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속의 나의 연인] 누구나 한번쯤은 영화를 보면서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을 사랑하게 된 경험이 있지 않을까? 그 사랑은 자신의 연애관은 물론 세계관에까지 작든 크든 영향을 끼쳤을 터. 영화에 대한 얘기를 좀더 풍성하게 한다는 취지에서 영화인뿐 아니라 사회 각계 인사들의 ‘스크린 속 내 연인’을 만나보는 난을 매주 화요일치 문화면에 마련한다. 편집자 내 사춘기 시절 ‘둘도 없는 내 여인아’ 사춘기 시절 내게 가장 큰 충격을 안겨준 영화배우는 진추하(천추샤·사진왼쪽)다. 중학교 2학년 봄에 서울로 전학을 와서 연합고사를 보기까지 근 2년간 변두리라고는 해도 서울 한구석에서 나름대로 땟물을 벗었다고 턱을 한껏 쳐들고 고향으로 돌아갔던 1976년 12월, 나는 운명적으로 그와 마주쳤다. 관객이라고는 두 개 있는 구공탄 난로 옆에 앉아 있는 네댓 명이 전부인 명성극장에서였고 영화의 제목은 〈사랑의 스잔나〉, 당시 이따금 선보이던 한-중 합작, 엄밀하게는 한국과 홍콩의 합작영화였다.
영화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대략 여주인공인 진추하가, 예쁘고 모범생이고 온 세상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추하 양이 저 몹쓸 백혈병에 걸려 죽는다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어디선가 좀 본 듯한 내용에 어디선가 읽은 듯한 대사며 장면의 연속이었다. 이것저것 짜깁기해서 대충 만든 영화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주었던 것이다. 그때까지 내가 태어나서 본 영화라고는 순수 국산영화고 외화고 합작이고 간에 통틀어 스무 편이 될까 말까 했는데도 그랬다. 텔레비전의 ‘주말의 명화’며 ‘명화극장’은 빼더라도. 극장 밖에는 주인공의 사돈의 팔촌도 닮지 않은 배우가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서울의 극장과 너무도 수준차가 나는 간판이 달려 있어서 어설프다는 점에서 안팎이 일치됨을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진추하는 내가 일찍이 초등학교 때 어떤 여성지의 별책부록으로 나온 영화배우들의 화보에서 본 것 같은 특별한 점이 없었다. 이를테면 소피아 로렌의 야성미, 잉그리드 버그만의 청순함, 캐서린 헵번의 우미함,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천변만화, 오드리 헵번의 고고함 그 무엇에 비견할 만한 특징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숨이 넘어갔을 때는 아예 울었다. 스스로가 촌스럽고 우습다고 생각하면서도 울었다. 극장 화장실에 가서 살인적인 암모니아 냄새 속에서 오줌을 누면서도 울었다. 왜 울었는가. 그가 뭔가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어떤 집단에 속해 있으면 안도하고 획일화된 틀 속에 안주하고 앞으로 남들과 똑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이 정해져 있는 존재에게도 내밀한 나름의 무언가가, 조개 속살처럼 약하고 건드리면 아프고 눈물이 나오는 부분이 있음을 진추하는 알려주었다. 그 방법이 통속적이든 수준이 높든 아무 상관없었다. 숨 넘어가면 숨 넘어갈 듯 울고 노래하면 노래에 푹 빠져
당시 고등학생들의 자취방에 압도적으로 많이 걸렸던 배우는 올리비아 핫세(아르헨티나 출신으로 60년대 후반 17살의 나이에 〈로미오와 줄리엣〉에 출연함으로써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다. 영어로는 Olivia Hussey인데 그 당시 남학생들은 백이면 백 올리비아 핫세라고 불렀지 미국식으로 ‘올리비아 허시’라고 하지는 않았다. 그런 인간이 있었다면 백이면 백 맞아죽었을 것이다)였다. 핫세의 인기가 지속된 데는 그 당시 중고생들이 제 또래라고 생각할 만큼 앳되고 동양적인 외모 덕이 컸겠지만 〈로미오와 줄리엣〉 주제곡 ‘어 타임 포 어스’의 사운드 트랙에도 힘입은 바가 적지 않았다. 그런데 진추하는 청신하고 동양적인 미모는 기본이고 저 심금을 울리는 ‘원 서머 나잇’과 ‘그래주에이션 티어스’를 직접 작사, 작곡하고 노래까지 불러젖혔으니 핫세 양이 한국에서, 아니 동양권 어디에서 〈사랑의 스잔나〉를 보았더라면 청출어람의 후배가 나왔음을 뼈아프게 실감하지 않았을까. 그로부터 진추하와 올리비아 핫세는 고등학생 자취방 벽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나갔다. 멀리는 80년대 중반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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