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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7 05:01 수정 : 2019.12.27 20:43

꽃은 알고 있다
퍼트리샤 월트셔 지음, 김아림 옮김/웅진지식하우스·1만6500원

수습기자 시절 사건 취재차 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방문한 일이 기억에 남아있다. 화재로 숨진 20대 자매(한 명은 중화상을 입은 뒤 치료 받다 숨졌다) 중 한 명의 부검을 봐야 했다. 검게 타버린 시신은 참혹했다. 화재 원인 또는 범죄 혐의를 밝히지 못한 그 사건은 결국 미제로 끝나버렸다.

퍼트리샤 월트셔가 쓴 <꽃은 알고 있다>를 읽으며 그 부검대가 떠올랐다. 25년간 300건 이상의 까다로운 범죄 사건을 해결해온 영국 법의생태학자 월트셔라면 사건을 규명했을까. 무의미한 공상은 잠시, 이내 이 책의 매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진실탐구의 냉정한 기록은 흥미진진하다. 거대한 숲과 음습한 도랑, 낡은 아파트 거실 등 과학수사의 현장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그는 ‘법의학의 여왕’이라 불린단다.

이 책이 더욱 매혹적이었던 것은, 월트셔가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 때문이다. 이 책의 원제는 ‘삶과 죽음의 본성’(The Nature of Life and Death)이다. “당신의 몸은 단지 짧은 기간 동안 당신의 것이다. 몸을 이루는 원소는 바깥세상에서 빌린 것일 뿐이며, 결국에는 돌려주어야 한다.”

월트셔가 냉혈의 과학자인 것만은 아니다. “시체는 사람이 되기를 멈춘 존재일 뿐”이라 여기는 그가 숲속에서 발견된 스물두 살 성매매 여성의 주검을 만났을 때는 눈물을 흘렸다. “영안실 탁자의 스테인리스 상판 위에 놓인, 벌거벗은 채 차가워진 여성의 몸을 보고 울었던 이유는 그녀가 죽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애처로운 생활을 계속하면서 겪었던 온갖 고투와 불행 속에서도 자식들만은 굳건히 지켰다는 점 때문이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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