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의 거침 없는 입담 돋보이는 ‘몸 안내서’
“생물학적으로 ‘인종’은 존재하지 않으며, 피부색은 햇빛에 대한 반응일 뿐”
바디: 우리 몸 안내서
빌 브라이슨 지음, 이한음 옮김/까치·2만3000원
영국 왕립과학협회는 2013년 케임브리지 과학축제를 맞아 재미있는 연구를 했다. 과학축제의 객원연출자인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만드는 데 필요한 원소를 모으려면 돈이 얼마나 들지 계산해본 것이다. 사람을 만드는 데는 총 59개 원소가 필요하다. 탄소, 산소, 수소 질소, 칼슘, 인 등 6개 원소가 99.1%를 차지하므로, 나머지 53개 원소는 아주 조금씩만 사면 된다. 컴버배치의 신체구조를 고려하고 각 원소의 시세를 반영해 정교하게 계산한 결과, 협회는 컴버배치를 만드는 데 9만6546.79파운드(1억4천여만원)가 든다고 밝혔다.
그러나 백 배, 천 배를 준다고 해도 실제로 컴버배치를 만들 수는 없다. 우리 몸은 우주 어디에나 있는 흔한 원소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원소의 총합이 우리 자신은 아니다. 우리 모두의 디엔에이(DNA)는 99.9% 같지만 저마다 약 100개의 유전자 돌연변이를 갖고 있다. 우리는 각자 고유하며 유일하다. <바디: 우리 몸 안내서>의 저자 빌 브라이슨은 이를 “생명의 기적”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전혀 의식하지 않으면서 하루에 약 1만4000번 눈을 깜박인다. 우리 몸은 1초에 100만개의 적혈구를 만들고 적혈구 하나는 몸속을 15만번 돌면서 산소를 전달한다. 허파의 공기통로를 이으면 런던과 모스크바를 연결하는 긴 줄이 되고, 혈관을 이으면 지구를 두 바퀴 반 감을 수 있다. 세상 만물은 시간을 이길 수 없지만, 디엔에이는 수만년을 거뜬히 버틴다. “우리 몸은 거의 줄곧 다소 완벽하게 조화로운 방식으로 작동하는 37.2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우주”다. “정기적으로 수리를 받거나 예비부품으로 교체할 필요 없이 하루 24시간 내내 수십 년간 가동되고, 물과 몇 종류의 유기화학물로 원활하게 작동하며, 이동성과 융통성을 갖추고, 열정적으로 스스로 번식한다.” <바디>는 이토록 놀라운 우리 몸에 대한 찬사이자, 상세한 설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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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결핵요양소의 모습. 결핵환자들이 담요로 몸을 감싼 채 신선한 공기를 접하는 동안 간호사가 책을 읽고 있다. 까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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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부터 시시콜콜한 것까지 총망라하면서도 줄기차게 주제를 향해 달려가는 저자의 지칠 줄 모르는 입담은 전작 <거의 모든 것의 역사>에 이어 이번에도 여지없이 발휘된다. 500여쪽 분량의 책을 꼭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책은 피부와 털, 뇌, 머리, 입과 목, 심장과 피, 뼈대, 직립보행과 운동, 균형잡기, 허파와 호흡, 면역계, 음식, 소화기관, 잠, 잉태와 출생, 신경과 통증 등 우리 몸 각 부위와 기능을 제목으로 한 23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궁금한 주제부터 골라 읽어도, 저자의 지적인 수다에 금세 빠져들게 된다.
평소 사춘기 아이의 머릿속에 대체 뭐가 들었는지 궁금했다면, 4장 ‘뇌’ 편이 도움이 될 것이다. 뇌는 완전히 형성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십대 청소년의 뇌 회로는 약 80%만 완성된 상태다. “십대의 뇌는 그저 조금 덜 성숙한 어른의 뇌가 아니라 전혀 다른 종류의 뇌”(신경학자 프랜시스 E. 젠슨)다. 쾌락과 관련 있는 ‘측좌핵’은 십대 때 최대 크기로 자라고, 몸에 쾌감을 전달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도 십대에 가장 많이 생산된다. “인생의 어느 시기보다 십대 때 더 격렬한 감정을 느끼고 더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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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상당 부분의 지식은 1820년대 미국 군의관 윌리엄 보몬트가 위에 총상을 입은 알렉시스 마틴에게 시도한 238가지 실험으로 밝혀진 것들이다. 보몬트가 마틴의 위장에 비단실로 묶은 음식물을 집어넣고 위액이 미치는 영향을 관찰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 까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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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맛집 순례로 미각에 관심 많은 독자에겐 6장 ‘입과 목’을 권한다. 고추에 들어 있는 화학성분인 ‘캡사이신’을 소화할 때는 엔도르핀이 분비되기 때문에 매운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거나, 매운맛은 사실 ‘맛’이 아니라 ‘통증’이며 혀뿐 아니라 눈과 항문에도 통증감지기가 있기 때문에 몸 여러 곳에서 화끈한 매운맛을 느낄 수 있다거나 하는, 소소한 이야깃거리들이 가득하다. 우리 혀가 단맛, 짠맛, 신맛, 쓴맛 외에 ‘감칠맛’도 느낀다는 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다. 감칠맛은 다시마와 건어물 등을 끓여 만든 일본 육수에서 나는 맛인데, 1900년대 도쿄대 물리화학과 이케다 기쿠나에 교수가 이 맛의 원천을 찾아내 오늘날 엠에스지(MSG)라 불리는 형태로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한때 엠에스지가 건강을 해친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지금까지 어떤 과학자도 이 물질을 탓할 근거를 찾아내지 못했다.
책에는 이처럼 오해받거나 잘못된 상식으로 굳어진 것들이 여럿 나온다. 인간이 뇌의 10%만 사용한다는 것은 괴담에 가깝다. 우리는 평생 이런저런 방식으로 뇌의 모든 영역을 쓴다. 생물학적으로 ‘인종’은 존재하지 않으며, 피부색은 햇빛에 대한 반응일 뿐이다.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는 위가 아니라 큰창자에서 난다. 하품은 피로와 관련이 없고, 하품을 가장 많이 하는 시간은 잠을 푹 자고 일어난 뒤 처음 2분간이다.
살아 있는 인간의 몸속 기관을 연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초창기의 결정적인 연구는 우연한 사고에서 비롯되곤 했다. 1848년 미국 청년 피니어스 게이지가 다이너마이트 사고로 뇌의 절반을 잃은 뒤, 뇌의 물리적 손상이 성격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가 위에 대해 알고 있는 수많은 지식은 1822년 총상을 입은 사냥꾼 알렉시스 세인트 마틴의 몸속을 지름 2.5㎝의 총구멍으로 수 년간 들여다보면서 238가지 실험을 한 군의관 윌리엄 보몬트가 발견한 것이다.
첨단기기의 발달로 몸속 세포와 디엔에이까지 자유롭게 연구하고, 오해와 편견에서 벗어나 ‘우리 몸의 진실’에 성큼 다가간 오늘날에도 우리는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 가려움증의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속눈썹의 기능이나 턱의 역할도 불명확하다. 오랫동안 잠을 자지 않으면 죽는 것은 분명하지만, 수면부족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까닭은 알지 못한다. 우리 몸에 살고 있는 약 4만여 종의 미생물은 커다란 미지의 영역이며, 노화는 가장 큰 수수께끼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는 것이 모든 공부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바디>는 좋은 학습서이기도 하다.
이미경 자유기고가
nanazaraza@gmail.com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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