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0.01.10 06:00
수정 : 2020.01.10 10:11
제초제성분 ‘글리포세이트’ 피해 놓고 연 몬산토 국제법정 르포
‘화학물질의 생태계파괴는 에코사이드’ 판결 이끈 시민 노력 담아
에코사이드
: 생태학살자, 몬산토와 글리포세이트에 맞선 세계 시민들의 법정투쟁 르포르타주
마리-모니크 로뱅 지음, 목수정 옮김/시대의창·1만9800원
2008년 프랑스 현지에서 미국의 화학기업 몬산토의 음모와 비리를 고발한 <몬산토에 따른 세계>(Le monde selon Monsanto)와 2011년 화학물질의 파괴적 영향력을 밝힌 <우리 일상의 독>(Notre poison quotidien)을 펴낸 이래, 프랑스 언론인이자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인 마리모니크 로뱅은 “세상에 경종을 울리는 사람들을 조용히 지지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몬산토 같은 다국적 기업에 대항해 앞장서 싸우는 것은 격무와 스트레스의 전투에 나서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4년 11월의 어느날 스위스의 농업협동조합 활동가와 생물학자가 찾아오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투지에 넘치는 두 사람은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과 장폴 사르트르가 주도해 베트남전쟁 범죄를 다룬 1967년 ‘러셀의 법정’을 본떠, 몬산토의 ‘생태학살’(에코사이드)을 국제적으로 환기시키는 ‘몬산토 민간 국제법정’을 열자고 제안했다. 로뱅은 몬산토와의 항전에 사령관으로 나서 법학자·환경전문가·과학자·각국의 피해자들을 조직한다.
로뱅의 저작들은 국내에서도 2009년 <몬산토: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이선혜 옮김, 이레)과 2014년 <죽음의 식탁: 독성물질은 어떻게 우리의 일용할 양식이 되었나>(권지현 옮김, 판미동)란 제목으로 번역돼 화제를 모았다. 이번에 나온 책은 그 이후인 2016년 10월15~16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몬산토 법정 르포를 다뤘다. 몬산토의 핵심 상품인 제초제 ‘라운드업’(일망타진을 의미함)의 주성분인 ‘글리포세이트’라는 독성 물질에 반대하는 많은 이들의 땀과 눈물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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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팜파스 평원의 곡물지대에서 비행기가 몬산토의 제초제 ‘라운드업’을 살포하고 있다. ⓒ유러피안시빅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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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 기형, 암, 신장질환…화학물질의 섬뜩한 그림자
글리포세이트는 1950년대 스위스 제약사가 발명한 물질로, 1967년 미국의 다국적기업 스토퍼화학은 글리포세이트가 중금속과 결합해 단단한 복합화합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금속 침전물로 꽉 막힌 수도관 세척용 세제로 쓰이던 글리포세이트가 전세계로 퍼진 건 미국의 화학기업 몬산토에 의해서다. 피시비(PCB·폴리염화바이페닐)·다이옥신·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를 생산하던 몬산토는 1970년 글리포세이트로 식물의 대사를 저하시키는 방법을 개발해 특허를 얻고, 4년 뒤엔 이를 주성분으로 개발한 제초제 라운드업을 출시했다. ‘원하지 않는 풀’을 이름 그대로 일망타진하는 라운드업은 즉시 마법의 농약으로 등극해 전세계 토양을 글리포세이트로 적셨다.
몬산토 법정에 나와 피해를 증언한 희생자들 역시 프랑스·미국·스리랑카·아르헨티나 등 각국에서 날아왔다. 임신 초기 보호장구 없이 잔디밭에 라운드업을 뿌리다 ‘식도폐색증’(식도가 위 대신 폐와 연결된 것)과 ‘후두기형’을 타고난 아들을 낳은 프랑스 여성, 라운드업을 사용한 벼농사로 심각한 신장질환을 앓는 스리랑카 농부, 비호지킨림프종으로 재산과 건강을 날린 하와이의 커피농장 운영자, 라운드업에 절여진 곡물사료를 먹은 소·돼지에게 나타난 선천성 기형을 증언하는 아르헨티나의 수의사 등등 피해 사례는 차고 넘친다.
몬산토는 글리포세이트에 내성을 지닌 콩·옥수수 등 유전자조작 식물을 개발해 세계 종자시장을 공략하기도 했다. 1996년 아르헨티나 정부가 유전자 변형 콩 종자 판매를 승인하자, 목축업 위주였던 이 나라의 팜파스 평원은 유전자조작 콩 ‘라운드업 레디’가 장악한 단일경작지로 급변했다. 농부들은 씨 뿌린 후와 수확 이전 딱 두번만 라운드업을 뿌려주면 콩 이외 다른 잡풀은 모두 사라지는 ‘마법’에 환호했다. 이로써 곡물수출이 아르헨티나 외화벌이의 30%를 차지하게 됐으나, 결과는 진행형 비극이다. 기형아 탄생·암·신장질환·신경장애·알레르기 등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단일 제초제 사용으로 풀도 내성이 생겨 제초제 사용량을 늘려야 했고 이는 농가부담으로 이어졌다. 라운드업과 짝을 이루는 유전자 변형 곡물이 일으키는 폐해는 미국 중부 곡창지대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글리포세이트에 저항하도록 식물에 주입된 유전자가 아연·망간 흡수율을 떨어뜨림으로써 곡물은 면역력이 약화돼 ‘식물 에이즈’에 걸린다. ‘고스 시들음병’으로 옥수수는 썩은 생선 냄새를 풍기고, 콩은 ‘급사 신드롬’이라는 곰팡이병을, 밀은 입고병을 앓는다. 땅은 메마르고 딱딱해져 물기를 머금지 못해 홍수가 급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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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에 걸린 유전자변형 옥수수. ⓒ마티외 아슬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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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기업-과학자의 공모, 그리고 용감한 시민들
글리포세이트의 위험에 모두가 손놓고 있는 건 아니었다. 유엔산하 국제암연구센터는 과학잡지에 실린 모든 논문을 검토한 결과 2015년 글리포세이트에 ‘인체에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발암물질 2A 등급을 매겼다. 2015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스리랑카 정부가 사용을 금지한 이래, 베트남이 2019년 판매 금지에 동참했고, 오스트리아와 프랑스(2021), 독일(2023)도 퇴출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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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으로 초토화된 미국의 곡창지대. 시대의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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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몬산토는 글리포세이트의 독성을 충분히 인지하면서도 연구 결과를 조작하거나 보고서를 철저히 숨김으로써 침묵의 고리를 유지한다. 규제기관에 대한 로비와 과학계 매수는 광범위하고 끈질겼다. 자기 편에 서 있는 과학자의 권위와 <뉴욕 타임스> 등 유력 언론의 파급력을 활용해 글리포세이트의 위험을 알리는 보고서들을 ‘시궁창 연구’라고 비난하며 평판을 떨어뜨린다. 몬산토에 맞선 과학자들은 대학에서 잘리고 연구비를 받지 못하며 신뢰를 잃는다. 판매 금지 여부를 놓고 고심하던 유럽연합 역시 결국 화학기업과 자본의 압력에 밀려, 2017년 이 위험한 물질에 대한 사용 허가를 5년 더 연장하는 결정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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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몬산토 국제법정 장면. ⓒ유러피안시빅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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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전문가와 ‘평범한 세계시민’의 노력은 몬산토 법정에서 나름의 결실을 맺는다. 재판부는 2017년 4월 몬산토의 행위에 대해 ‘생태학살’이라고 판단한다. 생태학살이란 용어는 베트남전에서 쓰인 고엽제를 발명한 식물생리학자 아더 갈스톤이 1970년 워싱턴 연설에서 처음 쓴 것으로, 그는 생태학살의 범죄를 ‘황폐화 그리고 파괴’라고 규정한 바 있다. 몬산토 재판부는 선언한다. “국제형사재판소를 세운 로마규정의 개정안에 새로운 법률적 개념을 제안할 때가 도래했다고 판단합니다. 생태학살이 국제법에 의해 범죄로 인정되었다면 몬산토가 벌인 활동은 인간의 건강과 삶뿐만 아니라, 토양과 하천, 식물, 동물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히며 생태 다양성과 생태계에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피해를 입힌 것으로서 범죄로 간주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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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에서 글리포세이트 살포 비행기 제초제 탱크를 채우는 일을 하다 신경계 퇴행성 질환을 앓게 된 파비안 토마시를 만난 마리모니크 로뱅(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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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독자들이여, 몬산토 투쟁에 함께하길”
몬산토 법정이 열린 지 3년여가 흘렀다.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독일의 화학·제약회사 바이엘은 몬산토 법정 한달 전인 2016년 9월 77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금액으로 몬산토를 사들였다. “유독한 농약부터 그로 인해 오염된 환경에서 병에 걸린 농민이나 소비자를 치료하는 일련의 약들까지 한 업체에서 생산하는 ‘병 주고 약 주는’ 시스템이 완결”된 것이었다. 그러나 2018년부터 미국에서 제초제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판결이 내려지면서 몬산토를 인수한 바이엘은 주가 하락 등으로 기업 가치가 떨어졌다. 프랑스 언론 <르몽드>는 몬산토가 정치인·공직자·언론인·과학자들을 매수한 증거를 입수해 폭로했다. 시민들은 소변 테스트를 통해 자신의 몸속 글리포세이트 농도를 측정하는 ‘자발적 오줌싸개들’을 조직화하며 화학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의 사정은 어떨까. 농촌진흥청은 국제암연구센터의 발암물질 판정에도 불구하고 2017년 글리포세이트 출하 제한 처분을 해제하고 이 물질이 포함된 제초제 1900t에 대해 출하 승인을 내렸다. 그러나 같은해 국정감사에서 김현권 의원(더불어민주당)은 농촌진흥청의 판정이 제초제 제조사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선택적으로 취합해 내린 결론임을 밝혀 논란이 일었다. 한국에선 유전자조작 농산물 재배를 허가하지 않고 있지만, 글리포세이트가 함유된 제초제가 아무런 규제 없이 팔리고 있다. 글리포세이트를 포함한 시판 농약은 30여가지에 이른다(
한국작물보호협회 누리집 참조). ‘한국어판에 부치는 글’에서 저자의 당부가 각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자발적 오줌싸개들’은 공권력과 농화학업계의 과오를 고발하는 집단소송에 함께 나서는 것에 최종 목표를 두고 있다. 한국의 독자들 역시 같은 행동에 나서주시길 요청한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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