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비온 글로버의 단독 탭댄스 공연 <클래시컬 세이비온>의 한 장면. <뉴욕타임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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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대높은 미국무대 탭댄스 ‘그저 그런’ 위상
서른한살 댄서 세이비온 클러버 스타일은 제외 탭댄스라는 단어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게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라면 스스로를 조금쯤은 안스러이 여기는 게 좋겠다. 재즈와 더불어 탭댄스는 미국이 콧대를 바짝 들고 의기양양 자랑스럽게 내놓는 그들만의 문화유산이지만 탭댄스는 발생한 지 백년이 넘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고상한 ‘예술’의 한 부분으로서 댄스계에 받아들여지지는 못하고 있다. 링컨센터에 재즈 오케스트라가 상주하고 있는 것과 비교해 탭댄스의 위상은 여전히 그저 그런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엔터테이너라면 가장 먼저 익혀야 할 기본기가 탭댄스라지만 훌륭한 탭댄서가 되기 위해서는 테크닉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더 필요하다. 31살이 된 탭 댄서 세이비온 글로버의 적혈구에는 ‘그 무엇인가’가 분명히 새겨져 있다. 뉴욕의 갤러리들이 모여있는 첼시지역에 자리잡은 ‘조이스 극장’(Joyce Theater)은 모던 댄스를 상연하는 뉴욕의 유일한 상업극장이다. 이 극장에서 새해 벽두부터 시작한 공연이 바로 세이비온 글로버의 단독 탭댄스 공연 <클래시컬 세이비온>(Classical Savion)이다. 비록 춤은 그 혼자 추지만 3막으로 구성된 이 공연에는 열 명의 소규모 오케스트라와 3막에서 등장하는 4인조 재즈 밴드가 함께 무대 위에 오른다. 세이비온 글로버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계기는 1995년 브로드웨이에서 개막한 <브링인 다 노이즈, 브링인 다 펑크>라는 댄스 뮤지컬 때문이다. 이 작품은 이듬해인 1996년 토니상에서 뮤지컬 <렌트>와 격돌하여 안무, 연출, 여우조연, 조명 등 네 개를 가져갔다. 백인 일색인 브로드웨이에서 흑인들이 노예로 끌려와 재즈와 탭을 만들어내고 그들의 예술인생을 키워온 여정을 담은 이 작품이 일으킨 파장은 컸다. 4년여 롱런한 끝에 막을 내렸지만 작품의 수준은 <렌트>보다 한 수 위라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23살의 나이로 이 작품을 안무하고 스스로 주연으로 무대에 섰던 이가 바로 세이비온 글로버이다. 12살 때 <탭댄스 키드>라는 작품의 주연으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한 그는 탭댄스를 단순한 쇼엔터인먼트의 기본기를 넘어서게 하는 힘을 발산한다. 오죽하면 모던댄스가 다 죽었다고 한탄하는 <뉴욕타임스>의 무용 비평가 애나 키셀고프가, 그렇다고 ‘세이비온 글로버 스타일은 아니다!’라고 굳이 언급까지 하며 부인할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세이비온이 조이스 극장에서 비발디, 바하, 바르톡, 멘델스존 등의 음악에 맞춰 탭을 춘다 해도 클래식의 영역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강한 거부반응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세이비온 글로버는 가뿐하게 그 속으로 들어섰을 뿐만 아니라 마치 비타민 음료라도 마시듯 음표 하나 하나를 그 자신의 몸속에 녹여냈다. 장장 두 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거의 쉬는 시간도 없이 땀으로 셔츠의 색을 바꾸어놓을 정도로 춤에 몰두하는 모습은 어떤 모던 댄스도 전해주지 못할 감동이 있다. 어떤 춤에든 그를 위한 음악이 따른다. 탱고도, 지루박도, 하다못해 디스코와 힙합도 그렇다. 그러나 탭은 다르다. 탭은 오로지 탭이 박힌 신발 한 켤레면 된다. 그 자체가 박자이며 리듬이며 춤이다. 이보다 완벽한 춤도, 이보다 어려운 춤도 없다. 하여, 관객들은 마지막 탭 소리가 사라지는 그 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내며 이 공연 티켓을 확보한 스스로에 대해 대견함마저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수진·조용신 공연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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