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20.01.03 06:00
수정 : 2020.01.03 10:54
[책&생각] 서영인의 책탐책틈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지음/창비(2019)
우리가 서로에게 미래가 될 테니까
윤이나 지음/코난북스(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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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으니 어쩐지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다. 한 해 동안 내가 기대할 수 있는 희망을 가늠하다가, 문득 최근 얼마간 희망이라는 것을 감지했던 순간은 언제나 내 후배 세대들과 함께 있을 때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려 ‘새천년’이라는 천문학적 시대 구분을 세대 앞에 붙이고 나타난, 소문도 무성한 ‘밀레니얼’들 말이다.
단행본으로 출간된 장류진의 소설집을 읽다가 단편으로 접했을 때 못 보았던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의외로 소설 곳곳에 타인에 대한 세심하고 선량한 호의가 숨겨져 있었는데, 그것은 ‘사회나 집단보다 개인의 삶’을 중시한다는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일반적 분석과 거리가 있다. 3년 간의 사내연애를 감쪽같이 숨기면서 똑부러지게 자기 일과 생활을 관리하는 ‘나’는 계산 불분명하고 사회생활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감상으로 가득 찬 ‘홍빛나’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가 ‘잘 살 수 있기를’ 바란다.(‘잘 살겠습니다’) 개발자의 스트레스를 ‘사실상 막내’인 ‘나’에게 푸는 것이 불만이지만 나는 개발자 ‘캐빈’에게 스타워즈 레고 시리즈를 선물한다.(‘일의 기쁨과 슬픔’) 워킹 홀리데이를 떠난 불안한 취준생 시절, 우연히 만나 도움을 주었던 노인이 6년이 지난 후에도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는 울먹인다. 그리고 눈이 보이지 않는 그를 위해 큰 노트에 매직펜으로 편지를 쓴다.(‘탐페레 공항’)
이 호의들은 막연한 인류애나 공존의 정신 같은 것에 기반하지 않는다. 월말 정산과 결혼식 날짜가 겹친 총무과의 홍빛나는 결혼식 전날 김밥을 먹으며 야근을 한다. 안드로이드 앱 개발자 두 명이 하는 일을 아이폰 앱 개발자 캐빈은 혼자 한다. 탐페레 공항의 ‘얀’은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완벽한 구도의 사진을 찍을 줄 알며 그 사진으로 불안과 설렘을 함께 안고 이국의 공항에 서 있던 나를 기록해 주었다. 변하지 않는 조직과 사라지지 않는 권위가 일의 슬픔이라면, 그 안에서 자기 일과 삶을 꾸려 나가는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감각은 일의 기쁨이기도 하다. ‘적게 일하고 많이 버세요’가 가능하지 않은 덕담인 곳에서 ‘일의 기쁨과 슬픔’은 그렇게 서로 아귀를 맞춰 우리를 지탱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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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대는 겨우 오늘을 산다. 그 오늘이 내일을 위한 시간이 되리라 믿지 않는다. 그런데도 할 수 있는 것들을 한다.” 밀레니얼을 대상으로 한 선배들의 분석만이 무성한 곳에서 스스로를 정의한 윤이나의 세대론이다. 그들에게서 내가 얻은 희망은 불안에도 불구하고 나아갈 수 있는 힘에 대한 것이다. 그 희망을 어떻게 공유할 수 있을지는 물론 순전히 내 몫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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