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1.11 16:40
수정 : 2005.01.11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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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장치와 조명을 실제 로트렉의 그림처럼 만든 벨레포크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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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거부의 예술대중화 위한‘환원’ 있으매
“예술은 특권층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존재한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엘씨티(링컨센터 극단:Lincoln Center Theater)가 출범하면서 내놓은 모토다. 최고가의 클래식 공연을 주도하는 링컨센터에서 할 말은 아닐 성 싶지만 이 말은 소문난 부자인 존 디 라커펠러 3세(한국에서는 록펠러로 알려졌다)가 링컨센터에 거액의 기금을 내놓으면서 기금 운영방침에 대해 남긴 가장 중요한 당부의 말이었다. 그 자신은 1만달러짜리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의 디너가 딸린 갈라 콘서트라도 거리낌없이 갈 수 있는 거부지만 번 돈을 사회에 환원하는 방법으로 예술의 대중화에 기여하겠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환원’의 취지에 제대로 부합되었다.
1965년 링컨센터의 완공에 맞춰 함께 문을 연 2개의 공연장을 품고 있는 비비안 버몬트 극장은 연극, 뮤지컬 전용극장으로 초기 20년 동안은 ‘레퍼토리 극단’, ‘조셉 파프의 세익스피어 페스티벌’ 등 다양한 극단을 하우스에 맞아들여 운영되고 있었다. 따라서 극장 자체는 이번 시즌이 개관 40주년이지만 비영리 극단으로서 새로 출범한 엘씨티는 2004~2005년 시즌으로 20주년을 맞이한 것이다.
엘씨티는 비영리 극단으로서, 소외계층에게도 고급 공연문화의 혜택을 돌려주어야 한다는 라커펠러 3세의 유지에 따라 뉴욕시를 이루고 있는 맨해튼, 브루클린, 브롱스, 스테튼 아일랜드, 퀸즈 등의 다섯개 지역의 다양한 사회단체들의 요청을 검토해 무료 티켓을 해마다 1천장 이상 기부하는 전통을 지키고 있다. 또 학생들을 위한 20달러짜리 러시티켓도 공연티켓이 완전히 매진되지 않는 한 언제라도 구입할 수 있다. 게다가 공연 티켓의 원 가격도 일반적인 브로드웨이 티켓값보다 10~20% 정도 낮게 책정돼 있다. 하지만 엘씨티의 공연 수준은 2000년도 토니상 뮤지컬 작품상을 거머쥔 댄스 플레이 <컨택트> 등 수많은 히트작들을 내놓을 만큼 여전히 높다.
이번 시즌이 20주년 기념이니만큼 1100석 규모의 비비안 버몬트 극장과 299석짜리 밋치 이 뉴하우스 극장에서는 뉴욕의 공연계를 묵직하게 한 화제작들이 잇달아 공연되었다. 영화배우 이선 호크와 케빈 클라인 등의 출연이 화제가 되었던 <핸리 4세>, <리어 왕>을 비롯하여 미국 뮤지컬의 자존심이랄 수 있는 스티븐 손드하임의 30년 전 워크샵 뮤지컬이었던 <개구리들>, 프랑스 화가 로트렉의 인생과 그림을 바탕으로 만든 <벨레포크> 등이 큰 찬사를 받았다.
20주년 기념 시즌은 현재 남북전쟁 당시를 배경으로 흑과 백의 두 여인이 나눈 우정을 다룬 <데사 로사>,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 모녀의 이야기를 담은 <피아자의 불빛> 등 두 개의 뮤지컬을 남겨놓고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잘 차려입고 자신의 예술적 고매함을 과시하게 위해 정기적으로 극장을 찾는 부자들이라 할지라도 무료 티켓을 손에 쥐고 아마도 처음으로 극장에 발을 디딜 이름 모를 그 누군가의 두근거리는 기대와 감동은 결코 맛볼 수 없을 것이다.
이수진·조용신 공연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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