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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7 14:24 수정 : 2019.12.07 14:27

일러스트레이션 이내

[토요판] 장강명의 책 한번 써봅시다
(4) “나 같은 게 책은 무슨…”이라고요?

소질이 없으니 학문을 하라고?
출판해도 독자가 없을 거라고?
글재주 잠재력은 가늠하기 어렵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내

‘책 한번 써봅시다’라는 말을 하고 다니면 다양한 반박을 듣게 된다. 가장 부드러운 반응은 “저 같은 게 책은 무슨…”이라는 손사래다. 자신은 책을 읽는 건 좋아하지만, 쓰는 데에는 정말 소질이 없다고 한다. “글은 재능이 있는 사람이 써야 한다”고 진지하게 주장하는 분들도 많다. 자신도 어렸을 때 글을 쓰려고 해봤지만, 주변 사람들이 혹은 학교의 국어 선생님이나 교수님이 “자네는 글 쓰는 쪽은 아니니 학문을 하게”라고 충고했다고 한다. 조금 더 나아가 “쓰면 뭐하나요”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그 뒤에 “출판도 안 될 텐데”라고 덧붙이는 사람도 있고, “(출간이 되더라도) 읽어주는 사람이 없을 텐데”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자기 필력에 내심 자부심이 있다면 “(내가 글을 쓰면 출간도 될 수 있고 읽어주는 사람은 조금 있을 수 있겠지만) 세상에 책이 너무 많아요. 책은 정말 뛰어난 작가만 써야 돼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분들께 부끄럽지만, 내 사례를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한겨레문학상을 받으며 정식으로 데뷔했다. 한겨레출판 편집자로부터 수상 소식을 전화로 들은 다음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내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이었다. 아내는 너무 놀라고 흥분해서 오타투성이의 답신을 보내왔다. 우리는 그날 저녁 밖에서 만나 맥주를 마셨다. 그 자리에서 아내가 고백했다. 내가 소설가로 등단하는 일은 평생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다고.

“왜 그렇게 생각했어?” 내가 물었다.

“자기가 습작 몇 편 보여줬잖아.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영 소질이 없어 보였거든. ‘아, 이 남자는 절대로 소설가는 못 되겠다’ 하고 생각했어.”

그 말을 듣고 나는 한동안 어이가 없어 아무 대꾸도 못 했다. 물론 아내의 예상과 달리 나는 전업 소설가로 밥벌이를 잘하고 있다. 내 아내가 나만큼이나 다독가이고, 또 눈썰미가 상당히 좋은 독서가라는 점을 여기에 밝혀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책을 쓰는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그녀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원래 어떤 사람에게 글쓰기 소질이 있는지 알아보는 일은 어렵다. 때로는 자기 자신조차 모른다.

한겨레문학상 받은 날 아내의 말

“자네는 글 쓰는 쪽은 아니니 학문을 하게”라고 말했던 선생님, 교수님들은 상대의 글쓰기 소질을 얼마나 잘 알아봤을까? 한국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고작해야 짧은 에세이와 동시를 짓게 한다. 대학 문예창작학과의 커리큘럼도 대개 시와 단편소설이 중심이다. 그렇게 쓰게 한 글을 보고 한 학생의 글쓰기 자질을 판단할 수 있을까? 그건 학생들에게 백 미터 달리기를 시킨 다음에 기록을 보고 “넌 운동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하는 상황과 똑같다. 그런데 단거리 달리기를 못하는 아이가 역도를 잘할 수도 있고,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양궁 신동일 수도 있다.

짧은 글, 그것도 한 시간에 쓰는 에세이로 파악할 수 있는 글쓰기 재능은 얼마 되지 않는다. 약간의 관찰력과 문장력, 순발력 정도일 것이다. 발랄한 글을 쓰는 학생을 발견하기에는 괜찮을지 모른다. 그러나 주제를 파고 들어가 논증하는 능력이라든가, 여러 인물 간의 갈등을 솜씨 있게 다루고 플롯을 짜는 재능을 그 짧은 글로 파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운동감각’이라는 단어에 농구, 마라톤, 펜싱, 스키, 피겨스케이팅을 잘할 수 있는 신체 조건과 재능을 욱여넣을 수 없다. 세상에 장대높이뛰기와 스모 양쪽에 모두 소질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마찬가지로 ‘글재주’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능력도 지극히 추상적이고 불분명하다. 흘끗 훑어보고 그 잠재력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을 리 없다. 모든 장르의 글을 다 잘 쓸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쓰면 뭐하나요”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8년 전 한겨레문학상 당선 소식을 듣던 날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다. “당신이 등단하는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라는 아내의 말에 입을 떡 벌렸던 나는 정신을 차리고 겨우 이렇게 물었다.

“그러면 여태까지 왜 그렇게 잘 써보라고, 응원한다고 했던 거야? 내가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다면서.”

“그게 되게 괜찮아 보이더라고. 자기 취미가 낚시나 골프였으면 밖으로 나다니면서 장비 산다, 강습받는다면서 돈도 많이 썼을 거 아냐. 그런데 남편 취미가 소설 쓰기라니, 얼마나 바람직해. 주말이면 조용히 방에서 노트북 두드리고. 술 마시고 도박하는 게 취미인 것보다 백 배, 천 배 낫지.”

나는 다시 말문이 막혔다. 듣고 보니 하도 옳은 말이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글쓰기는 아주 좋은 취미였다. 약간의 전기료 외에는 돈도 안 들고, 대단한 장비가 필요한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과 일정을 맞춰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날씨가 궂은 날에도 할 수 있고, 해롭지도 위험하지도 않다.

책 써서 뭐하려고?

우리는 낚시가 취미인 사람에게 “낚시를 뭐하러 해요? 클릭 몇 번이면 싱싱한 생선을 산지 직송으로 배송받을 수 있는데”라고 따지지 않는다. 골프가 취미인 사람에게 “골프를 뭐하러 치세요? 프로가 되시기에는 이미 늦었잖아요”라고 묻지 않는다. “프로 골퍼라도 세계랭킹 100위 밖이면 일반인은 알지도 못하는데요”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정작 낚시나 골프 애호가들은 그런 질문을 받더라도 당당하게 대답할 것이다. “제가 좋아서 하는 건데요”라고. 그 손맛, 그 희열을 느끼기 위해 하는 거라고.

다른 취미에 대해서도 그렇다. 틈틈이 바둑을 두는 사람, 기타를 치는 지인에게 우리는 그걸 왜 하는지 묻지 않는다. 그냥 바둑을 좋아하는구나, 기타를 좋아하는구나 여길 뿐이다. 직장 동료가 댄스 학원에 다닌다고 하면 멋지다고 응원해주지, 언제 아이돌로 데뷔할 건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유독 책을 쓰는 일에 대해서는 ‘그거 써서 뭐하려고?’라고 스스로 묻고, ‘내가 그런다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수 있어?’라며 자기검열에 빠지는 걸까. 그냥 내가 좋아서 쓴다는 이유로는 부족한 걸까. 책 쓰기의 목적이 나 자신이어서는 안 되는 걸까.

책 출간은 자동차 운전과 다르다. 시시한 책을 내도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 ‘자격 있는 사람만 책을 낼 수 있다’는 은근한 분위기는 이미 책을 낸 기성작가들과, 작가를 선망할 뿐 글을 쓰지는 않는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허구다. 당장 서점에 가서 눈으로 확인해보자. 저자 본인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나오거나 안 나오거나 별 상관없는 책이 신간 코너에 많이 있을 거다. 오늘만 그런 게 아니다. 어제도 그랬고, 내일도 그럴 것이다. 지난 세기에도 그랬다. 물론 현재 한국 출판생태계에는 이런저런 문제가 많다. 작가가 되는 길이 너무 좁고, 등단이라는 특이한 제도가 있고, 책 리뷰 매체도, 서평 문화도 빈약해서 무명 신인의 좋은 책이 묻히기 쉽다(나는 <당선, 합격, 계급>이라는 논픽션에서 이 문제들을 집중해서 다룬 바 있다).

그러나 눈을 돌리면 다른 분야에서 데뷔하는 일 역시 바늘구멍 통과하기다. 퇴근하고 틈틈이 하루 한두 시간씩 바이올린을 연습해서 전문 연주자가 됐다는 사람을 본 적 있는가? 취미로 바둑을 두다가 어느 날 한국기원에 가서 입단대회를 치르고 프로 기사가 됐다는 사람은? 주민센터에서 방송댄스를 배우다가 연예기획사의 눈에 띄어 발탁될 가능성은 있나? 아주 어릴 때부터 하루 종일 십년 가까이 피나게 노력해야 겨우 프로로 데뷔할 수 있는 분야들이 있다.

그런데 작가는 그렇지 않다. 별다른 교육 훈련 없이도 밤에 한두 시간씩 혼자 쓰다가 작가가 되는 사람이 있다. 많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지금 베스트셀러인 책들의 저자 중에도 그런 작가를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거다. 그런 걸 보면 오히려 작가는 아무나 할 수 있다. 바이올린, 바둑, 방송댄스야말로 아무나 하면 안 된다. 각오가 된 사람만 해야 한다. 미래의 판매량을 미리 고민하지 말고 먼저 쓰자. 편집자와 독자의 눈치를 보지 말고 쓰자. 그들의 반응은 따라잡기 어렵다. 나 자신을 위해, 의미를 만들어내는 기쁨을 위해 쓰자. 글자와 문장, 그리고 다른 누구도 아닌 나의 생각에 집중하자. 그렇게 쓸 때 더 좋은 글이 나온다. 그리고 더 즐겁기도 하다.

▶책 한권은커녕 다소 긴 탐사보도 기사조차 읽기 버거워하는 시대, 카드뉴스를 넘어 50초짜리 동영상이 글자를 대체하는 시대에 책이란 어떤 의미일까? 장강명 작가가 상상하는 ‘책 중심 사회’는 많은 이가 ‘지금, 여기’의 문제에 대해 책을 쓰고, 책을 통해 의견을 나누는 사회다. 책 쓰기가 우리 사회에 왜 이로운지를 함께 모색해보기 위해 장강명 작가가 ‘책 쓰는 법’을 격주로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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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토요판] 장강명의 책 한번 써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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