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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0 06:01 수정 : 2019.12.20 20:15

되살아나는 여성
박애경 박미선 서지영 외 지음/도서출판 여이연·2만원

여성의 삶은 시대를 초월해 늘 이중삼중의 주름 사이에 끼인 채 존재했다. 1920~30년대 당시 사회는 여공 취업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도 ‘방적의 조선돼지’란 경멸적인 용어로 불렀다. 여성노동자들은 고된 노동에 시달리면서 동시에 차별적인 시선을 견뎠다. 화살은 열악한 노동조건이 아니라 이로 인해 생리불순, 불임 등 직업병에 걸린 여성에게 향했다. ‘(공장은) 처녀 신세 망치는 곳’ ‘공장에 가면 못 쓰게 된다’는 표현은 이들에게 ‘더 이상 어머니가 될 수 없는 존재’란 낙인을 찍었다.

‘성녀 대 창녀’란 이분법, 성차별·민족 차별·노동 착취란 겹겹의 굴레, 여성을 호명하고 재현하는 담론 권력의 불평등, 그리고 이 모든 요소의 기저에 깔린 가부장제는 여성의 삶을 가리거나 주변화하거나 왜곡했다. 기생은 문장·기예·교양을 두루 겸비하고 봉건적 제약에서 벗어난 존재였지만 동시에 그 체제에 기생하는 암적인 존재라는 비난을 받았다. 1950년대 ‘자유부인류’ 여성은 새로운 문화 현상을 주도하고, ‘가정 밖’ 세상에 눈뜨며, 돈을 벌고 사회생활을 하는 현대여성으로 스스로를 정체화했지만, 이들에겐 ‘사치와 허영’ ‘성적문란’이란 딱지가 붙었다.

첩첩이 쌓인 주름을 벗겨내는 건 여성 자신의 몫이었다. 조선 후기 궁녀 고대수는 김옥균이 이끄는 개화당에 들어가 갑신정변에 주체적으로 참여했다. 항일운동가 박차정은 ‘조선 자매들의 공고한 단결과 조선 여자의 지위 향상 도모’를 강령으로 하는 근우회를 창립해 여성에 대한 사회적·법률적 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한편, 의열단에 투신해 정치간부를 양성했다. 여공들은 작업시간 단축, 체불임금 지급 및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갔고, 단식을 했고, 작업을 거부했다. 식민지 시대 카페 여급은 자신을 ‘계몽의 주체’로 인식하고 남성중심적 사고와 사회 모순에 맞부딪치자는 목소리를 적극 냈다.

책은 이처럼 굴절되거나 누락된 여성의 경험을 여성의 관점에서 새롭게 기록했다. 고려시대 천추태후부터 ‘맑스걸’까지 다양한 시공간의 여성을 소환해 △일하는 여성 △글 쓰는 여성 △다른 세상을 꿈꾼 여성 △혼란의 시대를 살아낸 여성 네 갈래로 분류해 보여준다. 작가 김명순과 강경애, 조선의용대원 이화림 등 개인의 삶을 조명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기생, 유모, 공녀, 노비로 팔린 소녀들, 여학생, 여공, 여성 독자와 같이 집단으로 존재한 여성의 지위와 활동을 드러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재조명된 기록 속 여성은 ‘어머니’ 또는 ‘성애의 대상’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때론 강력한 권력을 행사한 정치가였고, 소외된 민중의 목소리를 드러내는 기록자였으며, 공적인 담론의 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회구성원이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역사의 비어있는 퍼즐 조각을 찾아낸 듯한 반가움을 마주할 것이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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