인민군 하사 역으로 출연해 그해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올해 종영한 드라마 <구해줘2>(오시엔)에서도 그는 사이비 종교에 서서히 빠져드는 소시민들의 변화를 소름 돋게 표현해 냈다. “다른 분야인데 당연히 신인 같은 자세로 일해야 한다”는 그는 행복한 인생을 위해서는 내려놓는 법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나이 듦과 죽음 등도 이제는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하루하루 아쉽지 않게 즐기며 사는 인생이 중요하니까.”

그의 도전 정신은 그림으로 끝이 아니다. 그의 버킷리스트에는 뮤지컬 배우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정성화처럼 뮤지컬 기법으로 노래를 잘 부르는 게 안 되더라”며 웃었다. 포기하는 대신 연극으로 꿈을 살짝 틀었고, 멋진 무대에서 제대로 된 연기를 선보일 날을 기다리고 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잭 니컬슨 역을 해보는 것도 배우로서의 꿈이죠.” “1주일만 젊었어도” “이 나이에 내가 하리”(임하룡의 유행어)라고 외치던 그는 이제 “이 나이에 내가 한다”고 말하고 있다.

글·사진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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