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27 05:00
수정 : 2019.12.27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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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영하, 김초엽, 김혜순, 김훈, 박상영, 장강명.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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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문학 결산]
에스에프 잡지창간에 미국수출도
퀴어문학 신기원 박상영 소설집
장강명·장류진은 노동세계 천착
캐나다 그리핀상 수상 김혜순 시인
김영하와 김훈 등의 에세이도 인기
고은 패소, 신경숙 활동 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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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김영하, 김초엽, 김혜순, 김훈, 박상영, 장강명.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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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한국 문학은 페미니즘의 지배적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에스에프(SF) 소설의 약진이 목격되었다. 페미니즘이 성소수자에 주목하는 퀴어 문학으로 넓어지는 한편에서는 이 시대의 일과 삶의 관계를 다루는 21세기형 ‘노동문학’의 출현도 볼 수 있었다.
2016년 10월에 초판이 출간된 조남주의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그 작품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가 올해 10월에 개봉되면서 다시 베스트셀러가 되는 ‘역주행’을 보였다. 만해문학상을 받은 황정은의 소설 <디디의 우산>을 비롯해 최진영의 <이제야 언니에게>, 윤이형의 <작은마음동호회>, 조해진의 <단순한 진심>, 임솔아의 <눈과 사람과 눈사람> 등이 페미니즘의 흐름을 이어 갔다. 남성 작가 김탁환은 역사 장편 <대소설의 시대>에서 18세기 한글소설 붐을 주도한 것이 여성 작가들과 독자들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함으로써 21세기 문학의 페미니즘 바람이 오랜 역사적 연원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했다. 박상영은 두 번째 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으로 퀴어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잡았다. 여성 작가 김세희의 장편 <항구의 사랑>은 여자 중고등학생들 사이의 동성애와 팬픽 문화를 되살려 냈다.
장강명은 이 시대의 노동과 경제 현장을 다룬 작품들을 한데 묶은 소설집 <산 자들>로 21세기형 사실주의의 한 모범을 보였다. 판교 정보통신 업체에서 일한 경험을 살린 등단작을 표제로 삼은 장류진의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은 평단의 찬사와 대중 독자의 사랑을 아울러 받았다. 여성 동성애자와 그 어머니를 다룬 소설 <딸에 대하여>로 호평을 받았던 김혜진은 신작 <9번의 일>에서 명예퇴직 압박에 시달리는 중년 남성의 싸움을 인상적으로 그렸다. 배지영의 소설집 <근린생활자> 역시 임시직과 하청 노동자 등 이 시대 치열한 노동의 현장을 부각시켰다.
에스에프 작가 김보영이 중단편 세 편을 미국 최대 출판그룹인 하퍼콜린스에 판매한 것이 한국 에스에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면, 신예 작가 김초엽의 에스에프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권위 있는 ‘오늘의 작가상’을 공동 수상한 것은 한국 평단과 시장에서 에스에프의 입지가 공고해졌음을 알게 해 주었다. 에스에프 전문 무크 <오늘의 SF>가 창간된 것은 한국 에스에프의 그런 위상 변화를 반영한 일이었다. 장강명은 <산 자들>과 함께 에스에프 소설집 <지극히 사적인 초능력>을 내놓았고, 복거일은 로봇을 화자로 삼은 에스에프 장시 ‘내 살과 넋이 지향하는 곳’(<문학사상> 8월호)을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조남주도 에스에프 장편 <사하맨션>을 내놓으며 ‘변신’을 시도했다. 정유정의 <진이, 지니>, 백민석의 <해피 아포칼립스!>, 구병모의 <버드 스트라이크>, 도진기의 <합리적 의심>, 김진명의 <직지>, 차무진의 <인 더 백> 등 다양한 장르소설들이 에스에프와 공존을 모색했다.
은희경의 <빛의 과거>, 이혜경의 <기억의 습지>, 전경린의 <이중 연인>, 공선옥의 <은주의 영화>, 송은일의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 년>, 권여선의 <레몬> 등 중견 여성 작가들의 신작도 반가웠다. 하성란의 <크리스마스 캐럴>, 심윤경의 <설이>, 편혜영의 <소년이로>, 윤성희의 <상냥한 사람>, 윤고은의 <부루마블에 평양이 있다면>, 정소현의 <품위 있는 삶>, 김금희의 <오직 한 사람의 차지>, 황현진의 <호재>, 최정화의 <흰 도시 이야기> 등 여성 작가들의 활약이 꾸준히 이어졌다.
남성 중견 작가들도 부지런히 새 작품을 선보였다. 조정래는 세 권짜리 장편 <천년의 질문>에서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졌고, 성석제는 두 권짜리 장편 <왕은 안녕하시다>에서 사화로 얼룩진 조선 숙종 시대를 특유의 발랄한 문체로 그렸다. 김성동의 연작소설집 <민들레꽃반지>와 임철우의 중편 <돌담에 속삭이는>이 현대사의 질곡에 주목했다면, 이만교의 <예순여섯 명의 한기 씨>는 용산참사라는 10년 전 아픔을 독특한 방식으로 소환했다.
김혜순은 세계적 권위를 지닌 캐나다의 그리핀 시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신작 시집 <날개환상통>과 산문집 <여자짐승아시아하기>를 내놓으며 의욕적인 활동을 이어 갔다. 지난해 별세한 시인 허수경의 유고집 <가기 전에 쓰는 글들>이 독자들의 아픈 사랑을 받았고, 고형렬 시인은 7권짜리 방대한 단행본 <고형렬 장자 에세이>로 특유의 묵직한 사유와 잠언투 문체를 과시했다. 지리산 시인 이원규는 <달빛을 깨물다>와 <그대 불면의 눈꺼풀이여> 두 시집을 한꺼번에 내놓았고, 장정일도 오랜만에 시집 <눈 속의 구조대>를 출간했다. 이밖에도 송재학 시집 <슬프다 풀 끗혜 이슬>, 정끝별 시집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신용목 시집 <나의 끝 거창> 등이 눈길을 끌었다.
김영하의 에세이 <여행의 이유>가 장기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독자의 사랑을 받았고, 김훈 산문집 <연필로 쓰기> 역시 산문 미학의 정수를 보여주었다. 원로 문학평론가 유종호도 <그 이름 안티고네>와 <작은 것이 아름답다> 두 산문집을 상재했고, 지난해 작고한 비평가 황현산의 트위터 글 모음 <내가 모르는 것이 참 많다>도 압축적 글쓰기의 매력을 한껏 과시했다. 우애 좋은 비평가 권성우와 오길영은 산문집 <비정성시를 만나던 푸르스름한 저녁>과 <아름다운 단단함>을 나란히 내놓았다.
고은 시인은 최영미 시인 등을 대상으로 낸 명예훼손 소송에서 패소했고, 신경숙은 표절 논란 이후 4년 만에 중편소설을 발표하며 ‘복귀’를 신고했다. 김경주 시인이 도록 해설을 대필한 사실이 드러나 사과했고, 문단 성폭력 논란에 휘말렸던 황병승 시인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또 소설가 박태순과 김병총, 강민 시인이 별세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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