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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7 09:40 수정 : 2019.12.27 20:50

보란 듯이 걸었다
김애란 시집/창비교육·8500원

‘쬐끄만 여자애가 많이도 먹네 하신다/(…)/ 수북이 쌓인 급식판을/ 보란 듯이 들고 걸었다’(밥 많이 주세요)

한참 배고픈 나이에 ‘여자애’라고 왜 절반만 배식받아야 하는가. 급식판 차별 앞에서 화자는 ‘보란 듯이’ 걸으며 통쾌한 반란을 한다. 먹는 것뿐이랴. 일상의 몸짓도 차별로 옭아매이지만, 소소한 저항으로 맞선다. ‘여자애 걸음걸이가 그게 뭐냐고’ 면박을 받을 때면 ‘두 팔을 힘차게 흔들며/ 더 씩씩하게 걷는다’(여자답게 걸어라). 치마 길이 짧다고 벌점을 받고(이상한 벌점), 남자들이 축구하는 동안 ‘여자들은 피구나 해 휙-’(양성 불평등) 공을 던져주는 일도 체육시간마다 되풀이된다.

김애란 시인의 청소년 시집 <보란 듯이 걸었다>를 펼치면 일상화된 성차별에 저항하는 10대 여성 청소년의 당당한 목소리가 들린다. 운동하며 흙먼지 뒤집어쓰는 것도 고함 지르는 것도 여성답지 못하다고 평가받는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찾는다. 시의 또 한 줄기는 <난 학교 밖 아이>(2017)처럼 사회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무거운 삶의 짐을 진 청소년들의 외롭고 고단한 삶을 육성으로 들려준다.

‘이것저것 엄마 일 돕다/ 무단결석 일 주 이 주 삼 주/(…)/ 미련 다 버린 줄 알았는데/ 교복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눈발)

‘배가 불러 오자 엄마는 집을 나가라 했다/ 자식이 아니라 웬수다 니는/ 어데 가서 콱 뒈져 뿌리라/ 대문 밖으로 신발을 던져 버렸다’(신발)

화자들은 대개 ‘전폭적 지원 속에 공부에만 전념하는 청소년’과는 다른 환경에 놓여 있다. ‘가출 팸’에서 생활하거나, 따가운 시선에 혼자 아이를 낳아 키워야 하거나, 엄마 아빠에게 버림받고 할머니와 함께 살거나, 학교를 자퇴하고 보호관찰을 받고 산다. 돈을 벌어 가족의 병원비도 대야 한다.

‘엄마 아빠 다 날 버렸어도/ 끝까지 나와 함께 살겠다는/ 우리 할머니가/ 날 기다리고 계시니까’(걸어간다). ‘한 달 버스비 모으면 사만삼천 원’, 알바를 끝낸 화자는 할머니 보일러를 빵빵하게 틀어 드리려 오늘도 걸어간다. 차갑고 편견 가득한 세상 앞에 보란 듯이 걷는 그들을 응원한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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