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혜경 지음/개마고원·1만5000원 내가 가려는 길을 앞서 간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건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 2015년 ‘#나는_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운동과 ‘메갈리아’의 등장 등 이른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페미니스트 앞에 펼쳐진 길이 급격히 확장됐지만, 이전에 같은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이야기는 쉬이 드러나지 않았다. ‘58년생’ 페미니스트인 저자의 견해를 엿볼 수 있는 책이 반가운 건 그래서다. 2016년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이 많은 젊은 여성들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는 계기를 만들어줬다면, 그에겐 1978년 동일방직 사건과 1979년 와이에이치(YH)무역 사건 등 여성 노동의 현장이 페미니스트로 각성하는 기점이었다. 2016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터져나온 ‘#문단_내_성폭력’ 고발 운동이 문단의 민낯을 대외에 드러냈다면, 그는 1991년 시인이 되고 문단 내 성차별을 목격한 뒤 ‘여류시인’ ‘여류시’와 같은 용어를 없애는 ‘여성시운동’을 했다. 책은 이처럼 시차를 두고 ‘페미니즘’이란 가치를 실천한 이들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다리를 만들어준다. 선배 페미니스트로서 #미투, ‘82년생 김지영’, 불법촬영, 페미니즘 교육, 임산부 배려석, 리얼돌 등 최근 등장한 다양한 페미니즘 이슈를 바라보며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풀어낸 글을 묶었다. 정치 현장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경험을 살려 페미니즘이 일상의 정치 차원을 넘어 현실정치에서 힘을 발휘해야 한다는 주장도 풀어낸다. 그는 무엇보다 이 책이 “페미니스트처럼 생각하기를 연습하게 해 주는 책이고 싶다”고 말한다. 페미니즘은 “앎의 목록이 아니라 살아가는 태도이자 생각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 대중화하면서 오독되거나 남용되는 지점을 명확하게 꼬집기도 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도, 생물학적 여성만을 위한 사상도 아니다. 대신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차별의 본질을 이해한다는 의미”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니까 페미니즘을 실천한다는 건 “‘다름’을 ‘우열’로 바꿔 차별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발견하고 차단하기 위한 개인적·사회적·정치적 노력”이자 “내가 차별받아왔음을 알고 이를 거부하는 연습” “나 또한 차별하는 구조의 일원으로 어떤 차별에는 동참하고 있었음을 인식하고 탈출하는 연습”이다. 따라서 그는 “페미니즘은 ‘생물학적 여성’ 또는 ‘젠더적 여성’만을 위한 사상일 수 없다”고 말한다. “다른 약자, 다른 소수자를 배제하고 생물학적 여성들만의 권익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을 페미니즘이라고 불러야 할까에 대해서는, 언제나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해야 하리라. 예컨대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에 대한 배제라든가, 단지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차별적 언행을 한 여성정치인을 감싸고도는 일을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용인할 수는 없다.” 저자는 2001년 공저 <페니스 파시즘>에 기고한 글 ‘말하면 죽인다? 침묵하면 죽는다!’에서 남성중심사회에 대항해 ‘말’을 하는 일에 대한 두려움을 고백한 바 있다. 18년이 흐른 지금, 두려움을 극복하고 말하기 시작한 여성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때론 나의 생각보다 변화가 더뎌 지칠 때, 이처럼 먼저 걸어간 이들의 발걸음을 들여다보면 어떨까. ‘불편한 용기’를 내기 시작한 여성들이 이미 많은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걸 새삼 깨달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책 |
아직도 페미니즘을 ‘여성우월주의’로 알고 있다면 |
노혜경 지음/개마고원·1만5000원 내가 가려는 길을 앞서 간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건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 2015년 ‘#나는_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운동과 ‘메갈리아’의 등장 등 이른바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페미니스트 앞에 펼쳐진 길이 급격히 확장됐지만, 이전에 같은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이야기는 쉬이 드러나지 않았다. ‘58년생’ 페미니스트인 저자의 견해를 엿볼 수 있는 책이 반가운 건 그래서다. 2016년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이 많은 젊은 여성들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는 계기를 만들어줬다면, 그에겐 1978년 동일방직 사건과 1979년 와이에이치(YH)무역 사건 등 여성 노동의 현장이 페미니스트로 각성하는 기점이었다. 2016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터져나온 ‘#문단_내_성폭력’ 고발 운동이 문단의 민낯을 대외에 드러냈다면, 그는 1991년 시인이 되고 문단 내 성차별을 목격한 뒤 ‘여류시인’ ‘여류시’와 같은 용어를 없애는 ‘여성시운동’을 했다. 책은 이처럼 시차를 두고 ‘페미니즘’이란 가치를 실천한 이들이 서로 연결될 수 있는 다리를 만들어준다. 선배 페미니스트로서 #미투, ‘82년생 김지영’, 불법촬영, 페미니즘 교육, 임산부 배려석, 리얼돌 등 최근 등장한 다양한 페미니즘 이슈를 바라보며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풀어낸 글을 묶었다. 정치 현장에 오랫동안 몸담았던 경험을 살려 페미니즘이 일상의 정치 차원을 넘어 현실정치에서 힘을 발휘해야 한다는 주장도 풀어낸다. 그는 무엇보다 이 책이 “페미니스트처럼 생각하기를 연습하게 해 주는 책이고 싶다”고 말한다. 페미니즘은 “앎의 목록이 아니라 살아가는 태도이자 생각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 대중화하면서 오독되거나 남용되는 지점을 명확하게 꼬집기도 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우월주의’도, 생물학적 여성만을 위한 사상도 아니다. 대신 “페미니스트가 된다는 것은 차별의 본질을 이해한다는 의미”라고 그는 말한다. 그러니까 페미니즘을 실천한다는 건 “‘다름’을 ‘우열’로 바꿔 차별을 만들어내는 구조를 발견하고 차단하기 위한 개인적·사회적·정치적 노력”이자 “내가 차별받아왔음을 알고 이를 거부하는 연습” “나 또한 차별하는 구조의 일원으로 어떤 차별에는 동참하고 있었음을 인식하고 탈출하는 연습”이다. 따라서 그는 “페미니즘은 ‘생물학적 여성’ 또는 ‘젠더적 여성’만을 위한 사상일 수 없다”고 말한다. “다른 약자, 다른 소수자를 배제하고 생물학적 여성들만의 권익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을 페미니즘이라고 불러야 할까에 대해서는, 언제나 그러면 안 된다고 말해야 하리라. 예컨대 트랜스젠더 등 성소수자에 대한 배제라든가, 단지 여성이란 이유만으로 차별적 언행을 한 여성정치인을 감싸고도는 일을 페미니즘의 이름으로 용인할 수는 없다.” 저자는 2001년 공저 <페니스 파시즘>에 기고한 글 ‘말하면 죽인다? 침묵하면 죽는다!’에서 남성중심사회에 대항해 ‘말’을 하는 일에 대한 두려움을 고백한 바 있다. 18년이 흐른 지금, 두려움을 극복하고 말하기 시작한 여성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때론 나의 생각보다 변화가 더뎌 지칠 때, 이처럼 먼저 걸어간 이들의 발걸음을 들여다보면 어떨까. ‘불편한 용기’를 내기 시작한 여성들이 이미 많은 변화를 만들어냈다는 걸 새삼 깨달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