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희정 지음/안토니아스·1만8000원 ‘베이비붐’은 알아도 ‘베이비스쿱’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국자로 퍼내듯 아이들을 퍼갔다는 의미로 ‘아기 퍼가기 시대’ 또는 ‘아기 국자 시대’로 번역되는 ‘베이비스쿱 시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의 미혼모들이 체계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에 의해 자녀를 입양 보내야 했던 시기”를 말한다. 이 시기 미국에서만 1천만 명, 캐나다에서는 무려 35만 명의 미혼모들이 친권을 포기했고, 아이들은 입양절차를 거쳐 백인 중산층 가정에 편입됐다. 인류학 박사인 저자 역시 2008년부터 5년간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으로 일하기 전까지 베이비스쿱 시대를 알지 못했다. <미혼모의 탄생>은 두 가지 의문에서 출발한다. 미혼모 자녀의 대대적인 입양이 서구에서도 ‘보편적으로’ 추진된 이유와 경위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제 서구에서는 아이를 포기하는 미혼모가 거의 없고 ‘미혼모’(unwed mother)라는 단어마저 생소해졌는데 왜 한국에서만 지금까지 이 문제가 지속되고 있는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여성들을 ‘미혼모’로 분류하고, 입양제도를 통해 이들을 자녀와 분리하는 일련의 과정을, 저자는 ‘탈모성화’라고 명명한다. 미혼모의 탈모성화 경험은 이성 부부와 그 자녀로 구성된 가정만을 ‘정상’으로 보는 근대 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비롯한다.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 모든 가정은 ‘결핍’이 있는 ‘불법적’이고 ‘비정상적’인 가정으로 간주된다. 가족치료학이나 사회복지학 같은 근대 학문들은 ‘비정상 가정의 정상화’ 방안을 맹렬히 연구했다. “결혼하지 않은 임신은 신경증을 유발할 우려가 있고 아동발달과 가족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리오틴 영, 1945년)는 식이다. 미혼모는 치료와 교정의 대상으로, 그 자녀는 하루 빨리 정상가족에 편입해 양육할 대상으로 여겨졌다. 한국 사회에 ‘미혼모’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1970년대다. “국내 입양기관인 한국기독교양자회가 해외의 친권 포기 상담 전문가를 초빙해 미혼모 상담사업을 도입하고, 정부 인가 해외입양기관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 것이 계기”였다. 한국의 해외입양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전쟁고아가 많던 1950년대가 아니라 언론이 통계를 왜곡한 기사를 쏟아내던 1970년대와 일인당 5천 달러의 높은 입양수수료에 힘입어 시장규모가 급성장한 1980년대다. 서구에서는 1970년대 들어 ‘베이비스쿱 시대’를 증언하는 여성들의 자기고백이 잇따랐고, 모성권에 대한 국가적 배상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반면 한국에서 미혼모의 자녀가 입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져 2000년대에는 국내입양의 79.1%, 외국입양의 97.5%에 달했다. 변화의 조짐은 2000년대 들어 호주제 폐지운동이 벌어지고 귀환 입양인 조직과 미혼모 조직이 등장하면서부터 싹텄다. 이제는 한국 사회의 인구구성이 ‘정상가족’과 ‘미혼모’의 개념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결혼 및 가임적령기를 여성 20~34살, 남성 25~39살로 볼 때, 여성의 58.1%, 남성의 59.6%가 미혼상태”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미혼부모와 혼외출산을 언제까지 비정상이라고 손가락질할까. 2014년 영국의 혼외출산률은 40.2%, 프랑스는 56.7%에 달한다. 이미경/자유기고가 nanazaraza@gmail.com
책 |
미혼모는 왜 어머니가 될 수 없었나 |
권희정 지음/안토니아스·1만8000원 ‘베이비붐’은 알아도 ‘베이비스쿱’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국자로 퍼내듯 아이들을 퍼갔다는 의미로 ‘아기 퍼가기 시대’ 또는 ‘아기 국자 시대’로 번역되는 ‘베이비스쿱 시대’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미국, 캐나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의 미혼모들이 체계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에 의해 자녀를 입양 보내야 했던 시기”를 말한다. 이 시기 미국에서만 1천만 명, 캐나다에서는 무려 35만 명의 미혼모들이 친권을 포기했고, 아이들은 입양절차를 거쳐 백인 중산층 가정에 편입됐다. 인류학 박사인 저자 역시 2008년부터 5년간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으로 일하기 전까지 베이비스쿱 시대를 알지 못했다. <미혼모의 탄생>은 두 가지 의문에서 출발한다. 미혼모 자녀의 대대적인 입양이 서구에서도 ‘보편적으로’ 추진된 이유와 경위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제 서구에서는 아이를 포기하는 미혼모가 거의 없고 ‘미혼모’(unwed mother)라는 단어마저 생소해졌는데 왜 한국에서만 지금까지 이 문제가 지속되고 있는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은 여성들을 ‘미혼모’로 분류하고, 입양제도를 통해 이들을 자녀와 분리하는 일련의 과정을, 저자는 ‘탈모성화’라고 명명한다. 미혼모의 탈모성화 경험은 이성 부부와 그 자녀로 구성된 가정만을 ‘정상’으로 보는 근대 가족 이데올로기에서 비롯한다.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 모든 가정은 ‘결핍’이 있는 ‘불법적’이고 ‘비정상적’인 가정으로 간주된다. 가족치료학이나 사회복지학 같은 근대 학문들은 ‘비정상 가정의 정상화’ 방안을 맹렬히 연구했다. “결혼하지 않은 임신은 신경증을 유발할 우려가 있고 아동발달과 가족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리오틴 영, 1945년)는 식이다. 미혼모는 치료와 교정의 대상으로, 그 자녀는 하루 빨리 정상가족에 편입해 양육할 대상으로 여겨졌다. 한국 사회에 ‘미혼모’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1970년대다. “국내 입양기관인 한국기독교양자회가 해외의 친권 포기 상담 전문가를 초빙해 미혼모 상담사업을 도입하고, 정부 인가 해외입양기관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 것이 계기”였다. 한국의 해외입양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전쟁고아가 많던 1950년대가 아니라 언론이 통계를 왜곡한 기사를 쏟아내던 1970년대와 일인당 5천 달러의 높은 입양수수료에 힘입어 시장규모가 급성장한 1980년대다. 서구에서는 1970년대 들어 ‘베이비스쿱 시대’를 증언하는 여성들의 자기고백이 잇따랐고, 모성권에 대한 국가적 배상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반면 한국에서 미혼모의 자녀가 입양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커져 2000년대에는 국내입양의 79.1%, 외국입양의 97.5%에 달했다. 변화의 조짐은 2000년대 들어 호주제 폐지운동이 벌어지고 귀환 입양인 조직과 미혼모 조직이 등장하면서부터 싹텄다. 이제는 한국 사회의 인구구성이 ‘정상가족’과 ‘미혼모’의 개념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결혼 및 가임적령기를 여성 20~34살, 남성 25~39살로 볼 때, 여성의 58.1%, 남성의 59.6%가 미혼상태”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미혼부모와 혼외출산을 언제까지 비정상이라고 손가락질할까. 2014년 영국의 혼외출산률은 40.2%, 프랑스는 56.7%에 달한다. 이미경/자유기고가 nanazaraz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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