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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03 05:00 수정 : 2020.01.03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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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각] 전성원의 길 위의 독서

그레이트 게임: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숨겨진 전쟁
피터 홉커크 지음, 정영목 옮김/사계절(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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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는 전라남도 여수와 제주도 중간 지점에 있는 다도해 최남단의 섬이다. 거문도는 서도·동도·고도의 세 섬으로 이루어져 있어 예로부터 삼도·삼산도·거마도 등으로 불렸다. 섬들이 어우러져 자연 방파제 역할을 하고, 수심이 깊어 대형선박을 수용할 수 있으며 면적은 12㎢에 이른다. 일설에는 중국 청나라 제독 정여창이 이 섬에 ‘학문이 뛰어난 사람이 많은 것을 보고 문장가들이 많다’는 의미로 ‘거문’(巨文)으로 개칭하도록 했다는데, 정말일까? 청나라 제독 정여창이 어쩌다 거문도까지 오게 되었던 것일까?

1885년 음력 3월1일, 유니언잭 깃발을 휘날리는 영국의 동양함대 군함 세 척이 갑자기 거문도를 불법 점령했다. 이틀 후인 3월3일 영국은 청나라와 일본에 거문도 점령 사실을 통고하였으나 조선 정부에는 알리지 않았다. 거문도를 점령한 영국은 기뢰를 부설하고, 해안 포대를 구축하고 급수로와 병영을 건설하여 군사요새로 변모시켰다. 조선 정부는 3월 중순 외신을 통해 점령 사실을 알았지만, 공식 통고는 4월6일에야 주청 영국공사관을 통해서 이뤄졌다. 영국은 거문도 점령의 공식적인 이유를 러시아의 점령에 대한 예방 조처라고 설명하였다.

거문도는 대한해협의 관문으로 고대 이래로 한·일 양국의 해상 통로로 이용되었고, 영국 입장에서 보면 러시아의 동양 함대가 지나가는 길목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영국은 거문도의 이름을 발견자(?)의 이름을 따서 ‘해밀턴항’이라고 불렀다. 이 사건은 1884년 조선이 러시아와 국교를 맺은 직후 발생했다. 세계 패권을 두고 러시아와 다투던 영국의 조급한 위기의식이 일으킨 침략 사건이자 이른바 동아시아 판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의 서막이었다.

영국의 다큐멘터리 작가 피터 홉커크가 펴낸 <그레이트 게임: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숨겨진 전쟁>은 부제가 설명하고 있듯 중앙아시아, 특히 아프가니스탄을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으며 책의 어디에도 조선이나 거문도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당시 영국의 지배 엘리트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보았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1815년 나폴레옹을 굴복시킨 주역은 영국과 러시아였다. 이후 양국은 세계 패권을 두고 새롭게 다투기 시작했다. 영국에 막혀 유럽에 진출할 수 없었던 러시아는 시베리아와 아프가니스탄으로 눈을 돌렸다. 그 결과 러시아는 하루에 약 140㎢, 일 년에는 약 5만㎢씩 팽창했다.

당시 영국의 정치·외교·군사 엘리트들은 오늘날 중국의 성장을 바라보는 미국의 매파들과 마찬가지로 공포에 휩싸였다. 영국에 인도 지배는 사활적 이해가 걸린 중대한 문제였으며 이들은 러시아의 진출을 막기 위해 선제적인 ‘전진’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믿었다. 세계를 거대한 체스판으로 변모시킨 그레이트 게임은 이들의 공포와 개인적 출세, 모험에 대한 욕망, 아마추어 전략가들의 맹목적인 애국심과 낙관주의로부터 시작되었다.

청나라는 정여창 휘하 군함을 거문도에 파견하였고, 진상을 파악한 뒤 일본의 나가사키에서 영국과 외교 교섭을 벌였다. 저자는 1907년 영러 협약으로 이 게임이 종료되었다고 말하지만, 이념을 빙자한 냉전과 이후 우리 앞에 다가온 신냉전을 바라보며 묻지 않을 수 없다. 정말 그레이트 게임은 끝났는가?

<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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