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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20.01.03 04:59 수정 : 2020.01.03 09:28

마르크스주의와 한국의 인문학
전병준 엮음/후마니타스·1만9000원

“그러나 우리에게는 폐허만이 남아 있다. 그것은 공산주의의 폐허, 정확하게 말하면 해방 정치의 20세기적 판본의 폐허다.”(서용순, ‘19~20세기 해방 정치 이념에 대하여’)

<마르크스주의와 한국의 인문학>에 실린 여러 필자의 글들은 마르크스주의가 처한 비관적 현실을 직시한다. “마르크스의 철학과 사상에 대한 일반적인 관심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는 대부분 인문학적 교양의 차원에 머물러 있(거나), 지적 흥미 이상을 넘지 않는”다.(김정한, ‘한국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와 쟁점들’) “마르크스주의의 물질적 근거를 소멸시켰을 뿐만 아니라, 그 이론적 타당성 및 규범적 적합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안겨(준)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신호탄으로 (전개된)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의 해체 효과”다.(진태원, ‘착취, 배제, 리프리젠테이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다시 마르크스주의를 말하는 이유는, 자본주의 일극 체제가 지배하고 있는 오늘날의 모든 현상이 마르크스주의가 탄생했던 19세기와 정확히 닮았기 때문이다. “자본의 승리와 노동의 위축, 저임금 구조의 고착화와 거기서 비롯하는 양극화의 심화, 비관주의의 지배 등은 모두 19세기를 지배했던 현상이다. (…) 그렇게, 우리는 부활한 19세기의 한가운데에 있다.”(서용순)

이데올로기의 폐허와 현실의 기시감에 발을 딛고 이들이 제시하는 대안과 희망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몇 가지 대푯값은 추릴 수 있다. 알랭 바디우가 말하는 대안 정치적 사유로서의 ‘당 없는 정치’가 그중 하나다. 레닌이 주창한 전위당의 실패 원인을 “국가를 그대로 남겨 두었고, 그 국가를 통해 공산주의로 접근하려 시도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면서 “국가를 상대화시키고, 그 국가에서 빠져나갈 때, 새로운 해방 정치가 가능할 것이다. 국가 바깥에 인민 대중의 정치 공간을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해방 정치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 내는 첩경”(서용순)이라는 주장이다. 2008년 광우병 촛불부터 2009년 용산 참사와 쌍용자동차 파업, 2014년 세월호 참사, 2016년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 구의역 비정규직 사망 사건, 2016~17년 촛불 항쟁 등 2000~2010년대의 독특한 흐름을 ‘사건→운동(촛불)’이라고 정리하면서 “대중들의 현실 운동”(김정한)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견해도 주목할 만하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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