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0.01.03 06:00
수정 : 2020.01.03 10:06
미리 읽는 2020년
격동의 한국사, 기후위기, 페미니즘, 불평등 관련 신간 주목
한강, 조남주, 황석영, 손원평 등 문학 분야 기대작 풍성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변화의 추동력이 과거를 고수하는 이들의 저항과 이해관계의 복잡함과 현실의 입체성에 부닥쳤던 2019년을 보내고, 새해를 맞았다. 분노와 무기력에서 일어나 위로를 받고 각오를 다지는 데 믿음직한 조력자는 역시 책. 그러나 가까이 있어도 먼 것이 책 아니던가.
무지를 걱정하는 당신에게, 책을 읽지 않아 자책하는 당신에게, 책이 너무 무거운 당신에게 2020년 새해를 맞아 새로운 독서법을 제안한다. 읽지 않은 책도 아는 척할 수 있는 독서법. 읽지 않은 책도 알게 되는 독서법. 믿기지 않는다고? 의심스러우면 매주 금요일마다 ‘책&생각’을 읽으면 된다. 저절로 알 수 있다.
2020년을 맞아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책을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출판사 30여곳으로부터 올해 각자 ‘대표선수’로 내놓을 책을 소개받았다. 2020년을 미리 읽어보자. 단, 책 제목은 대부분 가제이니 미리 너무 많이 아는 척하는 건 금물.
한국전쟁 70돌, 광주항쟁 40돌…한국사의 아픔을 돌아본다
올해는 한일병탄 110돌, 한국전쟁 70돌, 광주항쟁 40돌 등 유독 굴곡진 한국사의 비극을 돌이켜보게 만드는 ‘역사의 해’다. 돌베개는 광복절이 있는 ‘역사의 달’ 8월에 <시민의 한국사>를 출간할 계획이다. 국내 최대 역사연구단체 한국역사연구회가 역량을 총동원해 현대 한국사 통사를 써내려가고 있다. 돌베개 쪽은 “역사 대중화 시대의 열린 역사학을 집약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의 증언을 토대로 한 <풀>로 지난해 프랑스의 ‘제1회 휴머니티 만화상’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김금숙 작가는 조선인 최초의 볼셰비키 혁명가이자 노동·인권을 위해 투쟁한 여성 독립운동가 김알렉산드라의 생애를 다룬 그래픽노블 <시베리아의 딸, 김알렉산드라>(서해문집)를 낸다.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조선에 살았던 일본 정착민들의 삶을 다룬 <제국의 브로커들>(우치다 준, 길)과 경성(서울)을 무대로 일제의 동화정책을 분석한 <서울, 권력도시>(토드 A. 헨리·산처럼)는 총독부를 중심으로 한 ‘위로부터의 통치’뿐 아니라 구체적인 피식민지의 삶을 조명한다. 메디치미디어는 야마모토 세이타 등 일본의 양심적인 변호사들이 2018년 한국 대법원의 징용공 관련 판결을 뜯어보면서 일본인의 목소리로 일본 정부 주장의 오류를 짚는 <징용공 재판과 한일 청구권협정>과 일본인들의 ‘혐한’ 뿌리를 찾는 <정한론에서 청일전쟁까지>(하종문)를 낼 예정이다. 오월의봄이 선보일 <이블 멘>(Evil Men·제임스 도스)은 중일전쟁 전범 인터뷰를 바탕으로 평범한 개인이 가해자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레타 툰베리의 절박한 호소처럼 기후온난화가 전 지구적 위기로 확산한 현재 시점에서, 제러미 리프킨이 화석연료의 종말을 선언하며 지구 생명체를 살릴 미래 에너지의 로드맵을 그린 <글로벌 그린 뉴딜>(민음사)이 기대를 모은다.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김영사)은 빌 앤(&)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환경·기후 관련 장기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인류의 실현 가능한 해법을 제시하는 책이다. 발암물질 ‘글리포세이트'의 위험성을 알리며 다국적기업에 맞선 시민들의 투쟁인 ‘몬산토 국제시민법정’을 배경으로 한 르포르타주 <에코사이드>(시대의창)처럼 환경문제와 관련한 지구적 실천을 다룬 책도 눈에 띈다.
올해도 페미니즘의 바다로
페미니즘의 물결은 올해도 도도히 흐른다. <백래시>를 쓴 수전 팔루디의 자전적 에세이 <다크룸>(아르테)은 주류 백인 남성사회에 편입하려 고군분투하다 70대에 트랜스젠더가 된 아버지의 삶을 추적한다. 창비는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로 유명한 리베카 솔닛의 책 두 권을 잇따라 내놓는다. ‘미투운동’을 중심으로 한 페미니즘 에세이 모음 <누구의 이야기인가>, 영국의 사진가 에드워드 마이브리지를 다룬 예술비평서 <그림자의 강>이다. 동녘이 준비중인 <내 이름을 기억해줘>(샤넬 밀러)는 미국 국가대표 수영선수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가 미국 사법시스템의 폐해를 고발하고 피해자로서 겪은 정신적 아픔을 기록했다. 대한민국의 생생한 육아분투기 <아이 가져서 죄송합니다>(김노향·루아크)도 이달 안에 출간된다.
‘몸’이란 소재를 과학적으로, 인문학적으로 변주한 책들도 흥미롭다. 에스에프(SF) 소설가 김초엽과 장애학을 연구하는 법률가 김원영이 공저한 <사이보그가 되다>(사계절)는 서로 다른 장애 경험을 지닌 두 사람이 만나 과학기술의 발전 속에서 ‘정상적 신체’를 둘러싼 논쟁을 검토하고 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탐구한다. ‘유쾌한 저술가’ 빌 브라이슨의 <바디: 우리 몸 안내서>(까치)는 몸의 신비와 능력, 몸 연구자의 이야기 등 ‘우리 몸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고, <생체리듬의 과학>(세종서적)은 생체시계 권위자인 사친 판다가 고령화 시대 건강을 지키기 위한 지혜를 알려준다. <장애의 역사>(킴 E. 닐슨, 동아시아)는 미국의 역사 속에서 ‘장애’라는 개념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묘사하고, 팟캐스트 방송 ‘뇌부자’로 잘 알려진 김지용이 쓴 <나는 정신과 의사입니다>(심심)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바로잡는 책이다.
세계역사를 통사적으로, 또는 특정 소재를 중심으로 가로지르는 대작도 출간을 서두르고 있다. <냉전의 지구사>(오드 아르네 베스타, 에코리브르)는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충돌이 지구적 차원의 냉전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서술하며 <여권의 발명>(존 토르페이, 후마니타스)은 전지구적 ‘이주의 시대’에 이동 수단을 독점하는 국가 권력의 제도화 과정을 살폈다. 문학과지성사는 정치·사회·예술 에세이 ‘채석장 시리즈’ 첫 권으로 파리의 형사사건 아카이브를 통해 여성·빈민 등의 주제를 연구해온 프랑스의 역사가 아를레트 파르주의 <아카이브 취향>을 선보인다.
경제적·사회적 불평등의 시대에 정치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주문하는 책도 관심을 끈다. 지난해 출간돼 프랑스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토마 피케티의 6년 만의 신간 <자본과 이데올로기>(문학동네)는 ‘자본주의를 넘어서자’며 ‘왜 이토록 큰 해악을 끼치는 불평등 해소를 위해 정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답한다. 김병권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위원장의 <사회적 상속>(이음)은 불평등 세습에 맞서 인생의 출발점을 고르게 만들기 위한 정책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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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토마 피케티 2. 마거릿 애트우드 3. 제러미 리프킨 4. 리베카 솔닛 5. 한강 6. 김금숙 7. 김초엽 8. 수전 팔루디 9. 박상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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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 김민식 등 ‘유쾌 에세이’도 주목
문학 분야의 기대작들도 독자들을 설레게 한다. 맨부커 인터내셔널 수상 작가 한강은 4년 만에 ‘눈 3부작’을 묶은 신간(제목 미정·문학동네)을 내고,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는 신작 소설집(제목 미정·민음사)에서 다양한 세대의 여성을 바라보는 섬세한 시선을 보여준다. 청소년 베스트셀러 <아몬드>의 작가 손원평도 네 남녀의 사랑과 상처를 그린 성장기 <일종의 연애소설>(은행나무)로 독자와 만난다. 황석영의 장편 <마터 2-10>(창비)은 산악형 기관차의 제작번호에서 이름을 따왔다. 우리 근대사를 관통하는 철도원 3대의 이야기를 통해 남북 분단으로 끊어진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정지돈·윤이형·조해진은 마음산책의 ‘짧은 소설’ 시리즈로 독자와 만난다. 엘레나 페란테의 <어른들의 거짓된 삶>(한길사)은 어른들의 위선된 삶에 눈뜬 14살 소녀의 잔혹한 성장소설로 올 6월 전세계에서 동시출간된다.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올가 토카르추크의 신작 <낮의 집, 밤의 집>(민음사), 2019년 부커상 수상작이자 <시녀이야기>의 후속작인 마거릿 애트우드의 <증언들>(황금가지) 등도 곧 한국어판이 나온다. 1997년 데뷔작 <작은 것들의 신>으로 부커상을 받으며 일약 세계적 작가로 떠오른 아룬다티 로이가 20년 만에 발표한 두 번째 장편 <지복의 성자>(문학동네)도 이달이나 다음달중에 나온다. 미야베 미유키 데뷔 30주년 기념 장편 대작인 <세상의 봄>(비채)은 막부 말기를 배경으로 한 사랑의 여정을 담았으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판도라>(열린책들)는 환생이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다뤘다. 터키 에르도안 정부에 의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은 작가 아흐멧 알탄의 작품으로 우여곡절 끝에 영국에서 출간돼 지난해 아마존의 ‘올해의 책’에 선정됐던 <나는 다시는 세상을 보지 못할 것이다>(알마)도 한국 독자들을 기다린다.
이밖에 지난해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인기몰이를 한 박상영의 <오늘밤은 굶고 자야지>(한겨레출판), 30대 아빠가 두살 아들에게 남기는 세상살이 지혜인 <내 아들이 세상을 살면서 알아야 할 모든 것>(다산책방), 김민식 <문화방송> 피디의 <나는 질 때마다 이기는 법을 배웠다>(푸른숲),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요가 강사인 황혜원 작가의 <요르가즘>(마음산책) 등 유머코드와 발랄함을 갖춘 에세이집도 흥미롭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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