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0.01.10 06:01
수정 : 2020.01.10 10:26
당신을 찾아서
정호승 지음/창비·9000원
정호승은 서늘하면서도 따뜻한 시편들로 독자의 허한 마음을 어루만져 온 시인이다. 단정한 형식과 절제된 어조를 주된 특징으로 삼는 그의 시들은 안치환을 비롯한 여러 가수들에 의해 노래로 만들어져 불리기도 했다. 그런데 그의 신작 시집 <당신을 찾아서>를 읽노라면 어쩐지 낯설고 불편한 마음이 든다. 반인간주의라 할 정도의 인간 혐오와 자학적인 이분법이 보이기 때문이다.
첫 시집 <슬픔이 기쁨에게>(1979)에서부터 반성과 비판은 정호승 시의 핵심 동력이었다. 더구나 인간 중심주의 내지는 인간 일방주의가 지구 생태계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인간으로서 지금 당신은 더 이상 달리지 말아야 한다”(‘경마장에서’)와 같은 경고는 시대적 정당성을 확보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시들에서 그의 인간 비하는 이해하기 어렵게 냉정하고 가차없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부정적 가치를 대표하는 인간의 반대편에 새를 놓는 것이 이채롭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인간이 사는 마을로 날개를 펼치고 돌아와/ 인간의 더러운 풍경이 되지 않으리라”(‘새들이 첫눈 위에 발자국으로 쓴 시’ 부분)
“행여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다면 버려라/ 차라리 인간의 썩은 가슴에다 던져버리고/ 날아가라 수평선 너머로”(‘목어에게’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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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 시인. ⓒ조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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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도저한 인간 부정의 바탕에 개인적 배신감과 환멸, 분노가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짐작을 그의 몇몇 시들에서 건질 수 있다.
“내가 그렇게 맛있니/ 마른 북어처럼 내리치고 북북 찢어/ 나를 얼마나 먹어야 네 배가 부르겠니”(‘나의 악마에게’ 부분)
“내 장례미사는 새들에게 맡겨다오/ (…)/ 한때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부디 오지 않게 해다오/ 나는 그들에게 언제나 꽃을 던졌으나/ 그들은 언제나 나에게 돌을 던졌으므로”(‘장례미사’ 부분)
‘장례미사’를 비롯해 시집 말미에 실린 ‘입적’ ‘그럼 이만 안녕’ 같은 시에서 시인은 동료 인간의 입회와 애도를 사양한 채 고독하고 단절적인 죽음을 소망한다. 종심을 지나 망팔을 향해 가는 시인의 이런 냉정하고 단호한 감정 표출은 어색하고 불안하다. 그래도 다행스럽다 싶은 것은 시집 맨 마지막에 실린 시 ‘썰물’에서 보이는 미련과 유보의 태도다. 이 시에서도 주인공 격인 썰물은 “도대체 인간이 싫”어서 “멀리 바다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썰물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어쩌지 못해/ 뒤돌아보고 또 뒤돌아보고/ 갯벌을 남긴 채/ 갯벌 곳곳에 길게 파인 발자국을 남긴 채” 나아가지 않겠는가. 썰물의 머뭇거림에서 엿보이는 연민, 그 썰물이 때가 되면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섭리에서 희망과 위안을 얻는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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