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13 21:33
수정 : 2005.01.13 21:33
불평등 다시 말하자 21세기적 계급으로
대통령이 연두회견에서까지 ‘양극화’를 말한다. 장기화된 경제불황은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다.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그 실체를 제대로 들여다보려고 사회과학은 ‘불평등 이론’의 틀을 만들었다. 그러나 정계와 재계에서 남발되고 있는 ‘양극화’라는 진단의 정체에 대해 분명한 목소리를 내는 학자는 많지 않다. 불평등 이론에 천착한 연구가 희귀해졌기 때문이다.
신광영 교수(중앙대 사회학과)가 펴낸 〈한국의 계급과 불평등〉(을유문화사)은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다시 말한다. 그 프리즘은 ‘계급’이다. 철지난 유행어처럼 들리는 이 개념이 불평등 구조의 본질을 드러낼 가장 유효한 방안이라고 신 교수는 강조한다. 계급적 관점으로 오늘의 한국 사회를 연구하려는 노력은 ‘계급담론의 폭발기’였던 1980년대보다 더 절실하다. 한국 사회가 질적인 변화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등장과 관련 있다. “한국 사회에서 부의 배분과 잉여의 수취가 국내의 계급관계뿐 아니라, 초국적 자본가계급의 결정이나 전지구적 경제변화에 직접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신 교수는 이제 “한 국가에 한정된 계급분석이 점차 그 의미를 상실해가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계급이론과 계급분석의 필요성”도 강렬해졌다. 초국적 자본과 만나 화학적 융합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 자본주의의 변화 양상을 제대로 들여다볼 이론적 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불평등을 경험적으로 연구하는 데 적합한 통계자료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신 교수는 기왕의 조사자료를 십분 활용해, 현단계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파헤쳤다. 경험적 연구분석을 통해 그는 “노동소득과 자산소득을 포함한 월소득이 계급에 의해 결정적으로 영향받고 있다”고 결론내린다. “불평등은 개인적 속성보다 구조적 속성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 자본주의의 특수성은 이런 ‘21세기적 계급이론’의 필요성을 강화한다. 여러 사회조사 자료를 검토한 끝에 신 교수는 “다양한 형태의 임대자본가들이 크게 늘어났다”고 분석한다. 이들은 현금·주식·채권·부동산 등을 통해 부를 누린다. 서구의 전통적 계급·계층이론만으로는 좀처럼 설명되지 않는 집단이지만, 동시에 이들이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의 핵심이라고 신 교수는 분석한다. 바로 이들 ‘비취업자 집단’의 급격한 증가 때문에 “소득 불평등 구조만으로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논의하는 것은 더이상 타당하지 않다”. 실제로 이런 변화는 곧바로 불평등의 심화·확대로 직결됐다. 신 교수는 몇가지 조사자료에 대한 분석을 통해, 지역간 불균등 성장에 따라 주택 자산 가치의 격차가 커진 것이 양극화의 주된 요인이었음을 드러냈다.
이런 불평등 구조의 가장 큰 피해자는 노동계급이다. 경제활동인구로 볼 때, 구제금융 이후 중간계급이 늘어난 반면, 노동자 계급은 크게 줄어들었다. 노동자 계급에서 탈각된 인구는 그대로 실업자로 밀려났다. 신 교수는 그래서 “경제위기의 실체는 노동자계급의 위기”라고 진단한다. 노동조합 등의 ‘방어막’이 없는 중산계급도 위기에 처해 있다.
신 교수의 한국 사회 계급 분석은 다시 한번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한 ‘사회연대’를 지향하는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급의 해체는 곧바로 중간계급의 위기로 이어지고, 이는 자본가들의 이윤구조까지 박탈하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의 복구를 통한 사회 불평등 구조의 완화만이 한국 경제가 나아갈 길이라는 것이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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