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독자들 매혹시킨 원작에 100여개 도판 등 담아
첫 프랑스판 냈던 갈리마르 출판사의 2013년 버전 번역
‘어린 왕자’ 출간 70주년 기념 갈리마르 에디션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정장진 옮김/문예출판사·2만2000원
문예출판사가 우리말로 출간한 <어린 왕자 출간 70주년 기념 갈리마르 에디션> 겉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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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는 누구인가
생텍스는 누구인가 프랑스 리옹에서 5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생텍스는 1920년 공군에 입대했고, 1926년부터 우편조종사로 일했다. 유년시절 낡은 저택과 정원에서 뛰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네살 때 아버지를, 열일곱살에 남동생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후일 앙드레 말로의 연인이기도 했던 여성 작가 루이즈 드 빌모랭과 1923년 파혼한 것도 그의 영혼에 깊은 우울감을 남겼다고 전한다. 생텍스는 프랑스 문화·예술을 대표하는 인물이지만 <어린 왕자>를 비롯해 <남방 우편기> <전시 조종사> 등 대부분의 작품을 프랑스 영토 밖에서 썼다. 영어에 영 서툴렀는데도, 미국은 생텍스를 무척 사랑했다. 두번째 소설 <야간 비행>은 소개되자마자 바로 클라크 게이블이 출연하는 영화로 제작됐으며, 그가 나치의 프랑스 점령을 피해 1941년 뉴욕에 도착하자 많은 미국인 친구들이 그를 환대했다. 하지만 그는 유배당한 외국인으로서의 비애감에 젖어 있었고, 독일 점령 하의 프랑스에 두고 온 친구와 가족을 그리워했다. 애초 <어린 왕자>를 아내 콘수엘로에게 헌정할 예정이었지만 마음을 바꿔, 프랑스에 남아 고초를 받던 유대인 좌파지식인이자 절친한 친구인 레옹 베르트에게 바쳤다. <어린 왕자>를 본격적으로 집필했던 1942년 생텍스 부부는 롱아일랜드 근교의 큰 저택에서 생활했는데, 실제로 이들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까다롭고 변덕스러운 장미가 아내를 상징한다는 해석도 많다. 생텍스는 아내와 별도로, 미국에서 여러 여인들과 사귀었다. <어린 왕자> 속 양의 이미지는 한때 연인이었던 실비아 해밀턴이 기르던 푸들 강아지에서 따왔다고 추정된다. 생텍스는 <어린 왕자>가 출간될 무렵인 1943년 4월 징집 명령을 받고 알제리행 수송선에 올랐다. 생텍스가 생전에 <어린 왕자> 출간을 봤는지 여부는 전기 작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다. 4월6일 <뉴욕타임스>는 ‘오늘 출간된 책들’에 <어린 왕자> 서평을 실었는데, 이때 이미 북아프리카로 떠났다는 얘기도 있고, 판매용이 공식 인쇄되기 이전에 찍은 책들을 들고 수송선에 올랐다는 증언도 있다. 확실한 것은 <어린 왕자>가 혹시 오독될까봐 전전긍긍했던 생텍스가 <어린 왕자>의 성공을 직접 지켜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어린 왕자 출간 70주년 기념 갈리마르 에디션>에 실린 생텍쥐페리의 데생과 수채화들. 그는 <이름 모를 여인에게 보내는 편지>(1943~1944)에 어린 왕자의 그림을 그렸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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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사랑은 왜 이리 여전한가 생텍스의 친구들이 보관하고 있는 프랑스어판 교정쇄를 보면 작품 제목에 쓰여 있는 글자체가 지금 독자들에게 익숙한, 어린아이가 쓴 것 같은 활자체가 아니라 딱딱한 고전적 글자체인 ‘엘제비리엔’이다. 즉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로 출간할지, 성인용 우화로 출간할지, 출판 마케팅에서 ‘포지션 선정’을 위해 막판까지 고심했다는 의미다. 특히 출판사 사람들은 어린 왕자의 죽음이라는 비극적 결말이 어린이용 줄거리에 부적절하다고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린 왕자>는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의 압도적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여우가 어린 왕자에게 설명해주는 ‘길들임’의 의미는, 사랑의 본질과 윤리적 책임에 대한 최고의 잠언이랄 수 있다. 자제력을 발휘해서, 명문 딱 하나만 골라본다. “네가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다가올수록 난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 시가 되면 나는 벌써 흥분해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거야. 그러면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알게 되겠지! 하지만 네가 아무 때나 오면 몇시에 곱게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 의례가 필요한 거야.” 사물을 투과해 인생의 본질을 일러주는 X선, 하늘의 별을 가리키는 손가락, 샘을 감추고 있는 아름다운 사막, 잊고 있던 유년 시절의 우물에서 보이지 않는 것의 가치를 길어올리는 도르래…. 아, 헛되다. 어린 왕자에게 이런 표현을 덧붙이는 것, 헛되다. 인류가 문자와 그림을 이해하는 한, 어린 왕자는 영원할 텐데.
생텍쥐페리가 친구에게 바친 헌사
레옹 베르트에게
나는 이 책을 어른에게 바친 데 대해 어린이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물론 내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하나 있다. 이 어른은 이 세상에서 나와 가장 친한 친구인 것이다.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이 어른이 모든 걸, 어린이들을 위한 책들까지도 모두 이해한다는 것이다. 세번째 이유도 있는데, 지금 프랑스에 사는 이 어른이 굶주리고 추위에 떤다는 것이다. 그는 위로받아야 할 처지다. 그래도 이 모든 이유가 다 부족하다면 이 어른이 아니라 옛날 어린 시절의 그에게 이 책을 바치기로 하겠다. 어른들은 누구나 다 처음엔 어린아이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면 이제 이 헌사를 다음과 같이 고쳐 써야겠다.
어린 소년이었을 때의 레옹 베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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