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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6 05:59 수정 : 2019.12.06 16:09

통증의 언어
방민호 지음/예옥·1만5000원

문학평론으로 출발해 시와 소설 등으로 분야를 넓혀 온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가 문학산문집 <통증의 언어>를 내놓았다.

책 제목에 쓰인 ‘통증’이란 일차적으로는 지은이 자신이 겪어 온 허리 디스크와 목 디스크, 통풍과 등의 통증 같은 육체적 아픔을 가리킨다. 이런 아픔의 경험으로부터 그는 문학 역시 통증의 일종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을 길어 올린다. “문학은 그러니까 문학이라는 이름의 통증이라고나 할까.” 산문집 제목이 ‘통증의 언어’가 된 내력이다.

문학산문이 주로 작품을 대상으로 삼기 십상인 데 비해, 이 책에서 지은이 방 교수는 한반도 남쪽 이곳저곳과 일본, 중국, 유럽, 미국 등지를 부지런히 돌아다닌다. 문학기행에 가까운 형식 속에 그는 자신의 개인사와 연구 주제, 문학작품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등을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책에서는 이상, 백석, 박경리, 최인훈, 김윤식, 박완서 등 여러 문인과 그들의 작품이 다뤄지는데, 손창섭에 관한 글들이 특히 눈길을 끈다. 방 교수는 흔히 전후의 피폐한 사회와 정신 세계를 그린 작가로 알려진 손창섭이 1960~70년대에 발표한 장편소설들에 주목한다. <부부> <이성연구> <삼부녀> 등 이 장편들에서 손창섭은 “개체적 개인이 부부 또는 가족 관계 속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문제에 집중”하며 그 과정에서 “가부장제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방 교수는 손창섭이 “모계적 사회를 꿈꾸”었으며, 그가 일본인 아내의 성을 좇아 일본 이름을 얻고 결국 일본으로 귀화한 데에도 그런 맥락이 있다고 짚는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방민호 교수 제공

손창섭이 일본에서 고독하게 숨을 거둔 5년 뒤인 2015년 7월 초, 방 교수는 일본에서 손창섭의 딸을 만나 아버지가 쓴 시조 노트를 건네 받았다. 한국어 시조 70편이 담긴 공책인데, 그 가운데 ‘얼’이라는 작품은 이러하다. “나라 꼴 어찌 됐든 그 세정(世情) 어떠하든/ 내 비록 고국산천 등지고 살더라도/ 한(韓)나라 얼이야말로 가실 줄이 있으랴.” 정몽주의 ‘단심가’를 패러디한 이 시조는 “손창섭이 죽을 때까지 한국인으로서 그 자의식을 잃지 않고 살아갔음을 입증”한다고 방 교수는 파악한다.

이광수 소설 <무정>의 참된 새로움이 외국 유학과 신교육을 주창한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운명 앞에 고뇌하는 형식(=주인공)의 ‘내면세계’를 깊이 있게 드러낸 것”이라고 본다든가, 김동리가 내세운 순수문학이 “공동체의 운명에 대한 윤리적 감각을 저버리지 않”은 것임을 확인하는 대목 등에서는 인간과 문학을 이념에 종속시키는 태도에 대한 지은이의 거부감을 엿볼 수 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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