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9.29 11:39
수정 : 2019.09.30 10:37
|
‘드라마 스페셜’이 27일부터 10주 동안 금요일 밤마다 찾아온다. 한국방송 제공
|
미니시리즈보다 시청률·광고수익 낮지만
소재·형식 다양한 시도 가능한 ‘용광로’
금 밤 11시 황금시간대 방영으로 눈길
|
‘드라마 스페셜’이 27일부터 10주 동안 금요일 밤마다 찾아온다. 한국방송 제공
|
“단막극을 쓴 경험이 작가로서 나를 단련시켰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JTBC)로 계급과 교육 문제를 날카롭게 제기했던 유현미 작가의 단막극 예찬론이다. 그는 2001년 <오후 3시의 사랑>으로 <한국방송>(KBS) 극본 공모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이후 <오발탄> <그녀가 사랑하다 지쳐> <마누라가 수상해> <고맙다, 아들아> 등 단막극 20편을 집필했다. “단막극은 인생의 한 단면을 집중적으로 파고들기 때문에 (필력을) 단련할 수 있다”는 그의 말대로라면 <스카이 캐슬>은 단막극이 있어서 가능했다. 유현미 작가 외에도 방영 중인 <동백꽃 필 무렵>(한국방송2)의 임상춘 작가와 <정도전>의 정현민 작가, <거짓말>의 노희경 작가 등 유명 작가들은 대부분 단막극을 거쳤다.
한동안 텔레비전에서 뜸했던 단막극이 27일부터 다시 찾아온다. <한국방송>의 대표 단막극 <드라마 스페셜>(한국방송2)이 매주 금요일 밤 11시에 10주 동안 방영된다. 27일 1회 <집우집주>(연출 이현석, 극본 이강)를 시작으로 10월4일 2회 태항호·김수인의 <웬 아이가 보았네>(연출 나수지, 극본 김예나), 10월11일 3회 이태선의 <렉카>(연출 이호, 극본 윤지형), 10월18일 4회 정동환의 <그렇게 살다>(연출 김신일, 극본 최자원), 10월25일 5회 최원영·이도현의 <스카우팅 리포트>(연출 송민엽, 극본 이주영), 11월1일 6회 <굿바이 비원>, 11월8일 7회 신도현·안승균의 <사교-땐스의 이해>(연출 유영은, 극본 이강), 11월15일 8회 <때빼고 광내고>, 11월22일 9회 <감전의 이해>, 11월29일 10회 <히든>이다. 소재도, 장르도 다양하다. 집, 노인, 이사, 취업, 죽음 등을 액션, 스릴러, 로맨틱 코미디 다양한 장르에 담아냈고, 연출·작가 대부분 신인들로 구성됐다.
피디들은 소재나 장르의 실험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단막극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문보현 <한국방송> 드라마센터장은 26일 <드라마 스페셜> 제작발표회에서 “실험과 도전 정신을 가지고 다양한 이야기와 장르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게 단막극의 매력이다”라고 강조했다. 미니시리즈에 견줘 상대적으로 시청률 싸움이 덜 치열하기 때문에 자유로운 시도도 가능하다. 드라마에서 처음으로 양성애자를 등장시킨 것도 <완벽한 룸메이트>라는 단막극이었고, ‘5분’으로 드라마 형식을 파괴한 것도 <한뼘 드라마>였다. 지금은 ‘주류’가 된 좀비물도 단막극 <라이브 쇼크>에서 처음 선보였다. 4부작, 10부작 등 고정관념을 깬 회차도 단막극에서 처음 시도됐다. 문보현 센터장은 “한 편의 완결성을 가진 차별화되고 신선한 드라마를 보고 싶어 하는 시청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
배우 김진엽. 한국방송 제공
|
처음부터 완성된 대본이 나오기 때문에 배우들의 적극적인 연기도 가능해진다. 배우 김진엽은 26일 제작발표회에서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보고 연기할 수 있어서 제작진, 동료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있다. 그래서 자신감 있게 연기할 수 있다”고 했고, 태항호도 “배우들은 70분이라는 시간 동안 상업적인 틀을 벗어나 무한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다”고 말했다. 단막극은 또한 작품을 연구하고 파악할 틈도 없이 빠듯한 촬영 일정에 따라 현장에 투입되는 통상적인 드라마 제작 시스템과 차별성이 있다. 단막극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 이선균도 2006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줄거리가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는 미니시리즈와 달리 인물의 전체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어 배우가 능동적으로 연기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
배우 이주영. 한국방송 제공
|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드라마 스페셜>은 <베스트 극장> <티브이 문학관> 등이 모두 사라지고 남은 유일한 단막극이다. 프로그램당 광고가 최대 24개 붙을 수 있는데 단막극은 1~2개에 그칠 때가 많다. 수익이 나지 않자 방송사들은 앞다퉈 단막극을 폐지했다. 30년간 이어진 <드라마 시티>도 2008년 폐지됐는데, 내부 피디들이 힘을 합쳐 ‘단막극 부활팀’을 꾸린 덕분에 2010년 5월 <드라마 스페셜>이라는 이름으로 힘겹게 살아났다. 그나마도 2015년 고정 편성 시간대가 사라지고 1년에 10~15편을 드문드문 내보냈다.
올해는 의무감이 아닌 단막극의 존재 가치를 살리려는 움직임이 엿보여 다행스럽다. 금요일 밤 11시. ‘핫한’ 시간대에 편성됐다. 이현석 피디는 제작발표회에서 “시간대가 부담되는 건 사실이지만, 경쟁작들과 동시간대 방영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문 센터장은 “단막극은 작가, 감독, 배우에게 가장 기본인 장르다. 당장은 이익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쉽지 않지만 ‘단막극 정신’을 잃지 않고 나아가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